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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효과 없는 파라핀 '셀프 치료'… 잘 못쓰면 몸만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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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효과 없는 파라핀 '셀프 치료'… 잘 못쓰면 몸만 다친다

입력
2015.03.2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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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 등 치료 상품으로 인기 불구

전문의 "핫팩 같은 온열효과 뿐"

일부 제품 65도 가열돼 화상 위험… 의료기기 허가 번호 유무 확인을

관절염·당뇨병 환자 등 사용 삼가야

지난해 연말부터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셔 일상생활이 힘들었던 김영자(65)씨는 손가락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며 큰 며느리가 사다 놓은 가정용 ‘파라핀 욕조’를 사용했다가 낭패를 봤다. 며느리의 정성이 고마워 하루에 2~4회 파라핀 욕조에 손을 담궜지만 증세가 호전되긴커녕 악화됐기 때문이다. 통증을 참다 참다 병원을 찾은 김씨에게 내려진 진단은 ‘류마티스관절염’. 담당 의사는 “파리핀과 같은 온열치료는 류마티스관절염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사용하지 말 것을 권했다.

최근 파라핀욕조, 왁스 등 가정용 파라핀 제품이 관절 등에 좋은 ‘셀프 치료’ 상품으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이들 파라핀 기기의 인기 이유는 피부 미용은 물론 관절 치료에까지 큰 효과가 있다는 것. 하지만 전문의들에 따르면 이는 과대 포장으로, 핫펙과 같이 단순 온열 효과밖에 없는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피부에 도포하는 파라핀 왁스의 경우 보건당국의 관리를 받지 않는 공산품으로 판매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파라핀욕조 등 가정용 파라핀 제품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이유는 손목, 발목 등 관절이 좋지 않은 노인들을 위한 효도상품으로 자리매김한 때문이다. 관절이 아프거나 손이 저릴 때 사용하면 혈액순환과 보습 등에 효과가 있다는 입소문을 탔다. 계속되는 경기불황으로 의료비 부담이 가중되면서 가정에서 저렴하게 구입해 간편하게 치료를 할 수 있다는 기대심리도 작용했다.

오픈마켓 11번가는 최근 파라핀욕조, 파라핀왁스 등 가정용 파라핀 기기 매출 성장률이 2013년 20%에서 지난해 95%로 높아졌다고 발표했다. 인터파크의 지난해 관련 제품 매출도 전년 대비 16.3% 늘었다. 이런 판매 호조세에 자극 받은 인터넷쇼핑몰들은 별도 코너를 만들어 파라핀 욕조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파라핀 '셀프치료'가 유행인 가운데, 류마티스관절염 등 증상 악화를 부를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천성모병원 제공
최근 파라핀 '셀프치료'가 유행인 가운데, 류마티스관절염 등 증상 악화를 부를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천성모병원 제공

파라핀, 온열기능 밖에 없는 단순 보조치료

파라핀 욕조 치료는 간단한 원리다. 고체 파라핀왁스를 욕조에 넣어 용해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손목, 발목 등 통증 부위를 욕조에 담궈 파라핀 막이 생기게 한 후 덮개를 씌워 보온을 유지하면 된다.

양초원료로 주로 사용되는 파라핀이 관절치료에 사용된 이유는 뭘까. 박근영 부천성모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파라핀은 손목 등 굴곡이 많은 관절에 열을 골고루 전도할 수 있어 과거부터 병원에서 보조치료요법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권봉철 한림대성심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파라핀은 약 50도 정도에서 용해되기 때문에 화상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어 온열치료요법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가정용 파라핀 기기의 치료효과는 과연 얼마나 될까. 정형외과ㆍ재활의학과 전문의들은 “한마디로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핫펙과 같은 수준”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파라핀은 피부 표층에만 열을 전달하기 때문에 전문치료요법이 될 수 없다”며 “관절염 등에 뛰어난 효과가 있지 않다”고 했다. 권 교수는 “내세울 수 있는 효과라곤 온열기능밖에 없다”고 했다. 이경학 국립중앙의료원 정형외과 전문의는 “관절통증, 관절강직 등 치료에 보조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이에 의존할 경우 증상이 악화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광열 나누리인천병원 관절센터 소장은 “관절염을 오래 앓고 있거나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이들에게 효과적이지만 보조적 치료요법에 불과하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인터넷쇼핑몰 등에서는 ‘손, 발 통증 완화에 효과가 있는 파라핀 치료’ ‘나와 가족의 건강을 챙기는 파라핀치료’ ‘손, 발 통증 물러가라’ 등 내용의 자극적인 광고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화상위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의들에 따르면 파라핀치료 시에는 45~50도 정도를 유지해야 한다. 적정온도 이상으로 온도가 가열되면 화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들은 최대 65도까지 온도를 가열할 수 있다. 심지어 65도가 적당하다고 선전하는 업체도 있는 실정이다. 전문의들은 “심리적으로 빠른 효과를 얻기 위해 온도를 올릴 수 있는데 이 경우 화상을 입을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파라핀 욕조는 의료기기, 파리핀 왁스는 공산품

