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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짓' 말리시던 아버지도 "묵을 만하네"

입력
2015.05.0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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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딩동~”

어버이날인 8일 오전 6시, 부모님이 사시는 대구 달서구의 아파트를 찾았다. “누구라예?” “준홉니더, 어무이.” “니가 꼭두새벽에 머하러 왔노?” “출장 요리 왔심더.” 그랬다. 이날 부모님은 나이 오십 된 큰아들이 차린 아침밥상을 난생 처음 받으셨다.

어버이날 아침밥상 선물은 당초 각본에 없었다. 원래는 7일 저녁 함께 외식하는 것으로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올해 대학에 입학한 큰딸이 워낙 바빠 이날 시간을 내지 못하게 되면서 8일 아침에 찾아 뵙기로 했다.

그렇다고 어버이날 아침에 어머니가 상을 차리도록 할 수는 없는 노릇. 3월 초부터 두 달 정도 요리를 배워 헛배짱이 두둑하던 차에 당연히 상차림은 내 몫이었다. 메뉴는 대구의 명물인 ‘동인동 찜갈비’로 정했다. 일반 찜갈비과는 달리 마늘과 고춧가루를 듬뿍 뿌린 이 음식은 1970년대 대구 중구 동인동에 음식점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대구 명물로 자리잡았다. 아내는 전날 저녁 정육점에서 소갈비를 사 날랐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세수하고 샤워하고 5시40분쯤 갈비와 마늘, 배 한쪽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고교생인 둘째 딸은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는지라 빠졌고, 아내와 큰딸에게는 요리가 다 될 즈음 오도록 일렀다. 가뜩이나 “설거지가 깨끗하지 않다”며 잔소리를 퍼붓는 아내가 ‘시월드’에서까지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현관 문을 들어서자마자 전투복으로 갈아입었다. 간장에 고춧가루까지 듬뿍 쳐야 하는 요리라 앞치마는 필수였다. 하필이면 색깔이 주황색이다. 소갈비에 칼집을 내고 핏물을 빼는 동시에 물을 끓였다. 배즙과 맛술에 잠시 담갔던 갈비를 끓는 물에 넣고는 마늘과 파, 생강을 다졌다. 감자와 홍당무는 주사위 모양으로 썰고, 청량고추도 엇썰었다.

어머니는 본의 아니게 주방보조가 됐다. “가만히 앉아 계시라니까요”라고 말은 했지만 간장과 고춧가루가 어디 있는지, 쟁반이 어디 박혔는지 모르니 주방 주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왁자지껄 소리에 아버지가 잠에서 깨셨다. “머하노?” “별 거 아입니더. 밥 합니더.” “아이구~ 때리 치아라, 임마.”

여든 둘의 아버지와 일흔 여섯의 어머니를 위해 어버이날 아침상을 차려드렸다. 손사래를 치시던 아버지의 미소를 난 놓치지 않았다. 전준호 기자
여든 둘의 아버지와 일흔 여섯의 어머니를 위해 어버이날 아침상을 차려드렸다. 손사래를 치시던 아버지의 미소를 난 놓치지 않았다. 전준호 기자

올해 여든 둘인 아버지는 평생 당신 손으로 밥상을 차려 보신 적이 없다. 일흔 여섯의 어머니는 요즘도 하루 세끼 밥상 차리느라 하루 해가 짧다. 물론 지금은 아버지 역시 이빨 빠진 호랑이과로 분류되지만, 부엌 드나들기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퇴근 직후 “밥 차려라” 한마디 하곤 베개 두 개 겹쳐 기대고 TV 시청모드로 돌입하셨다. 식사 때와 주무실 때를 빼고는 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 아버지 눈에 요리하는 큰아들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물 400cc에 간장, 설탕을 각각 90cc, 50cc 넣고 잘 섞은 양념장을 소갈비 끓인 냄비에 붓고 있는데 야구 녹화방송을 보시던 아버지가 슬그머니 다가 오더니 혀를 차곤 가셨다. “아~ 다 베려놨네.” 각오했던 일이다. 양념장 절반에 홍당무와 감자를 먼저 넣고 익혔다. 남은 양념장을 모두 붓고 양파와 고추, 그리고 고춧가루를 듬뿍 뿌린 뒤 간이 잘 배도록 저었다.

이제는 밥을 지을 차례. 요리학원씩이나 다닌 터라 전기밥솥에 기댈 수는 없었다. 6인분 불린 쌀을 냄비에 넣고 약불에 맞췄다. 어머니는 “4인분도 안 된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7인분도 거뜬했다. 밥그릇에서도 세대 차가 나는가 보다. 된장찌개도 끓였다. 자신만만하게 칼질을 하는 아들에게 평생 요리를 해오신 어머니가 묻는다. “고기는 요만큼 넣어만 되겠나?”

오전 7시30분 막 상을 차려 내려는 무렵 아내와 큰딸이 들이닥친다. 타이밍이 절묘하다. 아버지는 며느리를 붙들고 또 한 마디 하신다.

“며늘아, 아바이 좀 저 짓 못하게 좀 해라.”

“집안이 난장판이 돼서 저도 말리는데, 말을 안 듣네요. 아버님.”

시아버지, 며느리 간에 손발이 척척 맞는다. 나만 공공의 적이다.

둥근 밥상에 모두 둘러 앉게 하고 음식을 내왔다. 밥이 조금 질었다. 된장찌개와 김치를 내고, 큰 접시에 갈비찜을 올렸다. 학원에서 배운 대로 감자와 홍당무, 양파를 갈비찜 위에 고명처럼 얹었다. 앞치마 두르고 상 차리는 모습을 아내가 카메라에 담는다. 아버지의 표정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자 이제 고마 푸이소, 인상. 맛부터 보시라니까요.”

밥상 위로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어머니가 큰손주 대학 생활을 물으면서 밥상에 평화가 깃들었다. 어머니는 “맛있데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건만, 통 말씀이 없던 아버지는 식사를 마치고 수저를 내려 놓으면서 한마디 하신다. “묵을 만하네.” 아버지 얼굴을 스치는 미소를 난 놓치지 않았다.

속으로 ‘합격!’을 외쳤다. 오리지널 경상도 남자인 아버지께서 그리 말씀하실 정도면 ‘굉장히 맛있다’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그 말은 앞으로 앞치마 두르고 요리하는 짓을 권장하지는 않겠지만, 눈감아줄 수는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두 달 배운 요리 솜씨로 50년 만에 아버지, 어머니께 밥 한끼 차려 드렸다. 입에 딱 붙는 손맛은 언감생심, 요리학원 수강도 20일 정도 남아있지만 난 이미 본전 뽑았다. 이걸로도 충분하다.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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