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소비자 위상 달라져

보호대상 아닌 경쟁력 강화 수단

소비자에 대한 인식·정책 바꿔야

소비자는 정부가 보호해야 하는 대상인가. 30년 전이라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마디로 그렇다고 답변하기 어렵다. 왜 그런가.

최근 소비자권익증진기금 300억원을 조달하는 정책에 대한 토론회가 있었다. 그 모임에서 모든 토론자는 목소리를 같이 했다. 소비자에 대해 사회가 도움을 주고 정부가 지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계약서에 갑으로 표기되는 기업과 을로 표기되는 소비자 간에 수퍼갑질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0년 사이에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에는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는 인터넷 시대의 도래이다. 30년 전 후진국 소비자는 선진국 소비자에 비해 정보가 부족했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이를 이용해서 선진국에서 팔다 남은 제품을 후진국 시장에서 땡처리했다. 인터넷은 이러한 소비자의 위상을 크게 바꿨다. 오늘날 인도 같은 인터넷 강국에서 그런 행태를 보이는 기업들은 분노한 소비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퍼뜨리는 비판으로 인해 살아남을 수 없다.

둘째는 글로벌 시대의 도래이다. 인터넷이라는 온라인 공간과 여행자유화로 얻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세계 소비자들은 강력한 연대를 형성하고 있다. 옛날이라면 기업이 공식적인 사과로 끝날 일이 오늘날에는 해당 기업의 위기와 파멸을 초래하고 있다. 1996년 소년 노동에 대한 착취사건이 폭로된 나이키에 대한 불매운동, 2001년 구제역과 광우병 파동으로 패스트푸드 점과 외식업체에 대한 세계적인 불매운동 등은 해당 기업과 산업을 한동안 침체로 몰아갔다. 오늘날 소비자는 세계 시장과 연계해서 과거보다 훨씬 큰 소비자 주권을 누리고 있다.

셋째는 소비자에 대한 인식 변화이다. 1986년에 10개국 학자들이 모여 3년에 걸쳐 진행한 국가경쟁력 연구는 한 나라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네 가지 요소 중 하나로 소비자를 찾아냈다. 자그마한 흠결도 놓치지 않고 불만을 제기하는 까다로운 소비자는 기업에게 제품 품질과 서비스에 대해 훨씬 더 큰 노력을 하게 만든다. 그 결과 기업은 더 강한 경쟁력을 가지게 된다. 하버드 대학 마이클 포터 교수가 주도한 이 연구는 소비자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 인식을 바꾸게 했다. 소비자가 강하지 않은 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길은 없다. 생산자가 강한 국가는 개도국, 소비자가 강한 국가는 선진국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소비자는 보호대상이 아니라 경쟁력 강화의 수단이 되었다.

인터넷과 글로벌 시대의 도래는 정부가 소비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필요한 조건이다. 소비자가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는 경제이론은 정부가 소비자에 대한 정책을 세우는데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다.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정부가 소비자에 대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 소비자를 보호대상자로 볼 것이 아니라 선진화의 수단, 경제활동의 파트너로 보아야 한다.

국민경제의 중요한 세가지 주체인 정부, 기업과 은행, 가계 소비자를 수평 비교해보자. 이 세가지 주체 중에 누가 제일 중요한가.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정부가 파산위기에 처했던 1997년의 IMF위기, 은행이 파산 위기에 처했던 2008년의 금융위기를 겪었다. 그 때마다 우리 소비자는 수백조 원을 호주머니에서 꺼내서 망할 위기에 빠졌던 우리 경제를 살려냈다. 앞으로 우리 국민, 우리 소비자가 파산위기에 처하면 정부, 기업과 은행을 구제하는 데 필요한 자금과는 비교가 안되는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최근 피그스(PIGS)로 불리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국가위기가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 소비자가 파산위기에 처하면 누가 이를 구할 것인가.

소비자가 우리 경제를 이끄는 대들보임을 인식한다면 소비자권익증진기금은 300억원이 아니라 3,000억원, 3조원이 들어도 아깝지 않은 정책자금이다. 다만 기금의 이름을 “경제선진화를 위한 소비자투자기금”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학 명예교수ㆍ중국 장강상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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