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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근버스 없앤다고?" 속타는 공무원들

입력
2015.02.2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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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살면서 매일 세종 정부청사까지 통근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경제부처 김모 과장은 항상 버스 맨 앞자리를 고집합니다. 그는 버스에 타는 2시간 내내 책을 읽는데 그나마 앞자리에 앉아야 운전석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글씨를 읽을 수 있다는 겁니다. 아침 6시30분쯤 출발하는 통근버스는 쪽잠이라도 자 두려는 탑승객을 배려해 항상 불을 꺼둔 상태입니다.

대단한 독서광도 아닌 김 과장이 그토록 책을 열심히 읽게 된 건 다름아닌 허리 디스크 탓인데요. 정부청사가 세종으로 이전한 이후 2년 정도 매일 4, 5시간 출퇴근 버스를 타다 보니 디스크가 왔다고 합니다. 최대한 좌석 안쪽 끝까지 엉덩이를 붙인 채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야 그나마 허리에 무리가 덜 가는데 잠이 들면 자기도 모르는 새 자세가 흐트러져 그 때부터 책을 읽는 버릇을 들였답니다.

“세종에 내려가 살면서 편하게 출퇴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는 그가 고된 버스 출퇴근을 그만둘 수 없는 건 가정 때문입니다. 서울 소재 회사를 다니는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한 세종에 함께 사는 건 가능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자녀 교육문제도 마음에 걸린다고 하고요.

하지만 ‘오는 7월부터는 통근 버스가 아예 없어지거나 월, 금요일 이틀만 운행할 수 있다’는 소문이 관가(官家)에 돌면서 김 과장 같은 ‘통근 버스족’이 마음을 졸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버스 운행 대수가 지속적으로 준 것은 세종 지역 시민단체들이 통근 버스를 지역 발전의 발목을 잡는 ‘원흉’으로 지목해 폐지 운동을 벌여왔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세종참여자치시민연대는 지난 23일에도 성명을 내고 “통근버스 상시 운행은 막대한 혈세 낭비(지난해 140억여원 규모)와 세종청사 비효율을 구조화한다”며 남은 버스마저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특히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의 세종 이전 수정추진에 반발, 도지사직을 던질 정도로 ‘세종 사랑’이 대단하다는 이완구 총리가 최근 취임한 것도 버스 이용자들로서는 악재입니다. 충청 출신인 이 총리가 세종시 정착을 위해 통근 버스 운영 중단을 결단할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옵니다.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앞 주차장에 주차된 통근버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앞 주차장에 주차된 통근버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공무원들이 전부 세종에 살면서 편하게 출퇴근하고 지역 경제도 활성화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통근 버스가 없어진다고 얼마나 많은 공무원이 더 내려올 지 의문이라는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내려올 여건이 되는 사람들은 이미 내려오거나 조만간 내려올 계획이고 서울에는 버스가 있건 없건 서울에서 다닐 수밖에 없는 공무원만 남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고된 출퇴근을 버티다 못해 세종에 이주하는 공무원 숫자는 계속 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한 달 동안에 세종에 전입한 순이동자 수(전입자 수-전출자 수)만 5,519명입니다. 지난해에만 전국 최고 수준인 총 5만6,526명이 전입했고, 세종 청사가 이전한 2012~2014년 총 순 유입 인원은 9만7,824명에 달합니다. 원룸을 구해 주중에만 세종 생활을 하면서 주소지는 옮기지 않은 공무원 숫자까지 더하면 실제 이주 인원은 이보다 더 많습니다.

세종에 내려오지 못하는 공무원들은 만에 하나 버스가 없어질 경우 월 30만원을 내고 KTX 정기승차권을 끊어 이용하거나 자비로 단체로 버스를 대절해 타고 다닐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세종시 정착과 공무원 가정의 평화가 양립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이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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