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011년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이후 정치 무대서 모습을 감췄다. 스스로의 선택에 따른 결과였지만 정치인에 있어 대중에게 잊혀진다는 것은 사실상의 사망신고나 다름 없는 일. 오 전 시장 역시 지난 3년 8개월간의 시간을 ‘정치적 사망시기’라고 했다. 인고의 세월 끝에, 정치 무대 복귀를 꿈꾸는 오 전 시장을 지난달 30일 만났다. 오 전 시장은 공백기 동안 영국과 중국, 페루, 르완다 등을 돌며 느끼고 구상했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 공을 들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오 전 시장은 아직 무상급식, 서울시장, 오세훈법과 연결돼 있다. 정치인 오세훈 부활의 키는 과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다. 오 전 시장이 회상하는 지난 선택과 결정은 지금 그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들어봤다. 디지털뉴스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지난 2011년 8월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따른 향후 거취에 관한 긴급 기자회견 중 무릎을 꿇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무상급식때 무릎 꿇은 이유

Q 무상급식 주민투표 승리를 위해 무릎까지 꿇었다. “정치적 ‘쇼’를 한 게 아닌가”라는 비판이 있었는데 당시 솔직한 심정은 무엇이었나.

A 내가 여기서 정치적으로 죽을 수 있겠다는 것과 오세훈이 대선 나가기 위해 승부를 건다는 오해에 대한 억울함이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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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을 당시는 복합적 심정이었다. 이웃한 일본도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아동수당 도입해 가지고 세금 올리고 하다 힘들어졌다. 우리가 같은 길을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안 답답했겠나. “내 진심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라는 그런 절박함이 있었는데 이걸 어떻게 표시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나온 행동이었다. 갑자기 했으니 참모들도 다 깜짝 놀랐다.

Q 무상급식 주민투표 당시 ‘5세 훈이’ ‘쩨쩨하다’ 등의 이미지로 비쳐지는 것이 정치인 오세훈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이 되지 않았나.

A 저 역시 만약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면 흐리멍덩하게 얘기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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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 복지 광풍이 불기 시작한 지 3년 반 정도 지났는데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65% 정도가 보편적 복지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왔다. 굉장한 혜안이고 복원력이라고 본다. 저 역시 서울시장 선거를 끝내 놓고 난 다음이었으니까 용기 있게 나설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큰 선거 앞두고 어떤 정치인인들 죽는 길을 가려고 하겠는가. 당시야 억울했지만 이제 많은 부분 오해가 풀리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Q 여권에서 무상급식 이슈를 주도하는 주인공이 오세훈에서 홍준표로 넘어간 분위기다. 홍준표 경남지사의 행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A 홍 지사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방법론에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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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같은 것이니까 그 결정에 대해 일단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일단 타이밍이 적절치 않다. 기왕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다면 1, 2번 정도 더 지켜보는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또 하려면 정교하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무상급식비 지급 중단하고 그 예산으로 저소득층 교육비 지원한다고 하는데 비율을 보니까 소득 하위 35%인가 그렇더라. 전략적으로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복지혜택의 범위를 넓히고 싶다면 50% 정도가 적당하다. 다수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그런 노력이 필요한 것 아닌가. 그런데 불쑥 타이밍도 안 맞는데다가 30% 정도 해준다고 하니 경남 도민 중에 혜택 받고 있는 사람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지난 2009년 1월 '한강르네상스' 사업 2단계 조치를 설명하고 있다. 국일보 자료사진

▦난 강남 아닌 강북시장

Q 2011년 무상급식 논란 때문에 복지 반대론자로 비쳐지는 측면이 있다.

A 제가 언제 무상급식을 반대했나. 부자 무상급식을 반대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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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비쳐지는 것이다. 어디에서 강연을 하는데 제가 무상급식을 반대했다고 하더라. 저는 복지시장을 자부한다. 이게 단순히 레토릭이 아니다. 복지국가 만드는 게 제 정치의 목적이다. 왜 제가 복지 반대론자가 되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Q 두 번째 서울시장 임기가 걸렸던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명숙 민주당 후보한테 고전을 하다가 새벽이 돼서야 당선이 확정됐다. 당시 솔직한 심정은 어땠나.

A 무릎 꿇고 끌려가는 식물시장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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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는 정말 참담했다. 저는 이겼지만 시 의회 3분의 2 이상을 야당에게 내줬다. 이제 일을 못하겠구나 했다. 21세기를 준비하는 투자들이 다 제동이 걸린다는 생각에 당선 순간부터 앞이 캄캄했다.

