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35. 장거리여행 도전기

서울 집에서 이 아빠 고향까지의 거리는 약 350㎞. 규정 속도로 달리고 휴게소에 한 두 번 들른다고 한다면 네댓 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다. 이 길을 월요일에 있었던 집안 행사(제사) 참석을 위해 20개월 아들과 운전을 해서 내려왔다. 육아휴직 신분으로 기왕 내려가는 거 옷, 장난감, 책 넉넉하게 가져가서 좀 머물고 싶었다.

버스나 비행기를 이용했다면 이렇게 많은 짐을 가지고 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혹자는 전날 미리 택배로 짐을 부쳐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가뿐하다고 했다. 하지만 밑에 내려가 머물면서 이곳 저곳에 다니려면 차를 몰고 가는 게 여러모로 좋다.

거리도 거리지만 아들이 엄마 없이 아빠랑 가는 여행으로는 최장시간 여행이다. 지금까지 ‘아빠와의 외출’은 기껏해야 반경 70~80㎞ 내에서 이뤄졌다. 서울과 수도권의 교통량과 도로사정을 감안해도 1시간 반은 걸리는 거리였지만 엄마 없이 4,5시간 차를 태운 적은 없다. 우리는 교통량이 제일 적은 일요일 오전에 출발하기로 했다. 아내는 월요일 퇴근 후 항공편으로 합류하기로 했다.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아들의 낮잠 시간을 앞당겨 출발시간에 맞추기 위해 전날 일찍 재우고 일찍 일어나게 했다. 응가도 시원하게 한 다음 출발하기 위해 아침식사도 충분히 먹였다. 고속도로에서 떼쓸 때 처방할 다양한 간식과 중간 중간 신나게 뛰놀 수 있는(=아들의 진을 뺄 수 있는) 휴게소도 몇 군데 알아뒀다.

계획한 출발시간은 오전 10시 반. 도착은 언제 해도 상관없다. 안전하게, 아들이 즐겁게 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아내가 운전석 뒤의 아들 카시트를 조수석으로 옮기면 어떻겠냐며 출발을 막았다. 엄마 없이 오랜 시간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을 아들 모습에 마음이 걸렸던 모양이다. 이 아빠는 자동차, 카시트 매뉴얼에도 나와 있는 가장 안전한 자리가 뒷좌석이라며 반대했다. “에어백을 앞에 설치하면 조수석 에어백을 해제하는 게 안전한데, 그 스위치가 없는 차량이고 그래서 만에 하나 에어백이 터지면 시속 300㎞ 수준으로 부풀어 오르는 백에 맞아 더 위험해질 수 있다.” 휴직 전 맡았던 자동차 출입처에서 들은 지식도 팔았다.

아내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아들의 엄마는 뒤에서 혼자 무료해 떼쓰고 난리를 피울 아들이 걱정돼 한 이야기였을 텐데 저렇게 매몰차게 이야길 하다니….’이내 약간의 후회와 함께 “그렇게 합시다”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조수석을 최대한 뒤로 빼고 등받이 각도도 조금 더 눕혀 시트 앞 공간을 더 만들었다. 운전석에 앉고 보니 이 아빠보다 더 뒤로 앉은 아들 모습에 안심이 됐다. 나란히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면서 데이트 하듯 운전할 생각하니 오히려 잘했다 싶다.

카시트를 앞에 설치한 게 잘한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잠 자기 좋은 각도로 또 급정거를 하더라도 5점식 안전벨트에 충격이 고루 분산될 정도로 카시트를 눕힌 덕분인지 아들은 중간에 깨지 않고 길게 잤다.

오전 11시. 출발한 지 10분 만에 아들은 곯아떨어졌다. 평소보다 확실히 일찍 낮잠에 들었다. 이제부턴 아들이 잠에서 깨지 않게 부드럽게 차를 몰되 이동거리를 최대한 뽑아내는 게 관건이다. 상습정체구간을 제외하면 길은 거의 밀리지 않았고, 이 아빠는 규정속도를 살짝 웃도는 수준으로, 의기양양 페달을 밟았다.(자동차 계기판 속도는 실제속도보다 5% 가량 높게 표시된다.)

교통량이 가장 적은 일요일 오전을 골라 출발했지만 역시 밀리는 곳은 항상 밀린다. 아들이 잠들었던 때라 큰 탈 없이 지났다.

아들은 정확히 출발 1시간 40분 만에, 잠든 지 1시간 반 만에 깼다. 세종시를 지나 남청주IC 인근을 지날 때로, 내비게이션상 남은 거리는 199㎞. 아들이 낮잠 자는 사이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난 것이었으므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그렇지만 좀 아쉬웠다. 블루투스로 연결된 휴대폰 벨이 시끄럽게 울리면서 아들이 깼는데 전화를 건 사람은 아들의 엄마였다. “잘 내려가고 있어?” “응. 완전 잘 가고 있지. 그런데 엄마 전화 때문에 아들이 깼네 아들이 깼어.” 엄마 목소리 덕분인지 아들은 잘 자고 기분 좋게 일어났다.

아들을 혼자 뒤에 태우고 다닐 때 아들 감시용(?)으로 구입해 부착한 보조거울. 조수석의 아들이 보이도록 각도를 조절했다. 이날 안전운전에도 큰 도움이 됐다.

