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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유학파 어떻게 대한민국을 장악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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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유학파 어떻게 대한민국을 장악했나

입력
2015.05.1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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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사이에 낀 '미들맨'

유학시절 언어·국적 장벽 비주류

정체성 혼란 경험하며 받은 학위

귀국 후 강력한 문화자본으로 작용

한국 학부·美 박사학위 최적 조합

15년 간 유학생들 궤적 추적

지배받는 지배자 김종영 지음 돌베개 발행ㆍ318쪽ㆍ1만6,000원
지배받는 지배자 김종영 지음 돌베개 발행ㆍ318쪽ㆍ1만6,000원

한국 사회는 ‘미국 사랑’이라는 열병을 앓은 지 오래다. ‘이승만 박사’의 등장 이래 미국 유학은 의심할 나위 없는 출세의 첩경으로 각인됐다. 미국에 유학 오는 학생들을 국적별로 보면 중국(23만명) 인도(9만명) 한국(7만명) 순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고, 인구 수를 감안하면 중국의 7.8배, 인도의 17.5배로 압도적 1위다. 입신양명의 필요조건, 미국 학위를 얻기 위해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학원 문턱이 닳고, 국제학교 열풍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배받는 지배자’(돌베개)는 미국 유학파 지식권력의 탄생과정과 속성, 작동방식을 해부하는 책이다. 사회학자인 저자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 유학 지식인들의 궤적을 추적해 이들이 어떻게 학계와 기업을, 나아가 한국 사회를 장악하는지 되짚었다. 1999~2005년 미국 한 연구중심대학에서 한국 학생 50여명을 만나 유학 동기와 생활을 물었고(1차), 2011~2014년 한국에서는 유학 후 자리잡은 80명을 면담하는(2차) 등 15년 간 발품을 들인 성과다. 1,2차 두 번 모두 만난 이는 20명이다.

김 교수는 이를 통해 유학생들이 가진 네 가지 욕구를 읽어낸다. 한국 내 사회적 지위를 끌어 올리고 싶고, 글로벌 학문의 중심에서 배우고 싶고, 비민주적 한국의 대학 문화로부터 탈출하고 싶으며, 코즈모폴리턴 엘리트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다.

“분명히 유학 갔다 온 사람이 대우를 받는데, 유학 갔다 왔다고 해서 잘한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왜 내가 국내 박사 해가지고 저런 사람에게 단지 학벌로 밀려야 되느냐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면접자 A)

“한국 대학에서도 다 미국 대학 출신 교수들이 가르쳐요. 교재도 다 한글이지만 내용은 미국에서 따온 거고. 내가 왜 여기 앉아서 세컨드 핸드로 공부해야 되나. 나도 퍼스트 핸드로 배우고 한국에 전수하고 싶었던 거에요.”(면접자 B)

하지만 이들의 유학 생활은 대체로 화려하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열등한 국적을 지녔다는 위축감 속에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여기게 되며 자신의 장애와 능력의 한계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방향감각 상실, 뿌리뽑힘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좌절과 혼란 속에 얻어냈어도 이들의 학위는 한국 사회에서 꽤나 강력한 문화자본으로 기능한다. 교수들의 연구 실적을 올리기 위해 SCI급 영어논문을 고대하는 대학에서도, 생산의 글로벌 분업화를 확대하는 기업에서도 미국 학위자 선호 현상은 뚜렷하다.

이 때문에 김 교수는 이들을 ‘지배받는 지배자’ ‘트랜스내셔널 미들맨’으로 명명한다. 미국에서는 완벽하지 못한 영어 발음에 머리를 쥐어 뜯고, 주류 사회에 진입할 수 없는 영원한 이방인이었지만, 한국에서는 당시 경험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계인이자 중간자라는 취지다. 지배받는 지배자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자본가 계층에 종속된 지식인을 일컬은 용어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끼인 미들맨 지식인은 끊임없는 정체성 혼란을 경험한다. 한국에 정착한 지식인들은 미국과 한국의 학문 공동체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침으로써 어디에 소속돼 자신의 연구와 삶을 헌신할지 고민한다.”

미국 유학파가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원인은 한국적 학벌주의와 미국 학위 선호현상이 만나는 ‘글로컬 학벌 체제’에 있다고 본다. 이 체제에서 한국 학부 학위와 명성 높은 미국 연구중심대학 박사학위의 조합은 최적의 자본으로 기능한다.

“학문의 제도적 담지자인 대학은 진리의 전당일 뿐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의 등급을 분류하는 기계다. 학벌 인종주의로 물든 한국 사회에서 한국 엘리트들에게 최고의 지적 등급을 부여하는 곳은 미국 대학이다.”

하지만 이들이 미국과 한국 대학의 지식 간극의 중간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뿐, 탁월한 연구성과를 내놓지 못한다는 것 또한 문제다. 연구 자원이나 인력의 전문성 부족, 영어 논문과 한국어 논문을 각기 달리 요구하는 인정체계의 파편화, 연구 문화의 파벌화 및 정치화 등 다양한 요소가 이들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미국에서 생산된 지식을 빠르게 국내에 수입 판매하는데 열을 올리게 되고, 한국은 계속해서 ‘배우는 나라’ 미국은 ‘가르치는 나라’의 역할에 충실하게 된다는 것이 그가 포착한 악순환이다. 취약한 한국 대학의 토양은 다시 학생들을 유학길에 오르게 한다.

그 스스로도 미국 유학파인 김 교수는 이 헤게모니 극복을 위해서는 한국 대학과 학계의 천민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천한 근대 과학의 전통, 열악한 재정, 학문 후발주자로서의 위치, 영어의 세계적 지배력, 학문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업무 체계, 젊고 유망한 학자를 부려먹는 조직문화, 철저한 실력 검증을 하지 않는 교수 사회 등 그가 지적한 취약점은 우리 대학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많은 시간과 노력 인내가 필요하다. 숙명론적이고 비관적 전망보다는 냉철하면서도 긍정적 안목으로 꾸준히 매진하는 것 외에 길은 없다. 대학문화의 전근대성을 극복하고 실력 위주의 학술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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