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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월호 참사 1년, 우리는 한 발도 내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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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월호 참사 1년, 우리는 한 발도 내딛지 못했다

입력
2015.04.1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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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대한민국에 대한 준엄한 경고

규명돼야 할 건 제한된 진상 아닌 진실

이 고통 회피하면 우리의 미래는 없어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했던 지난해 5월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광주에서 온 시민단체 회원이 실종자들이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진도=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했던 지난해 5월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광주에서 온 시민단체 회원이 실종자들이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진도=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세월호 1주기 즈음해 팽목항에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위령제가 열린 방파제 앞에서 추모객들은 눅어지지 않는 슬픔에 고개를 떨궜고, 배 타고 바다로 나간 유족들은 맹골수로 거친 물살 위에 꽃을 던지며 피를 토하듯 울었다. 마르지 않은 눈물이 1년 전 그때처럼 차갑고 잔인한 바다 위에 또 흩뿌려졌다. 시간은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 채 4월16일 그날에 그냥 멈췄다.

세월호 참사는 몇몇의 실수와 잘못이 빚어낸 단순한 대형교통사고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연약한 지반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우리가 오랜 세월에 걸쳐 띄운 일견 화려한 외양의 대한민국호(號)가 구조적 부패와 비리, 무능과 무책임, 몰염치와 비도덕 따위의 한 없이 위험한 설계와 자재로 만들어진 부실한 배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운항시스템의 참혹한 가동불능 상태를 목도하면서 국민들은 다만 용케 살아있음에도 안도해야 하는 지경이 됐다. 세월호가 곧 대한민국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난 1년은 이 뼈아픈 자각 위에서 국가를 총체적으로 재건조하는 기간이었어야 했다. 참사 한 달여 만인 지난해 5월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비장한 표정으로 대국민담화문을 읽었다.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만들겠”다고,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개혁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그러데 어떤가. 지금껏 외형적으로 이뤄진 약속은 해경 해체와 국가안전기능을 통괄한다는 국가안전처 신설뿐이다. 사실은 이조차 의외의 결정이었다. 많은 국민은 여전히 실효성에 의구심이 드는 엉뚱한 충격요법이었다는 느낌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 외에 체감할만한 변화는 없었다.

진상은 제한적으로 드러났으되, 진실은 아직도 깊은 곳에 묻혀있다. 제한적 진상은 불법증축, 과적, 평형수 불충전, 화물 고박 불이행, 급변침, 늑장 구조 등 직접원인에 한한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폭 넓게 고착돼왔을 업체와의 정관유착 구조와 ‘대통령의 7시간’으로 상징되는 국가시스템의 붕괴 등 근원적 진실에는 아직 촌보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유족과 국민이 염두에 두는 진상규명은 이 진실규명일 것이다.

그러자고 만든 게 세월호특별법이다. 이 또한 박 대통령이 국민에 약속한 사안이다. 특별조사위원회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뺀 특별법이 그마저도 무용지물로 전락할 위기에 빠졌다. 진상규명 범위를 ‘정부조사 결과의 분석 및 조사’로 한정함으로써 독자적인 추가조사를 가로 막고 있고, 가뜩이나 대폭 축소한 특별조사위 조직을 정부조직이 통제할 수 있도록 한 시행령 때문이다. 이 시행령의 전면 개정이나 폐기 없이 ‘일부 조정’ 따위의 꼼수로 비껴가려는 것은 대통령이 약속한 특별법 취지에도 반하는 것이다.

세월호 선체인양도 마냥 떠넘기듯 미룰 일이 아니다. 지난 6일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결론 나면 … 여론을 수렴해 선체인양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던 박 대통령의 발언을 ‘인양결정’으로 받아들였던 국민들은 정부의 ‘공론화 후 인양여부 결정’에 어이없어 하고 있다. ‘여론’이 이미 복수의 기관조사에서 60~80% 인양찬성으로 나온 마당이다. 1년 이상 걸리는 인양을 이런 식으로 끌다가는 특위 활동기간(1년6개월)을 넘길 수도 있다. 특별법 시행령과 함께 진상규명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세월호가 드러낸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은 또 있다. 국가적 재난까지도 이념과 정파의 이해로 가르는 짓이다. 광우병사태 이후 국가현안마다 이합집산하며 극단성을 보여온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한 비판은 그렇다 치자. 유족을 위로하는 순수한 시민에게도 이념의 덫을 씌우고, 심지어 가눌 수 없는 슬픔에 찬 유족들을 코 앞에서 능멸하는 짐승 같은 짓까지도 벌어졌다. 매사 좌우의 프레임으로 다루는 버릇은 본질을 흐리고 결국은 어떤 개선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반(反)사회적 행위임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언론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속보경쟁으로만 변명할 수 없는 구조상황에서의 오보, 왜곡, 정부발표나 괴담의 검증 대신 유포 편승, 유족에 대한 몰(沒)배려, 진실추적의 한계나 외면 등은 우리 언론 전반에 두고두고 지워지지 않는 업보로 남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 세월호 1년을 맞았다. 세월호로 잃은 것이 너무도 엄청나고 또 허송세월을 한 1년의 공백이 허망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여기서 확실하게 배울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작은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사이 지난 1년 비슷한 양상의 대형사고가 숱하게 줄을 이었고, ‘성완종 리스트’로 대변되는 정경유착의 비리구조가 또 확인됐다. 이 고리를 끊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가 세월호를 잊지 않고, 끝내 진실을 붙잡으려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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