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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금요일엔 돌아오렴’, 진심의 힘

입력
2015.04.1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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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전을 자꾸 복기하게 된다. 그날 종일 중요한 약속이 많았는데 늦잠을 잤고 지각하지 않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 뒷좌석에서 다 못한 일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평소 자주 들여다보곤 하던 스마트폰을 꺼내 들 여유도 없었다. 앞만 보고 운전하던 택시 기사님이 라디오를 켰다. 방송 진행자가 제주도를 향해 가던 배가 사고가 났는데 탑승자는 전원 구조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고 했다. 배에 사고가 난 것도 모르고 있던 내가 어리둥절해하기도 전에 기사님이 말했다. “아이고 다행이네.” “그러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다행이라고 했던 말, 내가 뱉은 말, 생면부지의 우리가 진심으로 나눴던 그 말이 아직 가슴에 단단한 멍울처럼 남아 있다.

그 이후의 일들은 나 역시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통해 보았다. 본다는 일은 무력했고, 그 무력함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중얼거리기만 했다. 어어, 저 안에 지금 사람들이 있다고? 지금 이게 말이 돼? 근데 왜 저러고 있어? 계속 가라앉는데! 그렇다고 그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면 거짓말이다. 기울어진 배가 조금씩 침몰하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굶지 않았으니 분명히 밥을 먹었고 반드시 마감해야 하는 짧은 원고를 썼다. 일상을 살았다. 그러는 틈틈이 뉴스를 보고 또 보았다. 그 때 내가 본 것들이, 우리가 본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

세월호라는 이름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특별한 감정은 어쩌면 그 배의 침몰을 ‘모두 함께’ 지켜보았던 것과도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의 대형재난이 사후에 알려지는 것과 달리 우리는 세월호가 서서히 바다에 수장되어 가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우리가 목격한 것은 이미 침몰한 배가 아니라 침몰하는 배였고 그 배에는 사람들이 가득 타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 전체가 공통의 목격자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목격자가 느끼는 감정은 죄책감과 불편함이다. 전자 때문에 힘들 수도, 후자 때문에 귀찮을 수도 있다. 한 사람 안에 그 두 개의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을 수도 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의 공동저자인 ‘4ㆍ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은 목격자의 첫 번째 의무가 증언임을 믿는 이들이다. 이 책의 부제는 ‘24일 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 기록’이다. 여는 글은 이렇다. ‘4월 16일 그날 내가 처음으로 본 부모들은 가슴을 움켜쥔 채 뛰어가는 모습이었다(...)시간이 지나고 살아서 돌아오는 아이들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확인될수록 동네는 점점 더 조용해졌다. 무서운 침묵이 흘렀다(...)나중에 이 침묵도 기록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그날 봄 바다에서 아이를 잃은 단원고 학부모들의 생생한 육성이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말한다. 그 평범했던 일상의 시간과 갑자기 그 일상이 파괴되어 버린 순간과 그 이후에 여전히 계속되는 삶에 대해 증언한다.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떠나던 화요일 아침 풍경이 집집마다 다 엇비슷해서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아이들은 새 옷을 사 입거나 사 입지 못했고, 약간의 용돈을 받았고, 괜히 자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돈을 많이 쓴 건 아닌가 미안해하면서도 고마워했다. 수학여행 다녀오면 ‘열공’하고 ‘빡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금요일에 돌아오면. 아이들은 꼭 그랬을 것이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그들은 평범하고 선량한 시민이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다 보면 그런 엄마 아빠들이 어떻게 길 위에 서게 되었는지, 왜 절절한 아픔을 삼키며 목 놓아 외치게 되었는지를 저절로 알 수 있다. 남겨진 가족들은 가닿을 수 없는 수백 개의 금요일을 가지게 되었지만, 목격자인 우리에게도 그 금요일이 그 전의 금요일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기록 문학, 그 진심의 힘이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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