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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아베도 만나는 '한국 사위' 거부한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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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아베도 만나는 '한국 사위' 거부한 청와대

입력
2015.05.3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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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의 미래는 밝다.’

요 며칠 새 박근혜 대통령의 6월 방미를 준비하는 워싱턴 외교가의 분주한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얻은 결론이다. 일부 성급한 독자들은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이 너무 정부 편만 드는 것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미리 밝혀 두지만, 그 결론은 청와대나 대한민국 외교부와는 관련이 없다. 더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청와대 외교분야 참모와 외교부 관계자들이 제대로 대통령을 보좌하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대표 사례가 래리 호건 미국 메릴랜드 주지사 내외의 방한이다. 한국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됐듯이 호건 지사의 부인인 유미 호건 여사는 한국계다.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부인 덕택에 한인 유권자들의 몰표를 받아 당선됐기 때문일까. 호건 지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스스로를 ‘한국 사위’라고 부르며, 한국과의 인연을 강조한다.

취임 이후 메릴랜드 주 정부의 한인 사회에 대한 실질적 지원도 강화됐다. 1991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 때에는 한인 상인의 생존권이 외면 당했지만, 그와 유사한 지난달 볼티모어 폭동에서는 유미 호건 여사가 직접 나서 피해 한인들을 챙겼다.

유미 호건 여사.
유미 호건 여사.

그런 유미 호건 여사의 가장 큰 소원 중 하나는 메릴랜드 퍼스트 레이디로서 청와대로 찾아가 박 대통령을 예방하는 것이었다.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로 한국, 중국, 일본을 선택하고, 세 나라 중 한국을 가장 먼저 찾고 가장 오래 머물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미 호건 여사는 지난해 한국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년 5월 방한 때 박 대통령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렌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미국의 최초 한국계 주지사 부인은 박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메릴랜드 주정부의 예방 요청을 청와대가 거절한 것이다. 대통령이 미국 주지사를 만나는 게 ‘격’(格)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으나, 테리 매콜리프 버지니아 주지사는 지난해 10월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을 만났다.

이곳 한인 사회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 등을 치료한 존스 홉킨스 의대 등 메릴랜드는 박 대통령이 ‘창조경제’핵심 테마로 강조하는 생명공학(BT) 분야에서 세계 제일의 경쟁력을 갖춘 지역이다. 부인이 한국계라는 인연이 없더라도, 우선적으로 만나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한인 사회의 한 관계자는 “더욱 화가 나는 것은 박 대통령이 거부한 호건 주지사 부부를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적극적인 자세로 만나기로 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 참모들이 생각하는 국익에 대한 평가와 기준이 뭔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이 이달 중순 미국을 방문하는 것에 대해서도 여전히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다. 큰 현안이 없는데도, 일본(4월)과 중국(9월) 정상이 워싱턴을 찾는다고 굳이 중간에 끼어들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창조경제의 현장으로 방문할 예정인 텍사스 주 휴스턴이 최근 홍수로 큰 피해를 입은 것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한국 외교의 미래가 밝다는 건 뭐냐’는 지적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외교 당국자들이 점수를 까먹는데도, 그런 결론을 내린 건 한국 외교력의 토대인 국민들의 애국심과 헌신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자기 돈도, 회사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닌데 대통령 방미 수행원이 머물 호텔 숙박비를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고 호텔 지배인과 며칠 동안 씨름한 항공사 직원. 미국인들에게 뿌릴 업소 홍보 전단지 한 귀퉁이에 ‘독도는 한국 땅’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사연을 넣으려는 메릴랜드 한인 사업가를 만났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대비 한국인의 수준이 일류인지 여부는 몰라도, 정치ㆍ행정력이 국민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건 여전한 모양이다.

조철환 워싱턴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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