아들은 시야에 들어오는 많은 사물 중 아는 것엔 이름을 부르고 신기한 것엔‘저게 뭐야’를 외쳐댔다. 트럭이며 중장비 자동차 버스 등 다양한 자동차와 터널, 길가 꽃, 이정표 등등을 보고 아들은 시끄럽게 소릴 질렀다. 거기에 이 아빠가 이것 저것 살을 붙여 이야기 하니 또 진지하게 듣는 것 같기도 했다. 우유, 청포도, 과자 등등을 먹여가며 가니 이대로 끝까지도 갈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기저귀도 한번 갈아야 하고, 경험상 아들이 기분 좋을 때 분위기를 바꿔서 숙면으로 완충된 에너지를 어느 정도 소모시켜주는 게 좋다. 점심 때가 살짝 지나기도 해서 30분 가량, 50㎞ 정도 더 달려 인삼랜드휴게소에 들렀다.

가져간 음료를 이 아빠가 다 마셔버린 바람에 휴게소에서 아들에게 사준 어린이 음료. 이 사진을 본 아내는 대노했다.

메뉴는 우동. 아내가 동승했더라면 아마도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을 메뉴를 이 아빠는 당당히 주문했다. “고춧가루는 빼주세요!” 아들도 좋아해서 잘 먹고, 옷 좀 덜 더럽히려면 경험상 우동이 이상적이다. 잠에서 깬 뒤 이것 저것 먹어서 그런지 많이 먹지는 않았다. 하부층 뒤뜰로 내려가 풀어놓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놀았다. 연못 물고기, 분수대, 물레방아도 좋았지만 더 뒤로 돌아가자 토끼 백봉오골계 칠면조 청공작 기니피그 로즈콤 황금계 금계 은계 청계…. 이 아빠도 처음 보는 것들에게 아들은 광적인 관심을 표했다.

휴게소 중에서는 쉬었다 가기엔 아까운, 죽치고 놀다가 갈 수 있는 곳들도 있다. 아들은 이날 동물원에서도 보지 못했던 동물들을 구경하고 먹이주기 체험까지 했다. 무료로.

이 곳에서 모두 2시간 정도를 보낸 뒤 출발하기 위해 차로 걸어가는 아들 발걸음이 예사롭지 않다. 아침에 만족스럽게 일을 못 본 때문인지 또 약간의 응가를 했다. 기저귀를 갈고 이 아빠는 기분 좋게 출발했다. 물론 아들은 차에 오르지 않으려고 했지만,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이 정도면 부족하지는 않겠다고 이 아빠는 판단했다.

휴게소를 출발한 지 10분 정도 됐을까. 카시트에 앉은 아들이 허공에 발길질을 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배도 부르고, 응가도 봤고, 실컷 뛰놀았는데… 왜 저러지?’ 동요를 틀었다. 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또 떼를 쓰며 카시트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을 쳤다. 휴게소에서 산 달콤한 과자도 건네봤지만 이내 싫증을 냈다. 차 씽씽 달리는 졸음휴게소에는 들리기가 뭣해 다음 휴게소, 무주 덕유산휴게소에 들렀다. 이 아빠가 20년 가까이 운전을 하면서 30분 만에 또 휴게소를 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휴게소를 출발한 지 30분 만에 다시 들른 덕유산 휴게소 한 켠에 세워진 기념비. 아들 덕분에 이런 사실도 알았다. 고속도로 161㎞(대전-진주) 닦는데 들어간 비용 2조3,300억원, 연투입 인원 405만명, 장비 67만대, 투입 철근 22만톤, 시멘트 88만톤. 언제 써먹을지 모르지만.

한적한 고속도로 준공 기념비 마당 앞에 차를 세우고 아들을 내려놓자 아들놈은 또 다시 마구 뛰기 시작했다. 넘어지기도 하고 기념비를 사이에 놓고 아빠랑 숨바꼭질도 했다. 그러길 10여분. 더 뛰놀 것 같은 녀석의 뜀박질이 둔해진다. 대단한 응가를 했다. ‘이 놈이 응가 하려고 아까 그 난리를 폈구나’ 싶었다. 다행히 남자 화장실에도 기저귀 갈이대가 있었다. 이게 없으면 아들을 공중 부양시켜 놓고 쇼를 한판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아들을 안고 화장실로 향하는 걸음이 초조했던 터다.

덕유산휴게소(통영방향) 남자화장실에 설치된 기저귀 갈이대. 아무리 어린 아이들이 이용하는 곳이라지만 너무 개방된 곳에 설치돼 있다. 기저귀 가느라 씨름하는 이 아빠를 보고 그랬는데, 발가벗겨 놓은 아들을 보고 그랬는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웃었다. 기저기 갈이대 존재 자체만으로도 고마워 해야 하나 싶다.

시원하게 배출하고 나니 아들은 물론 이 아빠 기분까지 상쾌해졌다. 자동차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진 것 같다. 이 휴게소를 떠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출발로부터 5시간. 350㎞ 중 목적지까지는 100㎞를 남겨 놓고 있다. 가깝지 않은 거리지만 1시간이면 족히 닿을 수 있는 거리라 나쁘진 않다. 아들은 이후 중간중간 싫증을 내기도 했지만 얌전히 앉아 재잘거렸고, 별 탈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 안겼다. 출발 6시간 만으로, 고속버스를 이용했을 때보다 약간 빨리 닿았다.

20개월 아들을 혼자 태워 구백리길을 달린 끝에 무사히 도착한 사실에 누구보다 반가워 한 사람은 전화 너머의 아내. 지난 설연휴 때 아내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또 ‘여자 하자는 대로 하는 게 제일 편하다’는 주변의 조언을 받아들여 항공편으로 움직였지만 당시 차를 몰았어도 결과는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휴직을 하고 어린 아들과 함께한 10개월. 이 아빠의 경험상,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이들은 엄마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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