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38 복직준비

얼마 전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이래 봤자 동네 뒷산 한번 오르는 것인데, 미루고 미루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교체공사가 계기가 됐다. 공사기간 3주 동안 12층까지 걸어서 오르내리다 한심한 체력을 목격했는데, 계속 방치했다간 곤란하겠다 싶었다. 물론 복직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몸에 긴장을 불어넣을 필요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요즘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아들에게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날들의 연속이지만 이 아빠가 회사로 돌아갈 날이 다가오니 모든 일의 초점은 복직에 맞춰지게 된다.

머리만 해도 그렇다. 아내가 해주는 대로 머릴 하고 다녔는데 최근 동네 미용실을 찾아 전문가의 손길로 다듬었다. 설거지와 청소, 빨래를 하는 데에는, 어린 아들과 놀아주는 데에는 어울렸을지언정(아이들은 사자머리라며 좋아했다) 그 머릴 하고 취재를 하기엔 좀 곤란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이 아빠의 머리를 아내가 예전부터 하던 건 아니다. 문구가위로 아들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던 아내는 ‘아들 머리 두 번 깎으면 투자금 전액 회수’ 운운하며 전동바리캉을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아들 머리를 해주면서 자신감을 얻었는지 지난해 육아휴직으로 이 아빠가 집에 들어앉자 직접 깎겠다고 나섰다. “여보, 어디 나다닐 것도 아닌데 그냥 집에서 깎아. 수입도 줄었는데 이렇게라도 아껴야지 안 그래?”10년 넘게 출입하던 신촌 미용실엔 발길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이 아빠는 복직을 앞두고 아내의 가위를 뿌리쳤다.

엘리베이터 공사기간 계단을 오르내리다 바닥난 체력을 실감하고 시작한 운동. 아파트 단지와 인접한 산이었지만 운동에 앞서 스마트폰의 달리기앱을 켜자 ‘8개월 만에 운동을 시작하셨군요’했다.

지난달부터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것도 이달 말로 다가온 복직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이 아빠는 식도ㆍ후두염 진단을 받았는데 의사는 환자의 변명을 들은 뒤 몸을 아래위로 한번 훑더니 ‘먹은 뒤 2시간 이내 눕는 식습관’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실제로 식사 후 아들을 재우기 위해 같이 눕거나, 재운 뒤 퇴근한 아내와 노닥거리며 야식을 더러 먹었다. 아들 보느라, 바깥사람 내조하느라 얻은 훈장(?)과도 같은 병이지만, 복직한 뒤에 진료를 받는 것보단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낼 수 있는 지금 고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어디 이뿐인가. 자동차서비스센터 들러서도 정비에 몇 시간씩 걸리는, 당장은 문제가 안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돼 이 아빠의 시간을 뺏을 것 같은 것들을 모조리 손봐버렸다. 또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베란다 창고 정리도 최근 한번 했고, 안 입는 옷 정리, 아들이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 정리 작업도 진행 중이다. 복직하고서도 아들과 시간을 보낼 때 될 수 있으면 엉뚱한 데 시간 좀 덜 뺏기고 싶어서다.

복직을 앞두고 아빠의 빈자리를 약간 채워줄 ‘이모’도 정부의 아이돌봄 지원사업을 통해 지난달 소개 받았다. 복직 전 일주일가량 인수인계, 새 선생님(이모)에 대한 아들의 적응 정도만 거치면 복직준비는 마무리된다.

같이 놀아주던 아빠의 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걸 아는지 아들은 요즘 어린이집에 상당히 빠른 속도로 재미를 붙이고 있다. 들어가기 싫어 문 앞에서 그 난리를 피우던 녀석이 이젠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마중 나온 선생님한테 안긴다. 뒤에 선 아빠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고 쑥 들어간다. 약간의 서운한 감이 없진 않으나 이 아빠는 동시에 시원함(?)도 느낀다. 아내는 어찌 그리 박절할 수 있느냐 하지만 그렇게 계속 보듬고 있을 수도 없고, 계속 그러는 것도 아들에게 좋을 것 없다는 게 이 아빠의 입장이다.

남은 것은 아빠(가 예전처럼) 없는 새로운 환경에 아들을 연착륙시키는 것. 아직 원활한 의사 소통이 되지 않는 아들이라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밤마다 잠자리에서 해주는 이야기 하나를 늘렸다.

‘이제 스무 밤만 자고 나면 아빠도 엄마처럼 회사 출근한다.’

‘이제 열아홉 밤만 자고 나면 00(아들)도 다른 친구들처럼 할머니랑 어린이집 가야돼.’

‘앞으로 열여덟 밤만 자고 나면 00가 아빠를 불러도 바로 못 갈 수도 있어.’

아들이 아빠 없는 생활에도 잘 적응하길 바라는 주문이지만, 이 아빠에게 거는 주문이기도 하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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