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의혹보다 거짓 해명이 문제

청문회 두려워 새 인물을 못 찾아서야

도덕성 문제는 대통령이 풀어 줄 수도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5일 새벽 성완종 리스트 의혹과 관련, 검찰 조사를 마친 뒤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을 나와 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이 세상에 진실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진실이야 수사에서 밝혀지겠지만, 그를 ‘현 총리’에서 ‘전 총리’로 끌어내린 것은 3000만원 의혹보다 거짓말이었다. 의혹이 불거지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해명들을 국민은 전혀 믿지 못했고, 그 결과 총리직을 수행할 수 없을 만큼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국민을 속이는 총리가 앉아 있는 것보다 총리 공백상태가 국가에 훨씬 피해를 덜 끼치는 것은 당연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 달 가까이 후임 총리후보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애초 후임 총리를 염두에 두었겠지만, 사정이 생겼음이 분명하다. 성완종 리스트 이후 청와대 대응을 보면 ‘거짓말’보다 ‘불법 정치자금’ 쪽에 관심이 기울어져 있는 듯하다. 이 대목에서 국민의 인식과 적지 않은 괴리를 보인다. 그러다 보니 국민은 ‘정직한 사람’를 바라는데, 청와대는 ‘돈에서 청렴한 사람’을 찾는 모양이다. 그게 그거라고 여길 수도 있으나, 차이는 분명하다.

인사청문회 과정을 돌아보자. 위장 전입, 병역 소홀,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등에서 자유로운 인사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국민의 심판을 통과한 사람과 그렇지 못하고 낙마한 사람의 차이는 대체로 분명하다. 어쩔 수 없었다느니 과거의 관행이었다느니 사유를 달았지만 국민 앞에 시인하고 유감을 표명했던 사람은 그로 인해 낙마하지는 않았다. 반면 아니다, 혹은 기억에 없다고 우기다가 자신의 말들이 거짓임이 드러났을 때는 그 누구도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청와대는 ‘어디 황희 정승과 같은 사람 없나’하고 두리번거리는 모양이다. 조선 초 세종 시절에 20년 가까이 지금의 총리직을 맡아 국가를 반석에 올린 정승이었던 만큼 현 정부만의 희망사항이 아닐 것이다. ‘황희 정승’을 물색하는 일이야 당연하지만 왜 그인가에 대해서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그가 이름을 빛낸 이유는 여럿 있지만 최고의 덕목은 정직이었다. 출생신분과 출세과정이 당시 관리들이 보기에 정승의 자리에 미흡하다고 여겼지만 그는 숨기거나 부인하지 않았다. 오랜 공직생활에서 수뢰나 축재의 문제가 경쟁자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지만 거짓말로 둘러대지 않았다. 그의 정직함은 백성과 임금으로부터 오히려 깊은 신뢰를 얻었다. 그가 조선 초기의 개혁을 마무리하고 내정을 안정시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힘이었다. 요즘의 시각으로 치환하면 도덕적으로 완벽한 총리는 아니었지만 정직과 신뢰로 조직과 정책을 견고하게 이끌었던 셈이다.

이완구 전 총리의 후임자 대상으로 47명의 후보군(群) 명단까지 나돌고 있다. 호남총리가 되어야 한다거나 충청배려가 필요하다는 말도 많다. 정무형, 관리형, 경제통 등의 얘기도 넘친다. 책임총리를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사람’이라고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 조선시대 정승의 역할과 거의 일치한다. ‘준비된 황희’가 돌연 나타나 세종을 보좌하여 나라를 안정시킨 것이 아니다. 총리는 대통령이 하기 나름이다.

현재의 청문회 과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총리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대통령이 정치력을 발휘한다면 국민의 이해에 기댈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하나의 시나리오를 상상해 본다. 박 대통령이 ○○○씨와 함께 국민 앞에 선다. 손을 잡는 것도 좋겠다. “제 옆에 계신 ○○○씨를 총리후보로 지명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부족함이 있었고, 저런 부분 때문에 국민께서 염려하실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이 분의 능력을 잘 검증하시어 저와 함께 국정을 이끌도록 도와 주십시오.” 이어 총리후보는 부족함과 염려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국민 앞에서 정직하게 설명한다. 사과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언론과 야당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논설고문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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