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디자인을 입다] ③ 팬심에서 일상으로 ‘굿즈’의 진화

[편집자주] 경기라는 상품을 어떻게 포장해 내놓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무궁무진해진다. 스포츠 산업화 속 스포츠와 디자인의 결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총 10회에 걸친 '스포츠, 디자인을 입다' 기획을 통해 한국 프로스포츠의 가치를 높인 사례를 조명한다.

#1. 대학교 학과 조교로 일하는 한화 이글스 팬 유인환(27)씨의 업무 공간은 온통 한화 굿즈(goods)로 도배됐다. 탁상 달력과 머플러는 물론 야구공·피규어·미니배트·물병이 놓여있다. 차량에는 차량용 스티커와 방향제가 붙어있다. 물론 열쇠고리 역시 한화 구단에서 내놓은 상품이다. 평상시에는 언제나 모자와 후드티를 즐겨 착용한다.

#2. 사회인 야구에 참여하는 롯데 자이언츠 팬 윤지원(28)씨는 유니폼과 모자, 스타킹 등 팀 구분을 위한 최소한의 의상 외 소품들은 대부분 롯데 굿즈로 꾸렸다. 장비 가방이나 아대, 겨울철 사용하는 넥워머 등 수 많은 구단 상품들을 사용한다. 그는 "지금까지 롯데 관련 상품 구매에 들인 돈만 500만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그가 갖춘 유니폼만도 10개 가까이 된다.

#3. 3월 14일 시범경기 관람을 위해 목동야구장을 찾은 넥센 히어로즈 팬 설지선(27) 씨는 유니폼과 모자 외에도 점퍼와 무릎담요, 응원 도구 등 넥센 구단의 굿즈로 무장했다. "구단 상품의 디자인이나 실용성에 매우 만족한다"는 그는 "공식 상품은 아니지만 차량도 넥센 히어로즈 관련 디자인으로 튜닝했다"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4. 같은 날 FC서울의 홈 개막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지난해까지 작은 규모로 운영됐던 굿즈 판매 부스가 매장 형식으로 확대됐다. 규모 확대만큼 상품도 다양해졌다. '차두리 스냅백'을 집어 든 박재웅(32) 씨는 "축구가 아닌 영화를 보러 이곳에 왔다가 예뻐서 사게 됐다. 평상시에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며 계산대로 향했다. "유니폼을 사달라"는 아들과 "너무 비싸다"며 주저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보인다.

한화 굿즈로 업무공간을 가득 채운 유인환 씨의 책상. 독자제공

롯데 자이언츠의 굿즈를 사회인 야구에서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윤지원 씨(왼쪽)와 업무공간은 물론 차량까지도 굿즈로 꾸몄다는 설지선 씨(가운데), 롯데 유니폼을 커플 아이템으로 활용하는 김하은·한주현 씨.독자제공
● 男→女 '야구장 경제 주권'은 이양 중

'팬심(fan心)의 척도'였던 프로구단 라이센싱 상품, 이른바 '굿즈'가 일상 속으로 파고들었다. 유니폼과 모자 등 선수와의 동일성을 원천으로 삼아 판매됐던 했던 과거의 전략과는 달리 현재는 각 구단마다 수십 가지는 기본, 많게는 100가지가 넘는 굿즈들이 스포츠 팬들의 지갑을 열고 있다.

이 같은 구단들의 굿즈 판매 전략 변화는 주 소비층의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남성 관람객 비중이 압도적이었던 2000년대 이전과는 달리 디자인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20~30대 여성과 어린이 관람객의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하며 이들을 겨냥한 참신한 상품들을 꾸준히 늘려갔다.

지난해 롯데는 원피스 유니폼을 비롯해 핫팬츠·쿨링백·키 높이 방석·미니 선풍기를, 넥센은 텀블러와 에코백·부채 등을 출시했다. LG는 아예 여성과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헬로키티' 캐릭터를 도입해 의류와 인형, 액세서리 등 다양한 상품들을 선보였다.

롯데 구단 관계자는 “커플·가족 단위 관중이 늘어나면서 여성 관중이 증가한 점은 분명하다”며 “마케팅 전략 역시 이 같은 추세에 발맞춰 가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는 9년 전부터 유니폼을 홈페이지 주문제작 할 때 상체의 핏(fit)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여성 팬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머천다이징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00년대 들어 주요 구매층의 무게 추가 남성에서 여성 쪽으로 기울었다"고 밝혔다. 그는 "굿즈를 구매하려는 남편의 소비 행태를 아내가 저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반대로 아내나 자녀의 구매 욕구를 남편이 막아서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여가에 대한 소비를 투자 개념으로 보는 20~30대 여성 관중이 늘어난 점 또한 시장 구조 변화의 큰 이유"라고 밝혔다.

