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31) 아들의 사회생활이 의미하는 것

작년 9월 복직한 아내가 오랜만에 휴가를 냈다. 이 황금 같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머리를 싸매니 대략 두 가지로 정리가 됐다. (남이 보면 시간이 철철 남아도는 육아)휴직을 하고도 인사 한번 못한 각지의 친지, 친구들이나 맛집, 명소를 찾아 전국투어에 나서는 것, 그리고 멀지 않은 곳으로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떠나 그냥 푹 쉬었다가 오는 것. 모두 이런 저런 일정 체크가 필요한 것들이어서 상당한 공을 들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이 제동을 걸었다. 아들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곳으로, 다니기 시작한 지는 보름 정도 됐다.

"00(아들)아버님, 그러시면 안돼요. 그러면 지금까지 해온 거(적응훈련) 처음부터 다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전국투어를 떠난다면 다시 찾으려 했던 고모할머니의 딸기농장. 지난 설연휴 때도 아들과 한번 찾았던 곳으로, 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딸기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은 듯 했다. 요즘 식사를 마치고 나면 후식으로 딸기를 찾는데, 이렇게 먹여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많이, 자주 먹는다.

물론, 이 아빠가 지난주 어린이집에서 아들을 데리고 나오는 길에 (월 11일 이상 출석이면 무상보육이라 별 생각 없이) '다음주엔 아들이 결석을 좀 하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섞어 인사하자 돌아온 답변이다. 이 아빠는 고민에 빠졌다. 지난해 휴직으로 올해 쓸 수 있는 연차가 거의 없다시피 한 아내가 언제 또 이렇게 휴가를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역시 이 아빠도 장기 휴직으로 복직 후 쓸 수 있는 연차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언제 이렇게 시간을 맞출 수 있겠나 싶었다. 여행지에서 아들이 만날 새로운 풍광들, 맘껏 뛰놀 아들 모습에 살짝 설렜다. 또 이 아빠의 복직 전까지는 시간이 몇 달 더 남았으니, 아들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도 크게 문제 될 것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휴가계획은 팔부능선에 다다른 상황.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엔, 눈 질끈 감고 떠나버리기엔 많은 것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 중에서도 지난 2주 동안 직접 아들을 등원시키면서 본 풍경들이 먼저 스쳤다.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싫어 문 앞에서 오만상을 하고 우는 아이들, 그 못지않은 묘한 표정의 엄마 아빠들, 어쩌면 저런 표정이 나올까 싶을 정도의 낯빛으로 두 팔 벌려 아이들을 받아 안으려는 보육교사들…. 여기에 엄마 아빠들이 방에 따라 들어가(1차 적응기) 같이 놀아주고 고작 10분, 30분짜리 이별을 하면서도(2차 적응기) 대성통곡하는 아이들과 애달프기 짝이 없어 하는 부모들의 모습, 그 사이에서 난처해 하는 교사들의 모습까지….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못 봤을 장면들이 떠올랐다.

퇴근한 아내에게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자 난감해 했다. 적응을 다시 해야 하는 아들의 고생, 고통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보육교사들이 그간 고생한 게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 간다면, 그리고 그 때문에 그 동안 잘 적응한 같은 반 다른 친구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실제 아들은 3주차인 지난 월요일부터 어린이집에서 점심을 먹기 시작했고, 데리러 온 아빠를 보고도 시큰둥해 할 정도가 됐다. 아내 말에 따르면 시큰둥한 것은 (싫다는 자신을 내버려 두고 떠난 데 대한)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데, 여하튼 예전처럼 달려와 와락 안기지도 않는다. 여전히 들어가지 않으려고 떼를 쓰고 떨어질 땐 서럽게 울지만 그래도 이전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 최근엔 의자에 앉은 아빠를 밀며 '비켜'라는 말도 하기 시작했다. 한 살 많은 같은 반 형 누나들과도 이럭저럭 어울리며 지내고 있다는 뜻이다.

돌아가는 전체적인 분위기로 봐선 엄마 아빠는 욕심 깨끗하게 접고 그야말로'방콕'해야 하는 상황. 그래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안타까웠는지 아내는 주변 육아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적응이 우선이라는 답이 압도적인 비율로 돌아왔고, 우리는 결국 아무 곳에도 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집이 휴가지라고 생각하고 동네에서 푹 쉬기로 했다.

인천 서구에 있는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아들이 처음으로 만난 맷돼지. 비록 박제물이긴 했지만 아들은 대단한 관심을 표했다. 인천공항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홍보가 덜 됐는지, 아니면 이 아빠의 정보력이 달렸던지 육아휴직 9개월차에서야, 어린이집 학부형들끼리 차를 마시다 알게 됐다. 주중엔 200명 정도 찾는다는 한적한 시설이라 요즘처럼 밖으로 돌리기 애매한 날엔 제격이다.

모처럼 맞은 장기 휴가를 집에서 보내는 아내 생각은 어떤지 몰라도, 이 아빠는 이렇게 생각을 고쳐 먹으니 하루 하루가 그야말로 휴가다. 지난 이틀의 오전은 대략 이런 식이었다. 아들에게 아침을 차려 먹이면 설거지는 아내가 하고, 욕실에서 씻겨 밖으로 내놓으면 아내는 옷을 입혀 어린이집 등원 전까지 신나게 데리고 논다. 그 사이 이 아빠는 청소기를 한번 돌리고 덥수룩한 수염도 면도날을 바꿔 여유 있게 한번 미는 식이다. 아들 웃음소리는 더욱 커지고 이 아빠의 등과 이마에선 땀이 나지 않았다.(이게 무슨 휴가냐 싶지만, 육아독박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안다.)

휴가 아닌 휴가로 한결 가벼워진 머리는 또 다른 생각을 한다. '그럼 이제 모든 일정은 아들 스케줄에 맞춰야 하는 거야? 엄마 아빠 휴가도 어린이집 방학 때에만 갈 수 있는 거고? 그땐 어딜 가나 미어터지는 땐데?'아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이 엄마 아빠의 자유도 본격적으로 구속 받기 시작했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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