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대로 현재진행형인 진실 공방

한국사회 퇴행 분기점 된 천안함사건

나아가려면 ‘상식의 눈’ 회복해야

27일 오후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에서 열린 참배식에서 한 유가족이 희생장병 동상을 어루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해군 제공

검색창에 ‘천안함’을 치려다 흠칫, 얼른 창을 닫았다. 그악스러운 표현들로 도배된 온갖 주장과 비아냥, 저주의 댓글들과 또 마주하게 될 터였다. 구글 검색만 해도 200만 개가 넘는 웹문서가 뜨고 태반이 이런 내용들일진대.

기자는 대체로 전문가는 아니다. 다만 다른 직업군보다 다양한 현장 인물 사건 등의 경험으로 핵심파악이나 종합판단에 좀더 빠르고 능한 정도일 것이다. 5년 전, 천안함사건도 그렇게 보았다. 냉정한 사건기자의 눈으로.

범인을 추론하는 기본요소가 있다. 동일수법 전과자, 동기 있는 자, 주변 관계인, 지역 연고상 접촉 가능한 자, 실행의지와 능력을 갖춘 자 등이다. 범인은 대개 이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정전협정 이후 숱한 도발을 자행하고, 특히 최근 들어 해당해역에서 거듭 해양도발을 자행해온 자가 제1용의자로 떠오른 건 당연했다. 김정일이 서해해전 보복을 되뇌어온 사실 등 위의 다른 요소들도 하나같이 용의자를 특정하고 있었다.

그래도 감(感)만으로만 몰 수는 없다. 수사는 자해, 사고 개연성부터 작은 관련자까지 다 열어놓고, 발견되는 단서 증거에 따라 하나씩 용의선에서 배제해가는 식으로 진행된다. 천안함에선 좌초, 피로골절, 기뢰, 충돌 같은 것이다. 현장, 수심, 피해상태, 주변정황, 관련자의 미심쩍은 행적 등이 당시 용의자를 압축해가게 한 요소들이다. 그러다 범행 흉기(어뢰추진체)가 결정적 증거(스모킹건)로 발견됐다. 다국적 전문가들이 북한산으로 결론 지었다. 범인과의 게임은 끝났다. 자백만 없을 뿐이었다.

자, 추악한 성폭행살인사건이라면 어땠을까. 이 정도의 방대한 수사와 정황, 증거에도 유죄가 아니라고 했다면 “뭘 더 어쩌란 거냐”는 격렬한 국민적 분노에 맞닥뜨렸을 것이다.

물론 ‘오류 가능성 0’이란 없다. 그러나 정황과 증거의 90% 이상이 한 용의자를 지목한다면, 나머지 단 몇 %의 의구심으로 사건의 전체구도를 뒤엎는 것이 타당한가? 더욱이 그 미미한 의구심 또한 얼마든 논쟁이나 반박이 가능하다면? MB나 보수정권에 대한 적개심을 잠시 치우고 사안 자체만을 통상기준으로 보자는 뜻이다. 이게 천안함사건을 보는 상식의 눈이자, 현재로선 가장 이성적인 판단이다.

그럼에도 모든 의혹은 처음 그대로 현재진행형이다. 좌초, 기뢰, 충돌 등 하나를 주장하면 다른 건 부정해야 하는 모순된 주장들이 단지 ‘북한 어뢰는 아닐 것’이란 공통 이유로 싸잡아 지지를 받는다.

신물 나는 이 논쟁을 재론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천안함사건은 그 이전과 이후를 가른 시대적 분기점이 된 때문이다. 앞서 광우병사태 때 조짐이 있었지만, 인터넷 SNS가 국가적 사안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좌지우지하게 됐다는 점에서다.

광범위한 정보와 의견 공유로 직접민주주의 재현을 기대케 한 정보사회의 순기능은 아직은 먼 희망사항이다. 천안함사건은 정보사회의 또 다른 측면, 집단지성의 발현 대신 논의를 분파화, 의도화함으로써 도리어 본질을 흐리고 합의를 막는 부작용이 극대화해 나타난 케이스다.

수십 년 해당분야에 천착해온 전문가들의 연구와 숙고가 장삼이사 비전문가들의 인상비평 수준의 주장과 등치 되는 정도를 넘어, 함부로 폄하되고 조롱 받는 현상이 일상화됐다. 이후 우리사회에선 어떤 논의도 정리되지 않은 채 계기만 되면 똑 같은 논의가 처음부터 무한 반복되는 구조가 정착됐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천안함에서 배우기는커녕 퇴행만 거듭해온 셈이다. 국방은 더 믿지 못할 지경이 됐고, 정부 정치에 대한 신뢰는 갈수록 추락하고 있으며, 현안마다 괴담 음모설은 끊임없이 사이버공간을 떠돌고, 방향 없는 증오와 제어 안된 감정분출은 SNS를 넘어 우리사회 전체를 끔찍한 난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시원한 답 있을 리 없는 이 허망한 질문을 끝없이 되물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고 답답하다. 천안함 희생 5년이 지나도록.

주필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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