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에 끌리고… 매력에 끌리고…

공감대 형성 우선하는 여성

요리하는 남성에 호감 느껴

인간 본능 충실한 생존 아이템

음식 과다 섭취 등 부작용도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식탐을 소재로 한 ‘쿡방’이 인기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쿡방을 통해 음식에 대한 간접경험만 축적하면 뇌에 내성이 생겨 자극적인 음식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진은 광화문 퓨어아레나 레스토랑 주방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먹방(먹는 방송)’이 가고 ‘쿡방(cook+방송)이 떴다. 쿡방이란 음식을 요리하는 모습을 소재로 한 방송 오락 프로그램. 방송에서는 요리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남성 연예인들이 등장해 장어를 노릇노릇 구워내는가 하면 웬만한 주부들에게도 쉽지 않은 김장에다 현란한 제빵 기술까지 선보여 이목을 사로잡는다. 케이블 tvN ‘삼시세끼’에 출연 중인 배우 차승원은 전문가 뺨치는 요리솜씨로 쿡방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다. 쿡방의 인기몰이 이유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식탐을 소재로 한다는 것. 물론 TV 속 요리는 우리가 직접 입으로 맛볼 수 없는 ‘그림의 떡’. 하지만 간접 경험이더라도 한 번 두 번 쿡방에 자꾸 노출되다보면 진짜 식탐으로 이어지거나 자극적 음식에 대한 욕구를 불러 건강에는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자는 요리하는 남자에 본능적으로 끌려”

왜 대중은 쿡방에 끌리는 걸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요리하는 남자’에 주목한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목적 지향적 삶을 추구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공감대 형성을 최우선으로 한다”며 “요리하는 남자는 여성들에게 편안함은 물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고 했다.

과거로의 회귀라는 분석도 있다.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성적분업 이론에 따르면 고기와 같은 양질의 단백질과 지방은 남성이 짐승이나 물고기를 잡아 요리를 통해 여성에게 제공했다”며 “인류학적 연구에 의하면 수렵채집사회에서 열매, 곡물 채집만을 담당했던 여성은 생존이 불가능했다”고 했다. 박 전문의는 또 “임신을 하거나 육아를 담당한 여성은 식량 획득이 더 힘들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남성의 도움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다”며 “남성이 제공한 양질의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하지 않으면 체내 지방량이 20%이하로 떨어져 임신은 고사하고 배란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박 전문의는 “지금도 서양에서는 정찬을 할 때 고기를 잘라 나누는 역할은 남성이, 빵을 나누는 역할은 여성이 하고 있다”며 “여성이 요리를 하는 남성에게 묘한 매력을 느끼고, 고기를 사주는 남성이 더 멋있어 보이는 본능은 고대부터 내려온 전통”이라고 했다.

“생존 아이템인 ‘요리’ 소재가 적중한 것”

우리사회의 힘의 균형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이동됐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혜남 나누리병원 정신건강연구소장은 “우리사회의 힘의 균형이 남성에서 여성 쪽으로 넘어가는 것도 주 원인”이라며 “남성의 도움이 없어도 경제적, 사회적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강한 여성들이 자신과 상반된 모성적인 남자를 원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요리라는 생존아이템을 꺼낸 것이 적중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윤 교수는 “요리는 누군가와 함께 생존을 위해 먹어야 하는 인간의 본능에 가장 충실한 행위”라며 “우리 뇌에는 쾌감을 얻고자 하는 장치가 존재하는데, 요리라는 아이템은 생존욕구, 사랑에 대한 욕구, 힘에 대한 욕구 등을 충족시킨다”고 했다.

쿡방의 인기몰이에는 사회불안, 가족해체 등 사회ㆍ심리적 요인도 작용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 소장은 “우리사회가 불안해지면서 ‘구강기’로 퇴행해 요리 관련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다”며 “남을 이겨야 생존할 수 있는 경쟁사회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보살핌을 받고 싶은 소망이 반영된 것 같다”고 해석했다. 김 소장은 또 “‘슬프다(sad)’의 어원이 라틴어의 ‘satiety(포만감)’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을 만큼 인간은 배가 부르고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됐을 때 우울감을 느낀다”며 “먹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1차적 즐거움과 쾌락의 요소이자 생존에 필요한 요건이기에 요리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뇌 ‘내성’ 생겨 자극적 음식 갈망 불러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되기를 선호하는 현대인들에게 쿡방은 또 하나의 선물을 안겼다. 간접경험을 통해 내재된 식욕을 자극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식욕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식욕은 뇌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뇌하수체에서 조절된다. 뇌하수체에 작용해 외부자극과 식욕을 연결시켜주는 신경호르몬이 바로 ‘렙틴(leptin)’과 ‘그렐린(grehlin)’이다. 렙틴은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포만 호르몬’이고, 그렐린은 위와 십이지장에서 분비되는 ‘공복 호르몬’이다. 위가 비워지면 그렐린이 분비돼 뇌하수체에서 식욕을 자극하고, 음식을 먹어 위가 팽창되면 그렐린 분비가 감소돼 식욕이 떨어진다.

