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의 '청산별곡'] 1. 서울 야경 1번지, 관악산 정상

※ ‘올라갔다가 내려올 것을 뭐 하러 올라가?’라고 말하는 분들에게, 산이라고는 동네 앞산, 뒷산이 전부인 분들을 위해 한국일보 이현주 기자의 새 연재물을 소개합니다.

프롤로그

중학교는 산중턱에서, 고등학교는 산자락에서, 대학교는 산기슭에서.

아무리 국토의 70%가 산인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나의 등굣길은 왜 이렇게 고단했는지 모르겠다. 10분이라도 늦게 일어나는 날이면 지각을 면하기 위해 가장 가파른 교문 앞 오르막길에서 ‘막판 스퍼트’를 발휘해야만 했다. 요즘 아가씨들에 비해 유난히 튼실한 하체를 지닌 것도 10년이 넘는 ‘단련의 세월’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오르는 것에 대한 부담이 덜한 편이다. 수능을 마치고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배치표의 현실을 바라보며 답답한 마음에 관악산에 올랐었다. 취업 재수 때는 산신령님께 빌어라도 보자는 심정으로 지리산 종주를 떠났었다.

즐거운 나날에도 산은 좋은 놀이터였다. 스무 살부터 ‘산다람쥐들’이라는 소모임의 선봉장 역할을 자처하며 지방 명산과 근교 산들을 탐험하는 매력에 흠뻑 빠져 지냈다. 한창 젊은 것들이 왁자지껄 몰려 다니면 어르신들이 기특한 마음에 배낭 속에서 막걸리 한 잔, 초콜렛 하나를 꺼내어 건넸다. 험준한 바위 구간에서는 등산객 아저씨들이 ‘어서 내 손을 붙잡으라’며 다가오는 등 평지(?)에서는 누릴 수 없었던 인기를 만끽하기도 했다.

앞으로 연재하게 될‘청(춘)산(행)별곡’에서는 대한민국 젊은 산악인 중 한 명이라고 자부하는 기자의 시선에서 한국 등산 문화의 다양한 결들을 소개하고 싶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동안 스스로 축적해온 등산 비법들을 소개하고, 등산이 중장년층의 여가생활이라는 편견을 깨는 흥미진진한 등산의 세계를 보여줄 작정이다.

지난 1일 연주대 근처 바위에 올라 촬영한 서울의 야경. 반대편에서는 안양, 과천 야경도 조망할 수 있다.

[도심 속으로 1편] 서울 야경 ‘1번지’=관악산 정상

남산 타워, 북악산 팔각정, 유람선 위 한강 야경 등 서울에서 야경은 잘 팔리는 ‘경험’중 하나다. 늦은 새벽까지도 웬만한 곳은 훤한 대낮처럼 밝게 빛을 내는 곳이 서울이기 때문이다. 이들과 비교하면 적어도 꼬박 한 시간 반을 기어올라야 하는 관악산 정상의 야경은 분명 시장 가치가 한참 떨어지는 경험이다. 으슥한 밤 산길로 들어선다는 것도 웬만한 담력이 아니고서야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일 테다.

하지만 일단 올라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지난 1일 함께 소모임 ‘산다람쥐들’의 일원들과 관악산 야간 등반에 나섰다. 야간 등반이 낯설지 않지만 관악산을 밤에 오른다는 것에는 미처 생각이 닿지 않았었다. 서울의 사당, 서울대, 경기도 안양, 과천을 끼고 있는 관악산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오를 수 있는 편한 산이다. 굳이 어두운 밤길을 택하지 않아도 휴일 아침 3시간만 투자하면 훌쩍 올라갔다가 내려올 수 있는 ‘쉬운 산’으로 여겨졌다.

