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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우 간 日王 '평화 행보'… 아베 폭주와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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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우 간 日王 '평화 행보'… 아베 폭주와 대비

입력
2015.04.08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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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70년 전몰자 위령비 등 헌화

환송행사서 "아름다운 섬 슬픈 역사

싸움터서 쓰러진 수많은 사람 생각"

아베측, 방문 결정 때부터 견제

경호상 이유 들어 반대하기도

8일 아키히토 일왕이 출국 전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나루히토 왕세자를 비롯한 전송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일왕 부부는 전후 70년을 맞아 전몰자 위령과 우호 친선을 위해 남태평양 팔라우를 방문했다. 도쿄=AP 연합뉴스
8일 아키히토 일왕이 출국 전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나루히토 왕세자를 비롯한 전송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일왕 부부는 전후 70년을 맞아 전몰자 위령과 우호 친선을 위해 남태평양 팔라우를 방문했다. 도쿄=AP 연합뉴스

“태평양에 떠있는 아름다운 섬들에서 슬픈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가 총리관저의 반대를 무릅쓰고 8일 태평양전쟁 격전지였던 팔라우로 1박2일간 ‘전후 70년 전몰자위령’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이날 오전 하네다공항 귀빈실에서 열린 환송행사에서 아키히토 일왕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면전에 두고 “올해는 전후 70년에 해당한다”며 이처럼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싸움터에서 쓰러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다녀오겠다”고 했다.

일왕의 팔라우 방문은 10년 만에 이뤄진 숙원사업이다. 그간 정부전용기가 이용할 큰 공항이 없고 숙박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등의 보안문제로 ‘필생의 과제’로 삼는 ‘해외 전몰자 위령(慰靈)여행’이 미뤄져 왔기 때문이다. 전후 60주년(2005년) 때는 사이판을 방문한바 있다. 일본서 남쪽으로 약 3,000km 떨어진 팔라우는 1914~18년 1차 대전 중에 일본에 점령돼 1945년 2차 대전 종전까지 30년간 일본의 위임통치를 받았던 도서국이다. 일왕은 지난달 하순부터 감기 증상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날 팔라우 대통령과 만찬을 하고 밤에는 해상에 정박한 일본 해상보안청의 최첨단 순시선‘아키츠시마’(6,500톤)에 숙박하는 등 강행군을 했다. 9일엔 특별 헬리콥터로 인근 섬들을 거쳐 교전쌍방이었던 미국과 일본측 희생자 위령비에 각각 헌화할 예정이다. 2차 대전 당시 이 섬에서 일본군 1만여명, 미군 1,700여명이 전사했다.

이 같은 일왕의 행보에 대해 아베 총리 측은 당초 반대 의견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해외방문이 결정될 때까지 총리관저와 왕실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있었다는 전언이 흘러나오고 있다. 관저에서 겉으로 내세운 방문 반대 이유는 팔라우의 현지 경찰병력이 200명 수준에 경비전문은 50여명에 불과해, 안전은 보장하기 어렵다는 논리였다. 변변한 호텔도 없다.

하지만 정작 관저에서 일왕의 팔라우 방문을 견제한 이유는 아베 총리가 최근 내딛고 있는 자위대 재무장 행보가 자칫 희석될 지 모른다는 우려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총리관저 측이 난색을 표한 것도 ‘전쟁을 반성하는 일왕’의 모습이 자위대 해외파병 등 ‘적극적 평화주의’를 표방한 아베 총리와 대비되는데 대해 불만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인 것이다. 하지만 ‘팔라우 방문 불가론’을 물리친 건 일왕 본인의 강한 의지였다고 한다.

물론 일왕의 팔라우 방문이 전사한 일본제국주의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고, 이번 방문이 일부에게는 식민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일왕이 생각하는 평화와 ‘아베식 평화’는 결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일왕은 즉위 10주년 기자회견에서 “저는 전쟁이 없을 때를 모르고 자랐다”며 어린 시절 기억을 언급한 바 있다. 중일전쟁의 포화를 보며 유년기를 보낸 그는 피난처에서 기차로 하라주쿠 역에 내렸을 때 눈 앞이 온통 불에 탄 잿더미였던 게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올해 내놓은 신년메시지도 아베 총리와 뉘앙스가 달랐다. ‘만주사변으로 시작한’이란 수식어를 굳이 붙여가며 “전쟁의 역사를 배우자”고 일본의 침략을 거론했다. 매우 이례적인 언급이었다. “침략의 정의는 정해지지 않았다”라거나 “국민과 함께 세계의 중심에서 빛나는 국가로 만들겠다”는 총리와는 대척점에 있는 인식이다. 그래서 신년메시지가 아베의 우경화 행보를 견제한 것이라 해석이 무성했다.

일왕은 내달엔 10만명 이상이 숨진 ‘도쿄 대공습’ 희생자 위령행사차 도쿄의 시타마치(下町)로, 6월엔 전시 중 어뢰공격으로 침몰한 민간 선박 2,500척 6만여명을 기리는 ‘전사 선원의 비’행사차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스카(?須賀)시를 방문한다. 자신이 매달려온 기억 전하기 행보를 계속할 예정이다. 한 일본 문제 전문가는 “왕실과 정치권의 미묘한 차이가 과거 군국주의 세력이 전쟁을 도발할 때와 비슷한 풍경이어서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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