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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한미 외교의 낡은 틀을 깨라

입력
2015.04.0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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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잇단 도발에 무기력한 정부

안보ㆍ과거사 투 트랙 전략 한계봉착

한미일 3국 틀에서 한미 외교 다뤄야

지난 2013년 7월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브루나이 반다르 세리 베가완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존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가운데),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3년 7월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브루나이 반다르 세리 베가완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존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가운데),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이 독도 영유권 왜곡으로 또 도발했다. 검정을 통과한 중학교 역사ㆍ지리ㆍ사회 교과서 거의 전부가 “독도는 일본 고유영토”라거나 심지어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유하고 있다”고 기술했다. 다음날 발표한 외교청서에서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데 이어 한국에 대해서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적 인권을 공유한다”는 기존 문구를 삭제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강변한 것이 처음은 아니나 이번에는 표현이나 공세의 수위가 예사롭지 않다. 과거 일본 여론이나 국내정치를 의식한 선언적 차원을 넘어 실질적으로 독도 영유권에 대한 현상변경을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마저 갖게 한다. 위안부는 “인신매매의 희생자”라고 한 아베 총리가 이달 말 미 의회 합동연설이나 8ㆍ15 담화에서는 또 어떤 궤변을 늘어놓을지 걱정스럽다.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고, 점점 도를 더해가는 일본의 도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은 한심할 지경이다. 매번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엄중 항의하고, 이를 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게 고작이다. “일본 정부가 왜곡된 역사관을 자라나는 세대에 지속 주입하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이번 외교부 대변인 성명도 작년과 하등 다를 게 없다. 천편일률적인 성명서 한 장 내는 것으로 외교부의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과거사 반성이 우선이라던 정부는 한일관계 교착상태가 계속되자 과거사와 안보를 분리 대응하는 투 트랙(Two Track)으로 기조를 바꿨다. 이후 한일, 한미일 안보 대화가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달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에 이어 16일에는 워싱턴에서 한미일 3자 안보토의(DTT)가 열리고, 이달 말에는 한일 안보정책협의회를 5년 만에 다시 개최하는 것을 조율 중이다.

그러나 과거사와 안보를 분리 대응하겠다는 투 트랙이 과거사에 대한 무기력, 혹은 안보를 명분으로 한 과거사 면책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과거사에 관한 한 한국은 안중에도 없다는 식의 일본의 안하무인식 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3각 안보 틀에 갇혀 아무런 레버리지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이 와중에 일본은 과거사 왜곡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투 트랙이 결과적으로 과거사에 대한 우리의 무장해제로 귀결되는 상황은 전략적 숙고 없이 미국의 3각 안보 요구에 끌려들어간 탓이 크다. 안보와 과거사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북핵, 중국의 부상에 따른 지정학적 변화, 일본 자위대 팽창 등 예사롭지 않은 한반도 주변상황에 걸린 우리의 국익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따른 미국과 일본의 안보유착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국익을 앞세울 틈도 없이 미국의 압박에 끌려들어가는 식이 돼서는 분리 대응은 외교적 허언일 뿐 과거사에 대한 우리 외교의 무능력을 시인한 꼴에 지나지 않는다.

작은 사례지만 지난해 보류됐던 독도입도지원센터 공사 재개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에서도 핵심은 ‘분쟁지역화’나 ‘조용한 외교’가 아니라 실효적 지배력과 국제법으로 흔들리지 않는 명분을 어떻게 공고히 해나가느냐가 돼야 한다. 일본이 현상변경을 노리고 미국이 일본의 역사관에 맞장구 치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익을 관철시킬 수 있는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일이다. 아시아 전략에 일본을 앞세우기 위해 미국이 일본의 과거사와 안보에 동조하고, 이런 미국을 등에 업고 ‘한국은 없다’는 식의 일본의 막무가내 행동이 계속되는 한 우리가 목소리를 낼 여지는 없다.

정부는 “한미관계가 역대 최고”라고 입버릇처럼 되풀이하지만, 이런 인식으로는 한국이 미국과 일본의 봉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미국 국방장관이 “3국 안보협력에서 일본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고,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우리 정부가 반발했던 인신매매 발언을 “긍정적인 메시지”라고 한 것은 미일관계를 위해서는 한미관계가 훼손되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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