의학적 효능ㆍ효과를 목적으로 한 의료기기인지 여부도 잘 살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월 ‘의료기기 품목의 소분류 및 등급’제정 공고안을 통해 의학적 효능ㆍ효과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미용용 파라핀욕조에 대해 의료기기 품목에서 제외시켰다. 하지만 인터넷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 중에는 의료기기 상품정보표시를 게재하지 않은 제품이 적지 않다. 관련 제품을 판매 중인 한 업체 관계자는 상품정보 미표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의료기기 표시가 왜 필요 하냐”고 외려 큰소리를 쳤다. 이 관계자는 기자의 다그침에 “인터넷쇼핑몰에 제품 정보입력 시 누락된 것 같다”고 한 발 뺐다.

이은봉 성모다인병원 원장은 “파라핀치료기는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기기와 피부보습을 위한 미용제품으로 나뉘어 있다”며 “치료를 목적으로 제품을 구입할 경우 의료기기 허가번호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이경학 전문의는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파라핀 욕조는 정기적으로 제품검사를 받고 있지만 가정용은 그렇지 못해 안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파라핀 욕조와 함께 실제 치료에 사용되는 파라핀 왁스에 대한 안전성 문제도 검토해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권 교수는 “파라핀 왁스는 피부에 직접 닿는 제품인데 어떻게 제품이 만들어졌는지 제조 과정을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파라핀 욕조처럼 파라핀 왁스도 의료 또는 미용용품으로 분류해 제품의 안전성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파라핀 왁스에는 이와 관련된 상품정보가 게재돼 있지 않다. 파라핀 왁스를 판매하고 있는 업체 관계자는 “파라핀 왁스는 공산품”이라며 “성분에 따라 의료, 미용용으로 나뉘어 판매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인터넷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파라핀 왁스는 제조성분 등 정보를 알 수 없다. 파라핀 왁스를 가열하는 욕조는 의료기기지만 치료에 사용되는 왁스는 제조과정이나 원료 원산지, 성분 등을 알 수 없는 공산품인 것이다. 병원은 물론 피부미용실, 가정에서 치료를 위해 사용되고 있는 파라핀 왁스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류마티스관절염ㆍ대상포진ㆍ당뇨병 환자는 이용 삼가야

류마티스관절염, 당뇨병 등 환자는 파라핀 치료를 삼가야 한다고 전문의들은 경고한다. 이광열 소장은 “퇴행성관절염 환자의 경우 무리한 관절 사용으로 연골 손상이 오는데 회복 과정에서 염증이 증가해 통증 및 부종이 발생한다”며 “급성 부종 및 통증이 발생했을 경우 파라핀, 적외선, 핫펙 등 온열치료를 하면 상태가 악화될 수 있으므로 이 경우 냉각치료로 통증을 조절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했다. 이 소장은 또 “심한 염증이 있거나 류마티스, 통풍이 있을 경우 파라핀 치료를 하면 상태가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사용을 삼가야 한다”고 했다.

피부질환자도 사용을 삼가야 한다. 이은봉 원장은 “간혹 파라핀 성분에 피부가 과잉반응을 보이는 환자가 있다”며 “특히 대상포진 등 피부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파라핀 치료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경학 전문의는 “피부감각이 저하된 당뇨병환자는 화상을 입을 수 있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권봉철 교수는 “파라핀 치료는 만성 관절염환자나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유의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관절이 부어있거나 열이 날 경우에는 사용하면 안 된다”고 했다. 서승우 고대구로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병의 원인과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사용하면 진단이 늦어져 질환을 더 키울 수 있다”며 “관절질환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치료방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전문의 자문을 구한 후 건강관리용품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 파라핀은?

원유를 정제할 때 생기는 희고 냄새가 없는 반투명한 고체. 양초, 파라핀지(紙) 제조, 전기절연 재료, 크레용원료 등으로 사용된다. 연고, 좌약 등 기제로 사용되는 유동파라핀은 석유에서 얻은 윤활유 유분을 잘 정제한 것으로, 휘발성이 적고 냄새가 거의 없는 액체이다. 온열효과가 있어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등에서 온열치료요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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