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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고종 황제의 비자금

입력
2015.04.1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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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성완종 리스트’ 수사 핵심은 비자금 규모가 어느 정도고, 이 비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현재까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조성한 비자금 중 정치권에 흘러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규모는 대략 32억 원이다. 그는 비자금 조성에 주로 ‘전도금(前渡金)’을 활용했다. 건설 현장에 미리 돈을 지급한 뒤 나중에 정산하는 방식이다. 건설 현장은 인부숫자 과다계상이나 공사단가 부풀리기 등으로 여유자금을 쉽게 만들 수 있어서 비자금 조성창구로 자주 활용된다.

▦ 성 전 회장은 2002년 지방선거 때도 비자금 문제를 일으켰다. 16억 원을 자민련 측에 전달하고 비례대표 2번을 달았으나 2004년 총선에서 정당득표율 미달로 국회의원의 꿈이 무산됐다. 이 바람에 그는 김종필 총재와 함께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기소됐고, 김 총재는 정계은퇴를 했다. 비자금이란 용어가 등장한 것은 1987년 범양상선의 불법외화유출사건 때다. 이후 1991년 수서비리사건 때 한보그룹 ‘정태수 리스트’가 정치권 핵심부를 강타하면서 이 용어가 일반화했다.

▦ 영어로는 비자금을 ‘watered stock’이라고 한다. 물밑자금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일본은 우라가네(裏金)로 표현한다. 뒷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국도 샤오진쿠(小金庫), 즉 작은 금고라는 비자금으로 골머리를 앓는다. 이 때문에 중앙 주요부처와 국유기업 지방정부 사회단체 등에 대해 대대적인 샤오진쿠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북한은 아예 국가차원에서 ‘노동당 39호실’과 대성총국을 중심으로 해외무역이나 밀수, 마약, 무기거래 등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대한제국시절 고종황제도 비자금을 조성했던 모양이다. 고종은 자신의 비자금을 관리했던 콘라드 폰 잘데른 독일공사를 통해 상하이의 독일계 덕화은행(德華銀行) 비밀계좌에 100만 마르크를 예치했다. 지금 돈으로 500억 원이 넘는 거액이다. 이 비자금 일부를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 선생이 받아 상하이 임시정부 설립과 파리강화회의 밀사파견 비용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이증복의 한국야담사화에 나온다. 사익(私益)을 위한 검은 돈과는 아예 격이 다른 비자금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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