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촌기자, 앞치마 두르다] 1. 요리의 완성은 설거지

※ 대구토박이로 오십 고개를 갓 넘은 전준호 기자가 요리에 입문했습니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 ‘갱상도 싸나이’가 앞치마를 두른 사연, 그 후 달라진 세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마누라, 내 인자 요리 배울끼다.”

2012년 어느 날, 목에 힘이란 힘은 다 주고 한마디 던졌다. 어머니 손맛에서 아내 입맛으로 갈아타면서 오십 가까이 차려주는 밥상만 받아 온 나로서는 정말 쉽지 않은 선언이었다. 이 말을 내뱉기 위해 머리 싸맸던 시간을 생각하면 스스로도 대견하기 그지 없었다.

가장 큰 수혜자는 아내이고, 다음이 아빠 요리를 맛 볼 두 딸이 될 터이니 환호작약까지는 아니더라도 전폭적인 지지가 뒤따를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아내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저 묘한 표정은 뭐지? 갑자기 누리게 된 호사에 충격이라도 받은 건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자니 드디어 아내의 말문이 터졌다.

“당신 아나, 요리의 완성이 머꼬?”

느닷없는 질문에 허를 찔린 나는 잠시 허둥댔다.

“요리의 완성? 시작이 반이니 절반은 됐고, 이제 만들면 끝나는 거 아이가?”

슬쩍 코웃음을 치던 아내는 기어이 찬물을 끼얹었다.

“요리의 완성은 설거지다, 설거지. 요리한다꼬 주방 다 어지럽히면 안 하니만 못하다. 고마 살던 대로 그냥 사소.”

아내는 알고 있었다. 남편이라는 작자가 요리한답시고 주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을 게 뻔하다는 것을. 어쩌다 라면 하나 내 손으로 끓여 먹을 때도 으레 냄비며 밥그릇 반찬그릇 설거지에 뒷정리는 고스란히 아내 차지였으니, 요리라는 말에 기겁할 만도 했다.

아내는 뒤치다꺼리를 절대 해주지 않을 태세였다. 연례행사로 설거지 한 번 하고 한해 내내 우려먹던 나에게 아내의 ‘설거지 사절’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요리와 설거지를 한 묶음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었다. “후회하지 말거래이.” 큰 소리 한번 치고는 요리 배울 생각을 접었다.

“설거지? 그기 뭐 대수라꼬~.” 각오는 비장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실크로드 답사를 가면서부터였다. 중국 시안과 둔황, 우즈베키스탄, 이란, 터키로 이어지는 답사 길에서 난생 처음 보는 음식들을 숱하게 만났다. 중국의 낙타발(서역이 시작되는 둔황의 전통요리로 실크로드 대표 동물인 낙타의 발로 만든 음식), 이란과 몽골, 중앙 유럽, 우즈벡의 샤슬릭(양꼬치구이), 러시아의 보르쉬(육수에 빨간 무와 감자, 당근, 양파 등 야채를 넣고 끓인 우크라이나식 스프), 터키의 케밥, 향신료 냄새가 가득한 인도의 전통 카레…. 며칠씩 상상을 뛰어넘는 요리를 맛 보는 건 즐거움이자 한편으론 고역이었다. 싫든 좋든 컵라면으로 때우지 않으려면 먹어야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 현지 음식에 적응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입맛처럼 귀소본능이 강한 것도 없다. 느끼한 입안을 청소하는 데는 고추장과 김치가 제격이었고, 비빔밥에 얼큰한 찌개를 먹어야 두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때 ‘그 간절한 일상의 음식 정도는 내 손으로 만들 줄 알아야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 같다. 거기에 내 딴에는 가족과 친척, 이웃들과 공유할 수 있는 최고의 매개체가 음식이라는 기특한 생각까지 얹어 ‘출정 선언’을 했는데, 보기 좋게 퇴짜를 맞은 것이다.

3년이 흘렀다. 러시아에 인도까지 실크로드 답사가 이어지는 동안, 요리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은 커져만 갔다. 그러다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3년을 보낸 큰딸이 올해 대학교에 입학하자 오랜만에 집밥 먹게 된 딸자식에게 따뜻한 밥 한끼 차려주고 싶었다. 그래, 요리다! 아내 생각은 3년 전 그대로였다. 설거지가 또 발목을 잡았다. 이러다가는 두부 한 모 썰어보기도 힘들 것 같았다. 갈등 끝에 마음을 굳혔다.

“그래 한다, 설거지. 그기 뭐 대수라꼬~.” (알고 보니 학원에서도 요리의 완성은 설거지였다. 당연한 소리지만 설거지 끝내놓지 않으면 집에 보내 주질 않는다.)

각오는 비장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일과 약속을 피해 온전히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은 새벽뿐인데, 출근 전 문 여는 어학원은 있어도 요리학원은 없었다. 말이 요리지 음식 몇 가지만 배우면 되건만, ‘차줌마 열풍’에도 불구하고 중년남성을 위한 요리교실은 없었다. 대구의 한 대학에서 이 과정을 열었는데 까딱하면 음주교실로 바뀔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기댈 곳은 도심의 정식 요리학원뿐. 이름도 거창했다. 밤낮으로 한식과 양식, 일식, 중식 조리사 과정이 개설되는데 한 강좌에 무려 100시간을 수강해야 한단다. 수강료도 만만치 않았다. 고용노동부의 ‘내일배움카드’(실업자 또는 재직자가 직업능력개발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훈련비를 지원하고 훈련이력 등을 통합 관리하는 카드)를 개설하면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매력이기는 했다.

드디어 대구 서문시장 근처 요리학원 ‘한식조리사과정’에 정식으로 등록했다. 오십을 갓 넘긴 대구토박이가 뒤늦게 요리를 배우겠다니 경상도 이웃들의 반응이 한결같았다. “와, 무슨 일 있나?” 집 안에 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이들은 더더욱 의아해 했다. “그런데 와? 뭐 할라꼬?” 3년 전 그날부터 훑어내려 온 사연을 듣고도 대부분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참, 별일이데이. 굳이 학원 가서 요리씩이나 배울 일이 뭐꼬?”

그러거나 말거나, 3월 9일 학원으로 향했다. 첫 강의에 행여 지각이라도 할까 봐 강의 시작 30분 전인 오후 6시30분에 건물 앞에 도착했다. 조리실은 8층이다. ‘잘 해보자, 홧팅!’ ‘내가 뭐 하는 짓이고?’ ‘딸들 입에 들어갈 맛난 요리만 생각하자.’ ‘어디 맛이나 제대로 내겠나?’…. 뒤늦게 널을 뛰는 마음에 발길이 붙들려, 평소 같으면 3분이면 족할 그곳까지 가는 데 10분이 넘게 걸렸다.

강사 왈, 이제부터 5월 말까지 매주 월ㆍ수ㆍ금 저녁에 50여 가지 한식을 배운단다. 배숙, 북어보푸라기, 매작과 등 듣도 보도 못한 메뉴까지 등장했다. 그런 거 만들 줄 몰라도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데…. 뭔가 살짝 꼬이는 느낌이다.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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