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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남성들 '혐오 그림' 본 후 흡연율 6%P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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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남성들 '혐오 그림' 본 후 흡연율 6%P 뚝

입력
2015.04.3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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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선 담배 면적의 85%나 차지

의무화 국가 늘어 내년이면 95개국

담배회사들 반대 논리 힘 잃어

세계에서 담뱃갑에 경고 그림이나 문구를 가장 크게 내 건 나라는 어디일까. 그림 크기가 크다는 건 그만큼 강력한 금연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인데, 아마 유럽의 복지국가나 영미 선진국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가까운 태국의 경고 그림이 전체 담뱃갑 면적의 85%를 차지해 세계에서 가장 크다. 경고 사진 속에는 입에 커다란 호스를 꽂고 있는 아기, 입술과 잇몸 이빨이 다 녹아 내린 성인의 얼굴 등 담배로 인한 각종 질병 환자들의 모습과 영안실에 누워있는 시신까지 등장한다.

태국이 이처럼 혐오스러운 사진까지 써가며 대대적인 금연정책을 펴는 것은, 푸미폰 아둔야뎃(88) 국왕의 부친이 ‘태국 공중 보건의 아버지’로 불리는 의사 마히돌 아둔야뎃 왕자이기 때문이다. 태국 정부는 일찍부터 공중 보건의 중요성을 깨달아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금연에 대한 개념조차 정착되지 않았을 때부터 담배의 해악을 강조해왔다. 태국은 이미 10년 전 담뱃갑에 경고 그림을 부착했고, 이후 흡연율이 대폭 감소하자 담뱃갑의 55% 크기였던 경고 그림을 지난해 85%로 키웠다.

우리나라는 담뱃갑 경고 그립 삽입 의무화 법안이 2002년 처음 발의됐지만 이후 국회에서 11번이나 입법에 실패했다. 전세계적으로는 2001년 처음 경고 그림을 부착한 캐나다를 시작으로 현재 77개국이 시행 중이다. 내년 5월 유럽연합(EU) 18개국이 참여하면 도입 국가는 95개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담배 경고그림 도입과 관련된 쟁점 중 하나는 혐오스러운 사진이 흡연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경고 그림이 흡연 욕구를 현저히 낮춘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고, 세계보건기구(WH0) 역시 가장 효과적인 금연정책으로 경고 그림을 권하고 있다.

실제로 경고그림 도입 국가들의 흡연율은 감소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터키는 2010년 경고그림 도입 이전 15세 이상 남성 흡연율이 43.8%(2008년)였지만 2012년엔 37.3%로 6.5%포인트나 감소했다. 캐나다도 2001년 도입 당시 24.7%였던 남성 흡연율이 2012년 18.7%로 대폭 감소하는 등 경고그림을 도입한 18개 OECD 국가들의 흡연율은 평균 3.6%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브라질에선 경고그림을 본 흡연자의 67%가 금연을 결심하게 됐다고 응답했으며 금연 상담전화 이용이 9배나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리스에서 청소년 570여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경고 문구보다 그림이 흡연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조사돼 청소년의 흡연을 막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정부도 담뱃갑 경고그림 삽입을 의무화하는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경고그림 부착 등 금연정책을 대대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지난해 42.1%로 OECD 국가 2위인 남성 흡연율을 2020년까지 29%로 떨어뜨리는 게 정부의 목표다.

그러나 담배회사들의 주장은 다르다. 흡연자들은 이미 흡연의 위험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경고 그림은 금연 효과가 크지 않으며, 경고 그림이 담배 회사의 표현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선 2009년 경고 그림 부착을 의무화하는 법이 통과됐지만 2013년 워싱턴의 연방항소법원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만든 경고그림을 담뱃갑에 부착하도록 하는 것은 담배회사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결해 아직 제도가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추세는 이미 경고그림 부착을 넘어 담뱃갑 ‘규격화 포장’으로 나아가고 있다. 세련된 담뱃갑 디자인이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흡연을 유도한다고 판단해 담뱃갑에 브랜드 이름만 넣고 담배회사 로고나 컬러 등의 사용을 금지하는 제도다. 호주는 설문조사를 실시해 청소년들이 가장 싫어하는 색깔인 짙은 올리브색으로 담뱃갑 색깔을 2012년 통일했다. 아일랜드와 영국은 내년 5월부터 규격화 포장을 실시하고, 노르웨이 뉴질랜드 프랑스 등도 관련 법안이 추진 중이거나 도입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이성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경고그림은 흡연자의 금연을 유도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청소년들을 담배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이라며 “경고그림은 금연 효과가 없다고 담배회사들이 주장하는 것은 마지막 남은 마케팅 수단인 담뱃갑을 지켜내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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