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그의 위험한 ‘혼네’(本音ㆍ속마음)를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말은 설사 사소한 것이더라도 화자의 의도를 부지불식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는 자위대를 ‘우리군’이라 언급해 구설에 올랐다. ‘통상의 개념으로 생각되는 군대와는 다르다’는 정부견해와 배치됐기 때문이다. 일본이 육ㆍ해ㆍ공군을 유지할 수 없고 전쟁을 추구할 수 없으며 교전권도 인정치 않는 ‘평화헌법 9조’를 파기하려는 본심을 드러낸 것이다.

위험한 사고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는 헌법원리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11월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방 TBS에 출연, “경기가 여전히 좋지 않다”는 시민 인터뷰가 방송되자 “이상하다. (방송국이 그런 내용만) 고른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며 신경질적 반응을 보였다. 이를 지난달 민주당 의원이 물고 늘어지자 “그 프로그램에서 내 생각을 표현한 건 언론자유를 그대로 실행한 것”이라고 당당히 답했다. 언론자유가 본질적으로 정치권력의 압박으로부터 국민의 생각을 보호하는 데 있는 것이라면 그의 거꾸로 된 언론관은 민주국가의 총리의 것이라 보기 힘들 정도다. 또 헌법에 대한 초보적 이해도 부족함을 알 수 있다.

일국의 총리가 내놓는 말은 모두 무게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회에서 보여주는 풍경은 그의 왜곡된 소통능력만 재확인하게 만든다. 이슬람 과격단체인 이슬람국가(IS) 적대국들에게 2억달러 원조를 약속해 일본인 인질 2명을 위험에 빠뜨린 것 아니냐는 공산당 의원의 물음에 “우리에게 IS를 결코 비판해선 안된다는 식으로 공격하는 것 같다”며 “그런 태도는 테러분자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치 IS와 싸우는 총리는 결코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윽박지르는 것으로 들린다.

이처럼 자신에 대한 반대의견을 듣기 싫어하는 아베 총리의 태도가 “침략의 정의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궤변을 낳은 것이라 판단된다. 얼핏 들으면 타당한 내용처럼 들린다. 하지만 ‘권력’‘사랑’‘종교’등 모든 추상적 용어들도 개념에 대해 모두 합의됐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억지에 불과하다.

일본은 엄연히 유엔 회원국으로서 1974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침략의 정의에 관한 결의’를 승인한 국가다. 이 결의는 “군사력을 사용해 다른 나라를 사전에 공격하는 것은 유엔헌장 위반으로서 ‘침략적 행위’(an aggressive act)를 구성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약이 아니어서 국제법상 구속력이 없다고 반론을 제기한다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 진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일본이 태평양전쟁의 희생자가 되고 미국이 침략자가 되며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전범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침략의 정의는 ‘강압적 방법으로 다른 나라의 영토와 주권을 박탈하는 것’으로 이미 보편화했다.

이런 점에서 오는 8월 ‘전후 70년 담화’가 갖는 의미는 매우 무겁다. 전범국가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지난달 일본방문 때 내비친 ‘혼네’는 간단하다. 화해하려면 역사문제를 정리하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과거사 사죄 피로증’ 운운할 처지가 아니다.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자행한 독일이 세계와 화해할 수 있었던 건 독일인이 과거사 반성을 일상의 생활로 대하기 때문이다.

이제 관심은 보름 앞둔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이다. 잘못된 속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그 경솔한 언사가 반복된다면 일본은 국제적 고립을 피하기 어렵다. 세계인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적극적 평화주의’는 허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가 이 자리에서 전세계가 수긍할 만한 솔직한 사과와 반성의 자세를 보인다면 그의 정치적 앞길은 탄탄대로다. 국내적으론 9월 당총재 선거에 단독 추대될 가능성이 커 장기집권의 길도 열린다. 지금의 분위기야말로 과감히 소아(小我)를 버려야 할 기회다.

침략전쟁 종전 70주년을 맞고 있는, 그리고 가장 가까운 이웃 한국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은 지금이 적기다.

박석원 도쿄특파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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