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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고스란히, 콘텐츠는 빵빵… 만화카페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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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고스란히, 콘텐츠는 빵빵… 만화카페가 뜬다

입력
2015.03.0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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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지하에 낡은 소파서 깔끔한 카페 인테리어로 변신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뒷골목에 있는 만화카페 '섬'에서 20~20대 손님들이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안쪽에 보이는 2층 침대와 바닥의 구름소파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만화를 볼 수 있게 해 준다. 배우한 기자 bwh3140@hk.co.kr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뒷골목에 있는 만화카페 '섬'에서 20~20대 손님들이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안쪽에 보이는 2층 침대와 바닥의 구름소파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만화를 볼 수 있게 해 준다. 배우한 기자 bwh3140@hk.co.kr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달 22일 서울 서교동에 있는 만화카페 ‘즐거운 작당’은 손님들로 빈 자리가 없었다. ‘만석’ 표시가 세워진 입구 앞으로 줄이 늘어섰다. 어두컴컴한 지하에 빼곡히 쌓인 만화책들, 낡아 버린 소파와 컵라면…. 이런 것을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과거의 추억을 대체한 요즘의 만화카페에는 깔끔한 인테리어와 최신 유행 웹툰, 커피가 있다. ‘즐거운 작당’이나 서울 신사동의 ‘섬’ 등 만화카페의 매력은 무엇일까.

만화 마니아가 꿈꾸던 천국

만화카페의 이용료는 시간당 2,400~3,000원. 어린 학생이라면 만만찮은 비용이지만, 과거의 만화방과는 확실히 다른 매력이 있다. 만화를 볼 수 있으면서 집처럼 편하게 머물 수 있는 복합공간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9월 문 연 신사동 가로수길 뒷골목의 ‘섬’에는 2층 침대가 있다. 좁은 매장 공간을 만화카페로 만들면서 “만화를 가장 편하게 보는 장소가 어디일까”를 고민한 끝에 내놓은 아이디어였다. 지금 2층 침대는 이 매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다. 두 명 혹은 세 명이 만화책을 한 줄로 쌓아놓고 가장 방만한 자세로 읽는다. 방구석에서 뒹구는 그 여유 그대로다. 이밖에 섬에는 앉아서 볼 수 있는 탁자, 누워서 볼 수 있는 구름소파가 두루 배치돼 있다. 이곳에서 손님들은 커피, 차 등 음료는 물론 과자와 간단한 식사까지 사먹으며 시간을, 여유를 구매한다.

즐거운 작당의 ‘2층 침대’는 ‘땅굴’이다. 찜질방에 있는 토굴 모양으로 책장 밑에 만들어진 땅굴 안에서 손님들은 눕거나 벽에 기대 앉아 만화를 읽는다. 데이트할 때 가끔 이 장소를 방문한다는 김석경(24)씨는 “남들 눈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친구와 만화를 돌려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영화관ㆍ커피숍ㆍ식당으로 한정된 ‘데이트 패턴’에 새로 추가된 데이트 코스다.

이들처럼 만화카페의 고객층은 청소년을 넘어 20~30대로 확장돼 있다. 주로 친구끼리, 연인끼리 오지만 드물게 세대를 넘어 문화를 공유하는 가족 고객도 있다. 딸의 손에 이끌려 만화카페를 방문했다는 강준길(47)씨는 “오래 전 만화방에서 만화를 봤던 생각이 난다”며 “허영만 작가가 아직까지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반갑다”고 말했다.

다양한 만화를 접할 수 있는 공간

만화카페의 외양은 방구석 문화를 양지화한 카페문화지만, 그 핵심에는 만화 콘텐츠가 자리잡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성업했던 만화 대여점에서는 흔히 ‘소년만화’라 불리는 단행본과 여성들을 겨냥한 순정만화가 주력이었다면 최근의 만화카페는 장르를 불문한 온갖 종류의 출판만화를 망라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만화 대여점을 넘어선다. 최근 인기를 끄는 웹툰 단행본, DC와 마블 등 미국 만화책까지 없는 게 없다. 책장 옆에는 영화로 먼저 마블 코믹스를 접한 이들을 위해 ‘책 읽는 순서’도 친절하게 적어 놓았다. 시리즈 하나만 읽어서는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 미국 슈퍼히어로 만화의 특성을 이해하기 쉽게 재구성해 전달한 것이다.

경기 수원의 만화카페 '해피코믹스' 애니팝 제공
경기 수원의 만화카페 '해피코믹스' 애니팝 제공

만화 팬들에게는 그저 만화책으로 가득 찬 공간 자체가 가슴 벅찬 즐거움이다. 유준호(33ㆍ가명) 씨의 표현에 따르면 만화카페는 ‘만화 마니아들의 비밀 공간’이다. “아직도 한국 사람들은 만화를 어린애들만 보는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만화카페에 오면 나 같은 사람이 많아요. 잔뜩 늘어선 만화책 사이에서 언제든 어떤 만화든 골라 볼 수 있고, 남들도 그러리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져요.” 친구 3명과 함께 즐거운 작당을 방문한 박지현(18)양은 “만화 팬들 사이에서는 소문난 곳”이라며 “인터넷으로 알고 꼭 한 번 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카페 주인장의 만화 분류 안목도 수준급이다. 허영만의 ‘식객’과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은 음식이라는 소재로 묶였고, 유태인의 눈으로 홀로코스트를 다룬 아트 슈피겔만의 ‘쥐’와 경상도인의 눈으로 본 광주 항쟁을 다룬 김수박의 ‘메이드 인 경상도’는 르포 만화로 엮여 같은 자리에 놓였다. 손님들이 다양한 만화로 관심사를 넓힐 수 있도록 섬세한 노력이 돋보이는 배치다.

만화카페 컨설팅업체 애니팝의 정상준 대표는 “과거의 만화방은 다양한 손님을 이끌기에 부족한 면이 많았다”며 “다양한 만화를 두루 구비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공간이 편안해도 만화카페로서는 오래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만화카페가 기존의 도서 대여점처럼 10대 위주의 만화만을 취급해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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