고석만 내안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사람들이 공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밤중에 요리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은 음식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그렐린 농도가 증가하기 때문”이라며 “시각적으로 요리하는 모습만 봐도 식욕이 발생해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박한선 전문의는 “인간의 뇌에서 가장 발달한 감각이 바로 시각”이라며 “냄새도 맛도 느낄 수 없는 요리방송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것은 뇌가 맛과 냄새를 짐작해 만족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만의 레시피로 건강과 행복 유지를”

시각적 효과만으로 식욕이 유발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윤대현 교수는 “인간은 요리를 하면서 자연에서 얻은 재료와 관계를 맺고, 함께 음식을 먹으면서 사람과 관계를 형성한다”며 “하지만 직접 요리를 하지 않고 쿡방 같은 간접경험만 축적되면 뇌에 내성이 생겨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돼 비만 등 건강에 좋지 않은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했다. 운전하면서 먹고, 옷을 입으면서도 먹고, 심지어 걸으면서도 음식을 먹는 현대인에게 쿡방은 먹는데 집중하는 식사시간보다 ‘부차적 식사’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경희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쿡방 등 요리 관련 프로그램들이 심야시간에 편중돼 있는 것도 문제”라며 “심야시간대 뭔가를 먹고 싶다는 충동으로 음식을 과다 섭취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나친 경쟁과 사생활 침해요소는 삼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혜남 소장은 “일부 요리 관련 프로그램을 보면 부엌 등 가정을 그대로 공개해 남과 비교하는 등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관음증적 속성이 보이고, 요리시합에서 패한 팀원들에게 벌칙으로 음식을 주지 않거나 반찬 없이 밥을 먹게 하는 등 가학적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취업난, 조기퇴직 등 먹고 살 걱정이 많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생존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 전문의는 “인류 역사에서 지나치게 풍부한 음식이 문제가 된 것은 불과 수십 년 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8명 중 1명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며 “음식에 대한 가치와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옥동식 광화문 퓨어아레나 셰프는 “나와 가족을 위해 정성을 다해 요리를 하면 맛도 기쁨도 느낄 수 있다”며 “간단한 음식부터 나만의 레시피를 개발해 만들면 보람도 있고 건강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 현대인들 음식 프로그램 많이 보지만 직접 하지는 않아… 요리의 역설!

‘요리를 욕망하다’의 저자 마이클 폴란은 현대인들이 직접 요리를 하지 않고 텔레비전 등 미디어를 통해 요리에 심취하게 되는 현상을 ‘요리의 역설(cooking paradox)'이라 했다. 그는 “1960년대 중반 이후 미국가정에서 식사준비에 필요한 시간은 하루에 고작 27분밖에 되지 않는다”며 “하지만 대중은 요리 이야기를 하느라 점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 했다. 대중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더 자주 지켜보고, 요리에 대한 책을 더 많이 읽으며, 실시간으로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도록 고안된 레스토랑에 더 자주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그는 “현대인들은 유명 셰프가 출연한 방송이나 요리대결 프로그램의 에피소드 하나를 시청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지만 텔레비전에서 요리되는 음식이 우리가 먹는 음식이 될 수 없음을 새삼 지적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요리의 역설로 인한 피해도 지적했다. 폴란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가시화되면서 요리행위 자체가 기업으로 위탁돼 ‘산업적 요리’가 등장, 인간의 건강에 상당한 손실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그는 “산업적 요리를 생산하는 기업은 설탕과 지방, 소금을 사람들이 요리할 때보다 훨씬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집에서 거의 쓰지 않는 새로운 화학재료를 사용해 식품보존 기간을 늘리고 실제 보다 훨씬 신선해 보이도록 해 비만이 증가하고, 식단과 연관된 만성질병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포장식품을 달고 사는 ‘부차적 식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느라 전통적인 식사, 즉 ‘먹는데 집중하는 식사’ 시간은 줄고 있다”며 “대중은 진짜 음식이 아닌 기업이 생산한 인공물을 섭취하며 스스로를 살찌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치중기자

api_db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