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촌기자 앞치마 두르다] 5. 밥고문

“기상, 기상~” 오전 6시, 군대는 아니지만 어김없이 우리 집 기상 목청도 이 시간에 울린다. 그렇다고 맨손체조를 하자거나 집 주변의 수성못을 한 바퀴 뛰자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밥 한 끼 같이 먹자는 것이다.

이 시간이면 아내는 벌써 출근 복장이다. 헬스장 거쳐 곧 바로 출근하기 때문이다. 올빼미 대학 생활에 재미들인 맏딸이 눈가에 물만 찍어 바르곤 식탁에 앉는다. “아빠 오늘 아침은 뭐야?” “응~, 비빔밥.” “그게 다야?” “천만에, 도라지무침도 있데이.” 요리공부 시작 후 매일 아침 반복되는 대화다. 맏딸의 질문은 똑같다. 내 대답에서도 메뉴만 달라질 뿐이다.

요리는 아침을 통째로 바꿔놨다. 월수금 밤마다 하루 두 가지씩 새로운 요리를 배우다 보니 복습은 아침으로 몰았다. 화목토 아침은 복습, 월수금 아침에는 평소 해보고 싶었던 음식, 일요일은 맘 내키는 대로 만들기로 했다. 평소에도 5시30분에는 일어나지만 타칭 ‘돌팔이 셰프’가 된 후부터는 기상 시간을 1시간 당겼다. 오전 4시30분 휴대전화 알람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쌀을 물에 불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곤 꼭두새벽에 배달된 신문을 집어 들고는 30분 정도 훑는다. 대개는 하루 전날 기사집배신을 통해 읽었던 기사들이기 때문에 제목과 사진, 밤 사이 뉴스를 주로 챙겨본다.

오전 5시, 드디어 복습 시간이다. 먼저 하루 전날 배웠던 음식의 레시피를 머리 속에 입력한 후 과정을 한번 떠올린다. 그리고는 두 가지 요리에 뛰어들면 한 시간은 우습게 지나간다. 머리가 나쁜 줄 요리하고 새삼 알았다. 채 썬 오이를 소금에 절여야 하는지 설탕을 뿌려야 하는지, 프라이팬에 도라지를 먼저 볶아야 하는지 당근을 우선 넣어야 하는지, 양념장에 물과 간장의 비율은 어떻게 되는지… 손발이 따로 논다.

요리수업 시작하면서 장만한 계량컵과 계량스푼. 암행어사의 상징이 '마패'와 놋쇠자 '유척'이듯, 셰프의 상징인양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있다.

난장판이 되어가는 주방에서 200cc짜리 계량컵과 5cc, 15cc 숟가락이 양쪽에 달려있는 계량스푼만 허둥대고 있다. 처음에는 오전 6시에 도저히 아침상을 차릴 수가 없었다. 7시가 다 되어서야 아침이 완성되면 먹이고, 먹고, 씻고 출근하기가 빠듯했다. 양 조절도 항상 실패였다. 체중에 예민한 여성 두 명과 아침 먹는데 밥 4인분, 요리 4인분 차려놓기 일쑤다 보니 남는 음식은 모두 내 차지였다.

갈수록 볼이 통통해졌다. 나 혼자 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과일 하나 먹고 집을 나서려는 아내를 붙들고, 잠에 취한 딸내미를 깨워 억지로 식탁에 앉혔다.

처음 2주 정도는 두 여성이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꼬박꼬박 식탁 앞에 앉았다. “어떻노, 맛있나?” “응.” “우예 맛있노?” “그냥 맛있다.” 좀 허둥대기는 해도 배운 대로 만들다 보니 엉뚱한 맛이 나지는 않았다. 교과목에는 없는 된장찌개를 요리강사한테 따로 배운 레시피로 보글보글 끓여 내기도 했고, 주말이면 역시 족보에 없는 떡볶이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된장찌개의 물이 400cc라면 된장은 15g 정도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다는 설명이었지만 얼큰한 찌개를 찾는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된장과 김치찌개만큼은 어머니 입맛에 뿌리깊게 길들여졌기 때문에 정답은 없을 터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것이 쫓으면 도망가고, 도망가면 쫓아오는 것이 이치인 것 같다. 3주차로 접어들자 아내가 꽁무니를 뺐다. 요리하는 도중 현관 문 살짝 열고는 말도 없이 헬스장으로 직행했다. ‘맏딸과 아침 잘 먹어.’ 카톡 문자가 뒤이어 날아온다. 살짝 배신감이 들지만 오랫동안 해 온 운동을 제 시간에 하겠다는데, 아침 먹으면 운동 못한다는데, 뾰족한 대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정작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 것은 아내가 저녁에 치킨 배달시켜 닭다리를 뜯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였다. 체중 감량한다고 남편 요리도 거부해놓고, 외부에서 반입한 닭다리라니!

맏딸은 좀 더 부드러운 방식이긴 했지만 역시 아빠의 식탁에서 벗어나려 했다. “어제 밤에 많이 먹었어. 아침 안 먹는다.” 몇 번 이런 식으로 아침식사를 거부하더니 아예 공식적으로 다이어트 선언을 한다. “아빠 나 살 뺄 거야. 그러니 아침 혼자 맛있게 먹어요.”

한 달쯤 지나니 나의 식탁에는 아무도 없었다. 왕성하던 내 식욕도 시들었다. 남은 사람은 2, 3주에 한 번씩 집에 오는 둘째딸 뿐이었다. 행여 퇴짜라도 놓을까 봐 과잉친절을 베풀면서 식탁에 앉히는 데 성공했다. 둘째 입맛에 맞추기 위해 요리강사로부터 과외로 배운 롤돈까스도 만들고 팽이버섯 베이컨말이도 해다 바쳤다. 기대했던 반응은 아니지만 오물오물 잘 먹어주니 고맙기 그지없었다. 역시 요리는 먹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딸내미들이 오랜만에 식탁에 앉았다. '밥고문'이 고문이 아니어야할텐데 걱정이다.

둘째딸이 학교 기숙사로 돌아가면 식탁은 다시 텅 빈다. 뭔가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한 순간이다. 중국 말에 음식의 3요소는 ‘색, 향, 맛’이라고 했다. 난 음식 향기로 ‘손님’을 다시 끌어들이기로 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불고기를 굽고, 치즈를 듬뿍 올리고, 김치볶음밥을 해서 집 안 가득 음식 냄새를 풍겼다. 맏딸이 눈곱도 안 떼고 주방으로 다가와 한참을 보고 서 있다. 난 짐짓 모른 체 프라이팬만 휘젓는다. “아빠 뭐해?” 드디어 걸렸다. “응~ 보다시피, 맛이 궁금하면 한 입 먹어보든지.” “알았어.”

다이어트하겠다는 딸자식에게 굳이 밥을 먹이려는 내 심보가 고약하다 싶지만, 요리가 손에 익을 때까지는 마루타가 필요한 걸 어쩌겠는가. 지금은 희생양이 되어주렴, 나중에 진짜 맛있는 요리로 보답해 줄 테니.

석 달 넘게 이어 온 요리수업은 오늘(5월 27일) 끝난다. 그래도 내 요리는 계속될 것이다. 지금 맏딸이 가장 무서워하는 말을 입에 달고서. “밥고문 당해 볼래?”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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