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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요섹남'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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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요섹남'이 필요한 이유

입력
2015.05.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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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우리나라 최초의 '먹방'을 아세요?

② 주방에서 나온 셰프들, 어떻게 예능인이 됐나

[편집자주] 방송계를 넘어 일상까지 물들인 먹방·쿡방.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 더 화제가 되는걸까요? '대한민국, 식탐에 빠지다'에서는 먹는 문화에 열광하는 사람들과 이를 보는 시선을 조명합니다.

요즘 남자들은 종종 앞치마를 두른다. 이유는 다양하다. 직장인 아내의 퇴근이 늦거나, 자취생의 ‘혼밥’(혼자 밥먹기의 줄임말)일 수도 있다.‘요리하는 남자가 남사스럽다’는 말은 옛날 얘기다. 젊은 남자들은 대체로 김치찌개, 볶음밥과 같은 기본적인 음식을 할 줄 안다. 최근에는 쿡방 예능이 부상하면서 이상형 남성의 기준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됐다.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 '요섹남'의 시대가 온 것이다.

쿡방 열풍의 중심에 선 '셰프테이너' 뿐만이 아니다. 방송 속 일반 스타들도 셰프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어느 정도 기대치가 있는 셰프와 달리, 일반 스타들은 의외성을 띄어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배우 차승원은 '요섹남'의 이미지를 가장 잘 구축한 스타다. 충무로에서는 남성미를 과시했지만, tvN '삼시세끼'에서는 '차줌마'의 매력이 살아났다. 차승원은 오븐 없이 빵을 굽고, 맛집에서 공수해온 레시피로 제육볶음을 뚝딱 만들어냈다.

'요섹남'의 시대, 전문 셰프가 아닌 '요리스타'들도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배우 차승원, 웹툰작가 김풍, 가수 성시경, 배우 서태화.
'요섹남'의 시대, 전문 셰프가 아닌 '요리스타'들도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배우 차승원, 웹툰작가 김풍, 가수 성시경, 배우 서태화.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 중인 김풍의 본업은 웹툰 작가다. '찌질의 역사', '폐인가족' 등을 그렸고 최근까지 '찌질의 역사' 시즌2를 작업했다. 하지만 요즘엔 펜을 내려놓고 칼을 잡는 일이 많아졌다. 전문 셰프와 요리 대결을 펼치는 모습을 보면 본업이 무엇인지 헷갈릴 정도로 노련하다. 물론 요리 스타일은 살짝 '야매'(정석이 아닌 방법)다. 햄, 치즈, 김치 등 자취생의 필수 아이템을 활용해 참신한 자취요리를 선보일 때가 많다.

김풍은 "요리를 못하는 사람들도 내 요리는 만들어 보더라. '김풍이 하는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반인의 레시피는 상대적으로 친숙해 따라하는 시청자들이 부담을 덜 느낀다는 것.

배우 서태화도 요리를 사랑하기로 유명하다. 가볍게 취미로 즐기는 수준이 아니다.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모두 보유했다. 그는 최근 EBS '최고의 요리비결-완판 10분 레시피'에 출연하며 쿡방 열풍에 합류했다. 여기에 한국일보에서 '서태화의 쿡스타그램'이라는 요리 칼럼까지 연재하고 있다.(▶칼럼보기) 이 외에도 올리브TV '오늘 뭐 먹지?'의 성시경, 올리브TV '정재형의 프랑스 가정식'(2014)의 정재형 등이 뛰어난 요리 실력으로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했다.

우리 주변에서도 '요섹남'을 찾아볼 수 있다. 홍천에 사는 황연이(29ㆍ회사원ㆍ가명)씨는 요즘 퇴근길이 즐겁다. 남편이 종종 자신을 대신해 따끈한 저녁상을 차리기 때문. 김치볶음밥, 라볶이, 된장찌개 같은 간단한 요리지만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느껴져 행복해진다.

홍씨는 "내가 지쳐있을 때 남편이 요리를 해주니 사랑받는 느낌이 든다. 아직도 신혼인 기분"이라며 "남성이 여성의 일을 대신 하니 신선하고 섹시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대학생인 김정현(25·학생)씨는 평소 파스타, 연어 스테이크 등을 즐겨 만든다. 맛 뿐만 아니라 플레이팅까지 섬세하게 신경쓴다. 잘 만든 요리는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 완벽한 요리를 위해 예쁜 접시를 찾아다니는 수고도 마다 하지 않는다. 김씨는 "주변 여성들에게 내가 만든 음식을 보여주면 나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하는 것 같다. 요리를 잘할 것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서 의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밝혔다.

대학생 김정현(25)씨가 직접 만든 음식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연어스테이크, 새우 파스타, 토마토파스타, 스테이크샐러드. 김정현씨 제공.
대학생 김정현(25)씨가 직접 만든 음식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연어스테이크, 새우 파스타, 토마토파스타, 스테이크샐러드. 김정현씨 제공.

요리하는 남자가 왜 인기를 끌고 있을까. 한식 콜라보레이션 연구가 안나 셰프는 그 이유로 ‘고정관념에 대한 반전’을 들었다. 그는 "가사 분담의 시대라지만, 아직까지 요리는 여자의 몫이다. TV 프로 속 '요섹남'은 이런 사회 관념에 대한 반전을 준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 설명했다. 바꿔 말하면 양성평등 사회에 대한 여성들의 갈망이 ‘요섹남’으로 표출되는 셈이다.

이어 "1인 가구 증가로 생계형 요리남이 늘어났는데, 최근엔 더 나아가 요리를 배우거나 특색있는 요리법을 찾아 즐기는 남자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쿡방 열풍의 영향"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방송계에 이색적인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요섹남’과 거리가 먼 남자들이 쿡방에 등장했다. tvN ‘집밥 백선생’은 요리와 담을 쌓고 사는 남자들이 요리 고수로 진화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지난 19일 방영된 첫 방송에서 방송인 김구라는 “나는 요리에 관심이 없다”며 전통적인 가부장의 면모를 드러냈다. 김구라가 ‘요섹남’으로 변하는 과정이 고지식한 중년 남성들의 마음까지 움직일지는 더 지켜봐야 알 일이다.

이소라기자 wtnsora21@hk.co.kr

박은진 인턴기자 (경희대 경영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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