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치료센터 단 1곳뿐

병원 퇴원 후엔 갈 곳 없어

입·퇴원 악순환 고리 못끊어

부천성모병원, 낮병동 운영

명상·동기 강화 훈련 등 제공

2013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남성의 19.7%, 성인 여성의 5.4%가 고위험음주자이다. 특히 30~40대 남성 4명 중 1명이 고위험음주자로, 보건복지부에서는 알코올 사용 장애 환자를 200만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 데도 우리나라의 알코올중독자 치료 시스템은 총체적인 부실 상태다. 알코올중독자 재활을 위해서는 치료와 지속적인 관리는 물론 교육, 주거, 직업 등이 제공돼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인구 10만명당 지역사회 이용시설과 사회복귀 훈련시설 비율이 각각 0.02개, 0.01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치료시설 사실상 전무 … 대형병원들도 ‘모르쇠’

현재 우리나라에는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카프공동체 감나무집(남성 알코올중독자 재활거주센터)과 향나무집(여성 알코올중독자 재활거주센터) 등 20여 개의 알코올중독자 치료.재활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시설의 대부분이 서울과 수도권에 있고, 그나마 시설이 열악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조근호 다사랑중앙병원 원장은 “카프공동체를 제외하고는 알코올중독자 치료를 위한 거주시설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며 “병원에서 퇴원을 해도 알코올중독자들이 갈 만한 치료시설이 전무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한상숙 부천성모병원 알코올의존치료센터 수녀는 “알코올중독 때문에 폐쇄병동에 입원했다 퇴원 해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으면 단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지역사회에 알코올중독자를 위한 치료ㆍ재활시설이 구축돼야 한다”고 했다.

현재 국내 대학병원 중 알코올중독자 치료를 위한 전문치료센터를 운영 중인 곳은 부천성모병원이 유일하다. 대학병원 등은 수입에만 골몰하느라 알코올중독자 치료에는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부천성모병원은 2000년 알코올의존치료센터를 개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명상ㆍ정독 ▦동기강화 훈련 ▦스트레스 관리 ▦토론 ▦예술치료 등 치료 프로그램을 8주간 제공하고 있다. 이수정 부천성모병원 알코올의존치료센터장은 “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알코올중독자들에게 다양한 단주 프로그램을 제공해 스트레스 등 심리적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했다. 미국 등에서 운영되고 있는 ‘낮병동’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낮병동은 단주 동기를 강화하고 스트레스 관리와 대인관계 회복 등 적응기능을 향상하는 프로그램 운용에 효과적이다.

부천성모병원 치료센터는 알코올중독자 관리를 위해 8주 기본교육을 이수한 환자들에게 2년 동안 매주 1회 센터에서 명상과 나눔의 시간을 갖는 등 후속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치료센터에서 기자를 만난 한 환자는 “후속교육이 없었다면 또 다시 입에 술을 댔을지 모른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한상숙 수녀는 “우리시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 중독자들을 치료해야 한다는 종교적 사명감이 없었으면 알코올의존치료센터를 운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수정 센터장은 “다른 병원에서 낮병동을 운영할 수 없는 것은 채산성 때문일 것”이라며 “낮병동 운영을 위해 마련된 치료 전용공간은 밤에는 사용할 수 없는 등 시설 활용도가 떨어져 낮병동을 운영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익명의 보건복지 관련단체 관계자는 “개신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등 종교사학들이 병원을 설립했지만 정작 이들의 손길이 필요한 알코올중독자 등에 대한 치료는 전무하다”며 “초심으로 돌아가 알코올중독자 등 우리 사회에 가난하고 고통에 빠진 이들을 치료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입원 위주의 치료시스템 개선 필요” 여론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알코올중독자 치료를 위해서는 입원 위주의 치료시스템 개선이 급선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호선 성안드레아신경정신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우리나라 알코올중독자 치료가 입원 위주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어 환자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병원에 적응하는 경우가 많다”며 “장기간 입원하게 되면 병원이 치료보다 수용시설로 전락되고 환자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로 기자가 만난 알코올중독자들은 “알코올중독 치료를 위해 폐쇄병동에만 가야 하는 줄 알았다”며 “폐쇄병동에 들어가면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들과 함께 생활하게 돼 정상적인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계성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알코올중독은 재발과 회복을 반복하는 만성 뇌 질환이기에 퇴원 후 지속적인 외래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알코올중독자 치료를 위한 인프라가 조성되지 않아 사실상 알코올중독자들을 방치하고 있다”고 했다.

치료명령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조근호 원장은 “입원 시점부터 지역사회와 연결해 알코올중독자의 치료와 재활을 도모할 수 있는 치료명령제 도입이 필요하다”며 “음주운전, 음주폭력, 음주 후 성폭력 등 우리 사회에 만연된 음주로 인한 사회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치료명령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했다. 이수정 교수는 “자살뿐 아니라 가정폭력 음주운전 폭행 강도 강간 살인 방화 등 강력범죄자의 30%가 음주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사회경제적 비용이 32조 2,000억원에 달하는 음주폐해 문제 해결 없이는 우리 사회가 건강해질 수 없다”고 했다.

전문부서 설립도 시급하다. 이계성 교수는 “보건복지부는 중독과 관련해 손을 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지난해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에서 중독과 관련된 실적이 없어 중독포럼에서 진행한 일을 자신들이 한 것으로 포장해 실적을 제출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현재 정신건강정책과에서 중독과 관련된 업무를 전담하는 공무원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중독과 관련된 폐해와 예방치료, 재활을 담당할 부서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호선 전문의는 “외래치료를 기반으로 하는 중독전문병원에 대한 정책적 방향과 치료모델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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