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33. 후회 한 가지

지난해 우리는 아들 돌잔치를 하지 않았다. 이 아빠가 장손이고, 아들도 맏손자라 집안 어른들은 내심 했으면 하는 분위기였지만, 우리 부부는 하지 않는 쪽으로 친권을 행사했다. 조촐하게 식구들끼리 저녁식사만 했다.

처음부터 할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아들이 첫 아이여서 돌잔치를 한다면 어렵지 않게 할 수도 있었고, 득남 사실을 뒤늦게 안 지인들로부터는 ‘돌 때 미리 연락하지 않으면 앞으로 볼 생각마라’는 협박(?)까지 받고 있던 터라 해야 할 필요성(??)도 있었다. 또 1년 가량 촬영한 가족사진과 아들 성장사진을 엮은 영상물을 손수 만들어 상영(?)할 생각을 하니 돌잔치가 기다려지기도 했다.(이 아빠가 볼 때 돌잔치의 백미는 돌잡이가 아니라 성장 앨범 상영이다.) 무엇보다도 괜찮은 장소(조용하고 넓고 맛있으면서 저렴한)를 잡기 위해 우리 부부는 레이더를 분주히 움직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들 첫 생일이 두어달 앞으로 다가왔을 때(작년 유월, 이 아빠가 육아휴직에 들어섰을 때)까지도 우리는 돌잔치 장소를 확정 짓지 못했다. 비용 문제가 아니었다. 돌잔치를 하고 싶다, 해야겠다 싶다가도 이런 저런 일을 겪거나 듣고, 읽다 보면 생각이 바뀌었다. 또 자고 일어나면 생각이 바뀌고 또 바뀌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이 아빠는 아빠대로 머리가 복잡했다.

돌잔치를 할까, 말까. 지난 일을 두고 후회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최근 그 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아들이 나중에 “친구들 돌잔치 다 했다는데, 아빠 난 왜 안 했어?”하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줘야 할까. 벌써부터 고민이다.

아내 생각은 이랬다. 돌잔치를 하자면 양쪽 직장 동료 초대가 불가피한데 1년 가량 직장 떠나 한가롭게(?) 애보고 있는 육아휴직자들이 대뜸 연락하는 것도 그렇고, 바쁜 사람들을 오라 가라 하기가 참 뭣하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이 아빠도 이것 저것 준비해야 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란 말에 적지 않은 신경이 쓰였고, 결혼식 축소판처럼 치러지는 돌잔치들을 보면서 돌잔치가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또 사람들을 초대하면 어디까지 초대할 것인가 하는 대목에선 머리까지 아팠다.

고민 끝에 우리는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기로 했다. 아니, 돌잔치를 열지 않기로 했다. 아들에겐 미안했지만 ‘아빠의 육아휴직이 너의 첫 생일 선물이라고 생각하거라’하고 이야기 했다. 물 건너간 우리 가족의 ‘성장영화’ 상영도 아쉬웠지만 계속해서 찍고 또 찍으면 다음 생일 때 더 멋지게 만들 수도 있고, 단체관람이 아니더라도 이메일이나 카톡으로도 보여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위로가 됐다. 우리 부부는 또 영아 사망률이 지금처럼 낮아진 시대에 돌잔치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까지 애써 했다.

돌잔치에 관한 한 이 정도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 최근 돌잔치 초대장이 날아들었다. 가깝게 지내는 아내 직장 동료의 쌍둥이 돌잔치였다. 이것 저것 따질 것 없이 일찌감치 챙겨 나갔다.(육아휴직을 하고 보면 이런 자리엔 정말 잘 나가게 된다. 시간 딱딱 맞춰!) 덕분에 우리는 돌상이 차려진 앞쪽으로 앉을 수 있었다. 주인공들의 친가 외가 식구들이 다 모였고, 주최 측의 직장(이전 직장 포함) 동료(퇴직한 동료까지)들이 대거 찾아와 자리를 채웠다. 100석 가량 돼 보이는 자리가 남지 않을까 싶었는데 금세 다 찼다. 늦게 도착한 하객들은 밖에 따로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야 했을 정도였다.

최근 오랜만에 초대 받아간 아내 직장 동료의 돌잔치. 주최 측에서 하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주인공 하나가 걷다가 넘어져 입술이 터졌는데, 이걸 같이 본 이 자리 사람들은 앞으로 그 사건을 화두 삼아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 꽃을 피울까. 이 아빠는 기자생활 하면서 알게 된 ‘취재원’을 이 자리에서 만나기까지 했다.

성장앨범 상영에 이어 축하공연, 돌잡이, 주최 측의 답례 인사, 상품권 추첨, 기념촬영 등 특별할 것 없는 돌잔치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이 아빠는 작년에 아들 돌잔치를 하지 않을 것을 후회했다. 10년도 더 된 가족사진을 이번에 바꿀 수 있어서 좋았고, 평생 같이 할 친구 동료들과 정을 더 쌓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실제 그날 주인공들이 그 자리에 온 사람들의 경사에 초대 받아 똑같이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낼 모습을 그리니, 또 사돈지간, 친가와 외가 사람들이 이 돌잔치가 아니었더라도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후회가 깊어진다.

아들의 동생, 그러니까 둘째의 돌잔치. 이게 이 막심한 후회를 만회해줄 방법이긴 한데, 휴직까지 하고 직접 애 한번 키워보니 선뜻 판단이 안 선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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