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이 지나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됩니다. 여러 생각들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세월호 참사만큼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은 없었습니다. 모든 국민은 슬퍼했고 분노했습니다. 계층ㆍ세대ㆍ이념을 떠나서 한번이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한동안 세월호 관련 뉴스를 보면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들 생각은 둘로 나뉘었습니다. 한쪽에선 참사는 교통사고이니 슬픔을 거두어 적절히 보상하고 대책을 세우자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쪽에선 참사는 정부의 미숙한 구조 활동에 가장 큰 책임이 있으니 이에 상응하는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7시간 부재’가 논란이 됐고, 세월호 특별법의 기소권ㆍ수사권을 둘러싸고 여야 간의 일대 격돌이 벌어졌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여느 대형 사고들보다 한층 비극적이었습니다. 죄 없는 많은 어린 학생들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희생됐고, 그 잘못이 구조화된 적폐에서 비롯됐으며, 그 적폐는 우리 산업화와 민주화가 가져온 결과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이 참사가 갖는 비극성의 본질이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참사에 담긴 이런 의미들을 곧바로 깨달았기에 슬픔과 분노가 그만큼 컸던 것입니다.

좋은 사회란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합리적으로 대응하고 풀어가는 사회입니다.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좋은 정치가 요구됩니다. 좋은 정치란 사회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고 올바른 해법을 찾는 정치를 말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세월호 참사 해결이라는 시험대에 오른 우리 정치가 자신의 한계를 여지없이 보여줬다는 점입니다. 참사에 담긴 비극성을 주목해 새로운 국가혁신 프로그램을 마련했어야 함에도 정치적 손익을 과도하게 고려한 나머지 결국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을 둘로 나뉘게 했습니다.

지금 양비론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아닙니다. 돌아보면, 아이들을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있었음에도 제때에 구하지 못했던 정부의 책임이 가장 컸습니다. 책임이 엄중한 만큼 정부와 여당은 솔선수범해 안전대책과 국가혁신안을 제시하고 추진해야 했는데도 정치적 손실을 극소화하는 방향에서 소극적으로, 방어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야당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생각이 다른 이들과의 합의라는 정치적 의사결정의 특수성을 고려해 섬세하고 지혜롭게 접근했어야 함에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언론과 지식사회 또한 지난 1년을 차분히 돌아봐야 합니다. 언론은 재난 보도 수칙을 얼마나 제대로 지켰는지, 유가족의 아픔을 고려하지 않고 진영 논리에 따라 보도해 온 것은 아닌지를 성찰해야 합니다. 지식사회 역시 국가적 재난을 두고 대중을 호도하는 무책임한 발언을 해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정치사회가 진영 논리에 갇혀 있을 때 이 논리 밖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은 언론과 지식사회에 부여된 일차적 과제입니다.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과 같은 나이의 딸아이를 둔 부모로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지켜보는 마음은 한없이 안타깝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유가족들이 과연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단 말인가요. 아이를 잃은 것도 서러운데 일부 국민들로부터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 한다면, 이것은 뭔가 잘못된 사회입니다. 진영 논리에 갇혀 생명의 고귀함마저 무시하는 무서운 사회입니다. 결국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 두려운 사회입니다.

지난해 4월 16일 이후 우리 모두가 흘렸던 눈물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국가와 사회에 문제가 있다면 이 상태 그대로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줘서는 안됩니다. 모레 4월 16일 하루만이라도 지난 1년 우리 모두의 생각과 행동을 겸허히 돌아봐야 합니다. 그것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아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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