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의 안내로 청와대 공식환영식장에 들어서는 모습.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비슷한 점이 많다. 나이도 한 살 차이 밖에 안 나고 취임한 시기도 거의 같다. 아버지의 대(代)를 이어 국가 지도자가 됐다는 점도 마찬가지이다. 유사한 게 많으니 만나면 서로 말도 잘 통한다.

그러나 시 주석과 박 대통령의 외교 행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시 주석이 지난 2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만난 건 이러한 차이를 잘 보여준다. 시 주석은 지난해 11월에도 베이징(北京)에서 아베 총리와 회담한 적이 있다. 당시 아베 총리는 인민대회당의 한 접견실에서 시 주석이 등장하자 미소를 가득 띤 얼굴로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시 주석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마지 못해 악수를 받았다. 더구나 아베 총리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취재진 쪽으로 돌렸다. 머쓱해진 아베 총리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이처럼 아베 총리를 ‘모욕’한 시 주석은 그러나 이번엔 미소까지 내비쳤다. 시 주석은 “일본은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하긴 했지만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국제 사회의 폭 넓은 환영을 받고 있다”며 일본의 동참을 요청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국익을 위해선 만나기 싫은 사람도 만나 마음과는 달리 미소도 지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시 주석은 알고 있는 듯 하다.

반면 박 대통령은 여전히 아베 총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있다. 일본 우익 정치인의 역사 인식에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만나지도 않는 건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만나야 한다.

시 주석은 나아가 다음주엔 주리룬(朱立倫) 대만 국민당 주석과도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자격으로 만나는 것이니, 7년 만에 이뤄지는 국공(國共) 영수 회담이다. 두 사람은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의 발전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한 ‘중화 통일’의 화두가 나올 수도 있다.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은 수십년간 내전까지 치른 적대관계지만 시 주석은 그런 ‘원수’와도 만나 얘기한다. 원칙과 격을 따지지 않는 게 아니라 가능한 한 자주 만나 이야기하는 게 국가와 민족의 이익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면 박 대통령은 북한 지도자를 만날 생각조차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 5ㆍ24 조치에 발목을 묶은 채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고 있다. 그 동안 남북 관계는 점점 꼬여가고 있다. 통일의 꿈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시 주석은 다음달엔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열릴 2차 대전 승리 70주년 기념식도 참석, 중국의 위상을 더욱 높일 예정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도 어떻게든 조우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두 사람은 아직 만난 적이 없다. 북한의 3차 핵 실험 후 악화한 북중 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지 아니면 북중 관계의 질적 변화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반면 박 대통령은 스스로 ‘유라시아이니셔티브’까지 주창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큰 판’에 가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김 제1위원장과 만날 기회도, 북러 밀착을 견제할 기회도 스스로 버렸다.

비슷할 것 같던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은 이렇게 다르다. 시 주석은 국익을 위해서 가리지 않고 정말 다 만나고 있는 반면 박 대통령은 전략 없이 그야 말로 다 피하고 있다는 인상만 주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코앞인 인도네시아에서 중일이 만나는 ‘큰 장’이 서는 동안 한국 최고 지도자는 전혀 엉뚱한 곳에 가 있는 황당한 사건도 터졌다.

국가 지도자는 상대방이 아무리 싫어도 만나야만 하고 아무리 미워도 외교 최일선에 나서야 할 때가 있다. 더 이상의 직무유기는 곤란하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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