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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불길한 김정은 방러 불발

입력
2015.05.0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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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외교 무대 데뷔에 건 기대 무너져

외교고립 벗는데 남북관계 개선이 필수

박근혜정부가 앞장서 북한 이끌어 내야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오는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승전 기념행사에 참석한다고 4일(현지시간) 조선중앙방송이 보도했다. 당초 러시아는 승전 행사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초청했으나 김 제1위원장은 행사 불참을 통보했다. 사진은 지난해 2월7일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리셉션 행사에 참석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는 김영남 위원장(왼쪽)의 모습. 연합뉴스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오는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승전 기념행사에 참석한다고 4일(현지시간) 조선중앙방송이 보도했다. 당초 러시아는 승전 행사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초청했으나 김 제1위원장은 행사 불참을 통보했다. 사진은 지난해 2월7일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리셉션 행사에 참석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는 김영남 위원장(왼쪽)의 모습.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러시아 전승절 행사에 참석 않기로 했다는 뉴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김정은이 다자외교무대에 데뷔한다는 것 자체가 폐쇄 고립된 북한의 중대한 체질 변화를 뜻한다. 철통 보안과 경호 속에서 이뤄지던 할아버지나 아버지 대의 기이한 외국 방문 행태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그만큼 더 개방화되고 국제사회의 정상적 규범에 한발 더 다가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기대가 허망하게 됐으니 못내 아쉽고 안타까운 것이다.

러시아 쪽에서 먼저 김정은 전승절 참석 설이 흘러나왔을 때부터 미심쩍기는 했다. 2012년 권력승계 이래 어떤 외국 정상과도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회담 한번 갖지 못한 그다. 러시아의 70주년 전승절 행사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對)러 제재로 반쪽이 되긴 했지만 다수의 국가 정상들이 참석한다. 정상외교 경험이 전무한 김정은이 끼어들기엔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위스 유학 경험이 있고, 권력 전면 등장 후 아내를 공식행사에 대동하는 등 파격적 면모를 보여온 그여서 참석 못할 것도 없다는 기대를 했었다.

김정은이 최종 순간에 방러 하지 않기로 한 내막을 놓고 억측이 구구하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북한 내부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진 게 없다. 북한 내부 문제가 맞는다면 북한이 올해 들어 고위급 관계자 15명을 처형했다는 국정원 주장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북한 권력 내부에 긴박하게 돌아가는 징후는 없다며 내부 요인설에 회의를 표시했다.

그래서 북ㆍ러 관계에서 이유를 찾는 분석에 더 힘이 실린다. 과거 김정일 방러 시의 특별대우에 준하는 예우를 강력 희망했으나 러시아 측이 김정은에게만 특별대우를 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명했다는 설도 그 하나다. 다른 나라 정상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김정은의 방러 일정과 머무는 숙소 등이 속속들이 공개될 수밖에 없다. 자국민들에게 엄청난 불편을 끼치는 특별열차가 아니라 당연히 전용기로 오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김정은의 일반 노출빈도도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절대 존재인 수령을 결사옹위해야 하는 북한의 권력집단으로서는 그에 따른 부담과 스트레스를 감당할 준비와 자세가 안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스스로도 아직 준비가 안되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9월 중국의 전승행사에도 참석한다는 보장이 없다. 중국도 김정은을 초청해 놓고 있긴 하지만 그가 특별예우를 고집한다면 수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방러 불발을 불길하게 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김정은이 국제무대에 나설 준비도 자신감도 없다면 북한의 개방 노력은 그만큼 추동력을 얻기 어렵고, 폐쇄주의와 고립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남북관계 개선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 미ㆍ일 신밀월시대 개막, 중ㆍ일의 선택적 협력 등 동북아 정세 요동 속에 대한민국의 전략적 가치는 날로 낮아지고 존재감이 미미해진 상황이다. 고립무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미ㆍ중ㆍ일 틈바구니에서 운신이 한층 더 어려워진 것만은 분명하다. 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관계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런데 손벽을 마주쳐야 할 김정은 정권이 저리 자신이 없이 내부로만 움츠러 들어가는 것은 불길하고 난감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힘이 곧 정의이고, 국익 앞에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는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에서 남북 대결은 강대국들에 칼자루를 넘기고 칼날을 쥐는 거나 다름 없다. 김정은을 대화 장으로 끌어낼 수 있느냐에 우리의 사활이 걸려있다. 김정은을 대화상대로 분명하게 인정하고, 그의 체제를 일부러 흔들지 않는다는 강력한 신뢰를 보이는 것이 출발점이다. 원칙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요동치는 동북아 지정학적 역학을 냉철하게 읽고 우리의 입지를 세워가는 현실주의 노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다.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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