지난해 LG트윈스에서 여성과 어린이를 겨냥해 내놓은 '헬로키티' 콜라보레이션 굿즈(위)와 올해 FC서울에서 내놓은 스냅백(아래).

● “디자인은 일상이다”별도 조직 꾸린 NC

그렇다면 야구 팬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타 구단 굿즈는 뭘까. 다수의 팬들은 NC다이노스의 상품들을 꼽았다. LG 트윈스 팬 김연주(26) 씨는 "LG의 굿즈들도 예쁘고 실용성 있지만, NC의 '단디봉(다이노스틱)'은 볼 때마다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두산 팬 김현성(40) 씨도 "두산을 응원하러 갔는데 아이는 NC의 응원봉을, 아내는 NC의 망토를 탐내 난감했다"며 웃었다.

NC는 지난 2013년 말 프로구단 중 최초로 디자인과 브랜딩을 전담하는 ‘크리에이트 서비스팀(CS팀)’을 신설해 운영하는 등 창단 초기부터 팀의 브랜드 구축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전체 팀원은 4명, 이 가운데 디자인 담당 인력만 2명이다.

디자인과 브랜딩 전담 부서를 꾸린 데는 게임업체 대표 출신 김택진 구단주와 국내외 스포츠산업 동향에 밝은 이태일 대표의 의지가 컸다. 이태일 대표는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미술이나 조형·패션 정도만 떠올릴 수 있지만, 사실 디자인은 일상과 분리할 수 없는 요소다. 야구가 일상인 이들에겐 야구 디자인이 곧 삶의 일부인 셈"이라며 '디자인 특화'의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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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의 굿즈 제작에는 시즌과 비시즌이 구분 없다. 지난 2014 시즌 개막 전에는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마스코트 '단디'의 이름과 캐릭터를 활용한 '이거 억수로 단디' 초콜릿을 출시해 호평 받았다. 시즌 들어서는 포스트시즌을 겨냥한 '가을이야기'를 키워드로, 시즌 종료 후에는 '크리스마스'를 키워드로 다양한 굿즈를 내놨다. 지난 1월에는 스프링캠프 모자와 티셔츠를 출시해 야구 팬들의 구매욕을 자극했다.

NC 김신희 크리에이트 서비스팀장은 "보다 세련되고 실용적인 상품을 위해 항상 고민하고 있다"며 "시즌이 쉰다고 해서 팬들도 쉬는 건 아니다. 1년 내내 다양한 방식으로 팬들과 소통해가며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 "투자→수익산업…시장 개념 바뀔 것"

구단의 노력과 팬들의 호응 속에 빠르게 성장 중인 굿즈 시장이지만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하기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팬들의 충성도와 구매력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롯데 관계자 역시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에 따라 매출의 편차가 매우 크다”면서 “손익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긴 아직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프로구단 관계자도 "아직까지 한국의 굿즈 판매는 수익 창출의 수단이라기보다 팬들과의 유대감을 높이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투자의 일환으로 보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양대 프로스포츠를 관장하는 KBO와 한국프로축구연맹 역시 머천다이징 판매 매출에 대한 통계나 수치는 아직 공개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아직까지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프로스포츠 시장만큼 스포츠산업의 커다란 축을 맡고 있지는 않지만, 시장규모의 확대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목동야구장에서 원정팀 굿즈 판매 부스를 운영하는 '포유'의 이현재 이사는 "구단들이 내놓는 굿즈가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시작하며 전체적으로 매출은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현재까지 원정팀 굿즈를 판매하는 부스는 목동야구장 1곳과 잠실야구장 2곳뿐이었지만, 올 시즌 새로 참가하는 kt의 홈구장 수원야구장에서도 원정팀 굿즈 판매 부스를 개설해 운영한다.

서울과 전북의 K리그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굿즈 매장은 경기 전후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스포츠 머천다이징 전문업체 다이브인풋볼의 백승남 대표 역시 "수년 전부터 국내 인기 프로구단들을 중심으로 유아용 굿즈 판매 매출이 형성되어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라고 전했다. "어릴 적부터 프로스포츠를 보고 즐긴 이들이 사회인이 되고, 부모가 되어가고 있다"고 밝힌 백 대표는 "응원 구단이 대물림 되기 시작한 지금이 굿즈 유통에 대한 전략을 잘 짜야 할 시기"라며 “오래 전부터 머천다이징 시장의 체계적 관리에 나선 일본 프로야구나 J리그의 사례들을 국내에서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그래픽=백종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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