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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아베 발언 독법(讀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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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아베 발언 독법(讀法)

입력
2015.04.30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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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의회연설 실망과 분노 무성

‘통절한 반성’ 마침내 언급돼

‘70년 담화’ 비관은 아직 일러

아베 총리가 지난 29일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베 총리가 지난 29일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미국 방문을 지켜보는 세계의 눈은 주로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 등 미일동맹의 강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날로 뚜렷한 중국의 존재감이 그 배경임은 물론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이른바 ‘아시아로의 축이동(Pivot to Asia)’, 또는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전략과 국제무대에서 정치ㆍ군사적 발언권 강화를 바라는 일본 보수파의 숙원이 맞물렸다는 분석도 대체로 비슷했다.

이와 달리 아베 총리의 방미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주로 그의 입에 쏠렸다. 일본 총리 최초의 미 의회 상ㆍ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나올 과거사 관련 발언이 최대 관심사였다. 그가 8월15일에 내놓을 ‘종전(終戰) 70주년 담화’의 예고편이고, 그 내용에 따라 한일 양국이 현재의 불편한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가늠할만했기 때문이다.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의 ‘전후 50주년 담화’이래 역대 일본 총리가 거의 빠짐없이 언급해 온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痛切)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謝罪)’가 들어가는지, 양국 간 최대 과거사 쟁점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언급 여부가 가장 크게 궁금했다. 결과는 실망과 비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위안부 문제에는 일절 언급하지 않아 에드 로이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이 ‘실망’ 성명을 낼 정도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그는 방미에 앞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ㆍ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 연설에서 ‘침략’과 ‘깊은 반성(Deep Remorse)’이란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침략의 주체로서의 자기 반성이 아니었다. ‘침략ㆍ무력행사로 타국의 영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등의 반둥회의 원칙을 거론한 뒤 “일본의 과거의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이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다짐하는 데 그쳤다. 일본언론 보도에 따르면 반둥회의 10원칙 가운데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 부분을 인용하자는 조언이 있었지만, 결국 그 대신에 우회적 ‘침략’언급이 선택됐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반둥회의의 중심국이자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참석한 중국에 대한 고려를 한국에 앞세운 셈이다.

무대를 워싱턴으로 옮긴 아베 총리는 우회적으로도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 ‘스스로의 행위가 아시아 제(諸)국민에 고통을 안긴 사실’을 들어 행위 주체는 밝혔다. 그의 말은 연설 무대에 따라 조금씩 변했고, 보기에 따라 진전이라고 평가할 부분도 있었다. 미 의회연설을 근거로 그의 ‘70주년 담화’를 무조건 걱정할 것만은 아니라는 개인적 생각의 근거다.

그는 미 의회연설에서 ‘깊은 반성’대신 ‘통절(痛切)한 반성’이란 표현을 썼다. 반둥회의의 ‘깊은 반성’과 미국에서의 ‘통절한 반성’이 영어로는 같다는 이유로 국내에서는 잔꾀나 술수쯤으로 여기지만 일본에서는 크게 다르다. 실은 무라야마 담화의 ‘통절한 반성’도 영어로는 ‘Deep Remorse’였다. 미 의회연설에서는 ‘깊은 회오(Deep Repentance)’라는 표현도 동원돼 ‘통절한 반성’의 원래 뜻이 훨씬 생생해졌다.

또한 “과거사에 대한 생각은 역대 총리와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일본어), “역대 총리가 표명한 견해를 그대로 유지할 것”(영어)이라는 다짐도 일말의 기대를 갖게 한다. 개인으로서의 아베 총리는 절대로 침략이나 식민지 지배라는 표현에 공감할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 총리로서의 태도는 다르게 마련이다. 위안부 동원의 포괄적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에 대한 그의 거부감은 유명하지만, 총리로서는 한 번도 수정이나 폐기를 거론한 바 없다.

8월15일은 아직 멀다. 그의 개인적 마음가짐과 ‘유전자’보다는 총리로서의 언행에 집중해 꾸준히 변화를 촉구한다면 최소한 과거 수준의 담화는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때까지만이라도 그리 믿을 작정이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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