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미지의 세계' 이자혜 작가

"주인공 조미지가 성장하면 꿈도 끝나"

'미지의 세계'를 그린 이자혜는 "내 주변 사람들의 노골적인 욕망이 좌절되는 과정을 그대로 만화로 그렸다"고 했다. 이명현 인턴기자(숙명여대 미디어학부 4년)

20대 여성 조미지는 잘생긴 남자와의 만남, 예술계 유명인들과의 어울림, 존경하는 교수와의 맞담배를 기대한다. 하지만 정작 마주치는 현실은 비루하다. 유명인들이 오는 카페에서 비싼 커피를 사 마실 돈이 없다. 남자와 술을 먹으려니 집에 갈 택시비가 걱정이다. 멋있어 보이려고 산 담배는 부모님 앞에 놓여 “자식 잘못 키웠다”는 자책으로 돌아온다.

레진코믹스 웹툰 ‘미지의 세계’가 ‘병맛 만화’의 여성판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허영과 욕망을 비판하면서도 여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조미지의 이중성을 가식 없이 그려낸다. 어두운 면만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비판도 있지만 ‘공감된다’는 지지가 만만찮다. ‘미지의 세계’ 단행본 출판을 위해 500만원을 후원 받는 프로젝트에서 예상을 훌쩍 넘긴 1,368만원이 모금됐다.

지난해 8월부터 ‘미지의 세계’ 연재를 시작한 이자혜(24)는 사실 신인 아닌 신인 만화가다. 9년 전 중학생 때 온라인에 올린 만화 ‘산낙지를 잘 먹는 애기’로 유명해진 ‘겸디갹’이 그다. 산낙지를 잘 먹어서 방송 출연까지 한 아이가 성장하니 산낙지를 먹는 것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어 좌절한다는 내용으로, 실제 이런 방송을 본 이자혜가 그의 미래를 상상하다 나온 만화였다. 중학생으로선 당돌한 작품이었을 텐데 이자혜는 “당시 인터넷에는 행복해 보이는 것들을 비틀어 보는 만화가 유행했고 그 유행에 맞춰 그린 것뿐”이라고 했다. 독자들은 ‘사람을 편한 대로 쓰고 버리는 사회의 불합리성’ 등으로 해석했고 ‘겸디갹’은 일약 유명해졌다.

이후 홍익대 예술이론학과에 들어가기까지 그는 10여편의 웹툰을 그렸다. 그러나 ‘겸디갹’을 이자혜와 연결시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림체도 세밀하게 바뀌었고 표현 수위도 정제됐다. 하지만 사람을 보는 날카로운 관찰력과 암울한 주제의식만은 여전하다. “낭만적인 곳에서 머물다 돌아와 보면 텅 빈 집에 불이 꺼져 있고, 허무함을 느끼는 거죠. 이런 상황을 반복해서 그리는 게 진부할 수도 있지만 그게 현실이니까요.”

이자혜는 순수미술 전시에도 도전했다. 2014년 11월 서울 압구정동 커먼센터에서 열린 ‘청춘과 잉여’전에서 낡은 전시장 벽에 파스텔 벽화 ‘페미닌전사 앤니로리의 전설’을 그렸다. 성별간 권력관계가 역전된 세계를 유토피아로 삼고 그 반대 극단에 위치한 현실을 비판한 여성주의적 작품이다. ‘청춘과 잉여’를 기획했던 안대웅 큐레이터는 “꿈을 꾸는 것을 그치지 않지만 동시에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태도를 보여준 작품”이라 평가했다.

꿈만 꾸는 만화 속 조미지에게도 좋은 미래가 있을까. “미지가 좀 더 성장하면 끝이 나겠죠. 근데 성장한다는 것도 꿈을 이루는 거라기보단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고, 무뎌지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끝까지 꿈도 희망도 없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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