Q 당시 ‘강남 3구’의 투표 결과가 승리의 결정적 계기가 되면서 ‘오세훈은 강남시장’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A 저는 강남시장이라는 말에 1%도 동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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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이 갖다 붙인 것인데 저는 강북시장이었다. 한 가지 예를 들겠다. 재산세 공동과세라는 것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서울 강남 서초 송파 등 부자들이 많거나 부동산 가격 높은 지역에서 재산세 절반 떼어 가지고 못 사는 자치구에 나눠줬다. 강남 서초 송파 주민들 결사 반대했지만 대선 국면에서 필요하다는 논리 내세워 당과 구청장들을 설득했다. 여기에 서울시 예산 나눠 주는 계산식도 바꿨다. 지금 서울시 전체를 다니면 비강남 지역도 많이 변하는 모습을 느끼고 계신지 모르겠다. 시민들은 무심하게 바라보니까 모를 것이다. 그러나 제 눈에는 이전에 정말 낙후됐던 비강남 지역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서 변화해 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제가 강북시장인가 강남시장인가.

Q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나 세빛둥둥섬 등 재임 당시 비판을 받던 정책들에 대한 평가가 바뀌고 있다.

A 세빛둥둥섬이나 DDP에 사람 몰린다고 하는 게 무슨 평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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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해둘 것은 현재는 겉모양만 보고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저는 그런 평가 받으려고 투자한 게 아니다. 정확하게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세월이 지나서 두 시설이 가지는 산업시설로서의 가치가 경제효과로 나타날 때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다고 본다.

Q 하지만 재임 시절 추진했던 일부 정책에 대한 비판도 여전하다.

A 한강변에 삼삼오오 가족들이 나와 즐기면서 한강르네상스를 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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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하는 일이 인터넷 공간에서 홍보되는 것 정도만 제 재임시절에 홍보됐어도 지금 이렇게 이미지가 나쁘지 않을 것이다. 서울 시민들이 즐기고 누리고 있는 것들 모두 전시행정이 돼 버렸다. 하지만 알아주는 사람들이 적다고 억울해 하면 되겠나. 일할 기회를 두 번이나 주셨다고 위안을 한다. 제가 추진했던 일들을 바라보면서 정말 차오르는 충만한 어떤 보람 같은 게 일을 하는 이유고 존재의 이유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0일 대구 영남대학교에서'국가 브랜드 비전과 전략'을 주제로 특별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와 안철수 따라하기

Q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 취업과 관련 중동 진출을 언급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최근 페루와 르완다를 다녀 온 뒤 발간한 책에서 오 전 시장도 비슷한 취지로 얘기한 것 아닌가.

A 저는 청년들도 나가야 되지만 청계산이나 북한산에서 매일 경륜을 썩히고 계신 퇴직자들도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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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분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저도 그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중동 하나 놓고 보면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 세계 시장을 놓고 보면 지금보다 더 나가야 된다. 청년 실업을 위한 해결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우리 기업들의 시장 개척의 교두보로써 젊었을 때 나가서 봉사를 하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나라에 대해 알게 되고 전문인력이 되고 취업과 창업으로 이어져 국부 창출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특히 퇴직자 분들의 경우에 국내에서 했던 경험과 노하우로 무장된 분들이라면 3년이면 그 지역 전문가가 될 것이다.

Q 최근 고려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석좌교수를 맡고 전국 대학을 돌며 강연을 하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생각나게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인가.

A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비슷할 지 모르지만 계획이나 동기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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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원은 원래 태생이 이공계지만 저는 문과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사농공상 분위기가 남아 이공계 홀대 현상이 있었다. 하지만 10년 정도 정치를 하면서 어떻게 국부를 창출할 것인가 하다가 내린 결론은 경쟁력 있는 기업과 경쟁력 있는 원천 기술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두 가지 중 저는 특히 R&D 부분의 시스템이 다 망가져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 강조하면서 혁신센터 개소식에만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상당히 답답하다. 특허시스템도 기초부터 다 바꿔야 한다. R&D 투자와 특허에 대한 보상시스템이 제대로 될 때 기술들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산학 연계 시스템이 중요하다. 그 공부를 제가 하고 싶어서 온 것이다. 이에 대한 감을 잡고 싶다는 욕심이 고대 공대에서 온 제안과 맞아 떨어진 것이다.

Q 17대 총선 불출마와 서울시장직 사퇴 등 중요한 순간마다 자리를 건다. 때문에 급진 우파가 아니냐는 평가가 있다. 여권의 대권 주자로 거론된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그런 중요한 일이 생기면 직을 걸 것인가.

A 대통령 자리에도 또 그런 선택을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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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걸어왔던 길이고 지금 많은 분들이 저에 대해 그렇게 평가하는 것을 두고 “그것 아닙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굳이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다. 다만 제 선택을 진정성 있게 봐주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그냥 정치행보 정도로 의미를 두는 분들이 있다. 그걸 제가 굳이 제 마음은 그게 아니라고 얘기한다고 해서 생각이 바뀌겠는가. 각자 보고 싶은 부분들을 보는 것 아닌가 싶다.

Q 결국 내년 총선이 복귀의 첫 시험대가 될 것 같은데.