‘관악산을 밤에 타보자’라는 발상이 떠오른 것은 최근 며칠 비가 이어진 뒤 맑게 갠 서울의 하늘을 보고 나서다. 관악산의 모든 계곡과 능선이 모아지는 연주대에 오르면 야경 또한 ‘끝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천 향교 부근에서 출발하면 관악산 정상인 연주대까지 3.2km면 도착한다. 일반인 걸음으로 1시간30분에서 2시간 가량 걸린다.

여러 갈래의 등산로 중 연주암에 오르는 가장 가까운 길인 과천 향교 루트를 선택했다. 다른 루트에 비해 살짝 가파르긴 하지만 3㎞면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밤 12시에 돌아오는 것을 목표로 오후 9시에 등산로에 접어들었다. 산책을 하던 시민들이 “야간 산행에 나서는 것이냐”, “조심히 돌아오라”등 인사말을 건넸다. “밤에는 멧돼지가 나온다더라”며 엄포를 놓는 사람도 있었다. 초반 1시간 정도는 긴장이 풀어지지 않았다. 정말 멧돼지가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산으로 숨어든 들개에게 물리는 것은 아닌지 어지러운 생각이 들었다.

낮에는 만만한 산행 길도 밤에는 고난이도 루트로 변신한다. 랜턴이 앞길을 비춰주긴 하지만 시야가 짧아, 잘 아는 길도 헤맬 수 있다. 그래서 초행길보다는 낯익은 탐방로를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 오르는 길에는 환하더라도 내려올 때는 밤이 깊어져 어둠이 짙어진다. 여분의 랜턴을 준비하는 것이 필수다. 하산할 때는 지형, 지물에 더욱 신경써야 한다. 여름철이라 해도 땀이 식으면 금방 체온이 떨어진다. 가방에 체온을 지켜줄 옷가지와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식량을 챙기는 것이 좋다.

연주암에서 만난 김석용씨와 홍대식씨. 두 등산객은 안양 방면 야경을 즐길 수 있는 과천 향교 뒤편 능산을 따라 올라왔다가 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가고 있다.

등반 1시간30분 만에 연주암 안으로 들어섰다. 평소 같으면 사방에서 모여든 등산객들로 북적대는 절이지만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연주암 뒤편으로 강한 헤드라이트 불빛 두 개가 흘러 들어왔다. 이날 처음 만난 등산객이다. 고등학교 동문인 오십대 김석용씨와 홍대식씨가 “어서 연주대에 가서 야경을 보라”며 재촉했다. 홍씨는 “청계산도 접근성이 좋긴 하지만 시야가 막혀 야간 산행에 적절하지 않다. 이 주변에서는 관악산 야경이 제일”이라며 엄지를 치켜 세웠다. 김씨 역시 “낮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든 집중이 안 되고 말이 퍼진다. 밤에 헤드라이트를 끄고 능선에 앉아 대화를 나누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며 야간 산행의 매력을 설파했다.

날씨가 더워지면 도심 야간 산행에 나서는 등산객들이 늘어난다. 주의할 점은 서울 근방의 산이라도 북한산, 도봉산 등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은 야간 산행이 금지된다는 것이다. 산불 방지 기간인 3~5월은 단속이 더 철저하다. 입산 통제 시간 이후에 등산을 하면 자연공원법 28조에 의해 과태료 10만원을 물게 된다.

어쨌든 황급히 연주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주암에서 15분 정도면 금세 깎아지른 절벽에 매달린 암자에 다다른다. 앞서 두 등산객이 말한 대로 절경이 펼쳐졌다. 왼쪽으로는 남산타워, 오른쪽으로는 롯데월드타워가 우뚝 솟아있다. 그 사이로 대로를 따라 줄지어 선 노란 가로등과 쌀알 같은 불빛들이 어둠을 수놓았다. 산등성이로 부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면서, 한편으로는 저 복잡한 도시에서 물러나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이 근방 어떤 곳보다도 야경에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장소다. 내 멋대로 관악산 정상이 ‘서울 야경 1번지’라고 정해본다.

이현주기자 memor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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