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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금이 외교장관 자화자찬할 만한 상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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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금이 외교장관 자화자찬할 만한 상황인가

입력
2015.03.3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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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세 외교부장관이 그제 재외공관장회의에서 한 개회사에는 참석자들의 가슴을 뛰게 할 만한 내용이 적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종속 변수가 아니고 독립변수다. 대한민국호의 선장과 항해사, 기관사들이 힘을 합쳐 나간다면 3중 파고, 6중 파고가 아니라 집채만한 쓰나미가 닥쳐와도 뚫고 나갈 수 있다”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통해 미ㆍ중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은 결코 골칫거리(dilemma)가 아니고,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와 같은 대목들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에 이리저리 치이며 눈치보기에 급급했던 게 우리의 지정학적 외교현실이다. 이에 비춰 외교수장의 당당한 독립변수 선언은 많은 국민들의 박수와 지지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엄중한 현실을 외면한 허세라는 비판 목소리가 높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지난 2년의 외교 성적표를 냉철하게 보지 못하는 자화자찬에 질타가 쏟아졌다.

미ㆍ중 사이에 낀 우리의 지정학적 상황은 딜레마가 아닌 축복이라는 윤 장관의 상황인식이 틀렸다고는 보지 않는다. 윤 장관 말대로 지금 우리에게는 패배주의적, 자기비하적 시각이 아니라 상황을 주도해가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윤 장관이 일선에서 지휘해온 현 정부의 외교가 과연 그런 인식과 전략 아래 수행돼 왔는지는 의문이다.

윤 장관이 고도의 외교력이 발휘된 대표적 사례로 꼽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결정부터 국민들의 평가와 동떨어져 있다. 최적의 절묘한 시점에 결정을 내림으로써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함은 물론, 모든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했지만 국민 눈에는 미중 사이 눈치보기의 극치로 비쳤다.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말을 다 공개하기 어려운 사정이 없지 않겠으나 상식과 거리가 먼 자화자찬은 신뢰를 떨어뜨릴 뿐이다.

고고도미사일 방어(사드ㆍTHAAD)체계 도입을 둘러싼 정부 내 혼선과 좌고우면 양상도 이 정부의 외교안보 역량에 의문을 갖게 했다. 하지만 윤 장관은 AIIB가입과 사드 도입 등에 대한 각계의 우려와 문제제기를 “고뇌가 없는 무책임한 비판” “고난도 외교사안, 고차방정식을 1차원이나 2차원으로 단순하게 바라보는 태도”라고 비난했다. 가장 외교관적이어야 할 외교수장의 입에서 비외교관적 거친 언사가 쏟아져 나온다는 게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국익의 관점에서 우리가 옳다고 최종 판단하면 분명한 중심과 균형감각을 갖고 휘둘리지 말고 밀고 나가야 한다”는 말은 맞지만, 저리 거칠고 오불관언인 선장의 지휘 아래 한국외교가 험한 바다를 제대로 헤쳐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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