A 다시 정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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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에서는 저에 대해 좀 껄끄럽고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는 것으로 안다. 제가 새누리당을 힘들게 한 원흉 아닌가. 때문에 결코 새누리당 입장에서 쉽게 당선을 생각할 수 있는 지역을 골라서 가지는 않겠다. 거기에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내년 총선도 결국 수도권이 관건이 될 텐데 판세에 도움이 되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역이라면 좋겠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큰 틀에서 두 개의 원칙을 가지고 고민을 하더라도 하겠다.

오세훈(맨 왼쪽) 전 서울시장이 지난 2003년 서울 한나라당 당사에서 안상수(왼쪽두 번째부터), 남경필, 원희룡 의원과 지구당 위원장직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DJ의 러브콜

Q 야당이라고는 하지만 지역구도 강남을 받았다. 시작부터 편한 길을 간 것 아닌가.

A 잊혀지지 않는 게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도 정초에 집으로 불쑥 전화를 (같이 하자고) 하셔서 깜작 놀랐던 기억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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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입 노력을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더 열심히 했다. 당시 한나라당에서 출마만 하면 당선이 보장 되는 강남을 준다고 약속해서 갔다는 식의 공격을 많이 받았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한나라당에 들어갈 때까지 아무런 보장이 없었다. 사실 그 때 이회창 총재한테 서울 송파를 줄 수 있느냐는 얘기를 했다. 그 분 지역구가 송파였기 때문에. 그 정도 기대감이 있었는데 강남을 줘서 감동 받았다. 당시 제가 굉장히 지명도나 호감도가 높은 상태라 냉정하게 정치적 판단만 하면 약간 어려운 데 보내서 한 석이라도 건져 내는 게 정치적 판단 아니겠는가.

Q 젊은 시절 환경을 매개로 시민단체 활동을 했다. 환경 관련 시민단체라고 하면 진보적 색채가 강한데 정치 시작은 보수당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A 당시 환경 운동을 오래 해오던 시기여서 어느 당이 더 효율적으로 내 갈증을 풀어줄 수 있을까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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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운동보다는 공부를 선택한 데 대한 어떤 부채 의식이란 것이 있었는데 정치 참여 시점에 이것이 사회에 대한 부채 의식으로 바뀌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야당이었다. 쉽게 여당에 편승하기 보다 야당을 선택한다는 가치도 작용했다.

Q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던 초선 의원 시절과 앞으로 정치인 오세훈이 할 정치를 비교한다면.

A 이제 우리 사회가 다음 단계 도약을 위해 필요한 화두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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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정계에 입문했을 때 사실 정치를 잘 모르고 들어왔다. 그리고 유일한 관심사는 환경이었다. 그리고 정치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이 갖고 있는 노쇠하고 기득권을 대변하는 듯한 이미지에 개선을 꾀하겠다는 정도 였다. 하지만 이제는 경제 성장에 관심이 많은 보수정당을 통해 국부창출의 방법론에 대해 기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MBC 법률 프로그램 '오 변호사, 배 변호사'의 두 진행자 오세훈 변호사와 배금자 변호사가 나란히 스튜디오에 앉아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오세훈은 누구

-1991년

1984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오 전 시장은 1991년 인천 부평의 한 아파트 일조권 침해에 대한 건설사 상대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변호사 오세훈’이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는 최열 대표와 함께 환경운동연합 창립멤버로 활동하며 TV 프로그램에 고정출연, 대중적 인기를 얻는다.

-2000년, 2004년

2000년 16대 총선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 강남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한다. 초선 시절 젊은 소장파 의원들과 미래연대 모임을 주도, 5공 6공 인사 퇴진 등 개혁적 목소리를 내며 ‘정치인 오세훈’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다. 2004년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후 기업의 정치자금 후원 금지, 고액기부자 명단 공개지구당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오세훈법’을 주도한다.

-2006년, 2010년

국회의원직을 내려 놓은 오 전 시장은 2년 만인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 당선돼 제2의 길을 걷는다. 디자인 서울과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대기질 개선, 강남북 격차해소와 균형발전 등의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한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가까스로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하지만 곧바로 무상급식 논란에 휩싸인다.

-2011년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오 전 시장은 야권에서 주도한 무상급식 프레임에 전면전을 선언한다. 무상급식 찬반을 주민투표에 붙인 것이다. 여소야대 서울시의회에서 오 전 시장이 선택한 최후의 카드였다. 그는 2012년 대선 불출마와 시장직 사퇴라는 정치적 배수진을 치며 선거 독려에 나선다. 하지만 투표율 저조로 주민투표함조차 개봉하지 못하는 참패를 당한다. 결국 선거 이틀 후인 2011년 8월 26일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난다.

기획 및 글

양정대기자 torch@hankookilbo.com

김성환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이동현기자 nani@hankookilbo.com

사진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디자인

백종호 jongho@hankookilbo.com

속기 및 보조

최주호 인턴기자(서강대 정치외교학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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