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신년연설이 지구적으로 화제가 됐다. 특히 주목받은 말은 ‘중산층 경제(middle-class economics)’다. 중산층 경제란 중산층 살림살이를 중시하는 정책을 말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산층 경제의 정신이 “모두가 공정한 기회를 가질 때, 모두가 정당한 몫을 받을 때, 모두가 같은 규칙에 따라 살아가고 있을 때, 이 나라는 최고라는 생각”에 있음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관심을 모은 것은 위기의 중산층 때문이다. 오늘날 중산층의 삶이 위기에 놓이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다. 한때 풍미한 ‘20 대 80 사회’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중산층이 두터운 ‘다이아몬드형 사회’에서 중산층이 엷어진 ‘모래시계형 사회’로 변화돼 왔다. 최근 쓰이는 ‘1 대 99 사회’라는 표현은 분명 과장된 것이다. 하지만 소수의 상층과 다수의 하층으로 계층구조가 갈수록 양극화되는 것은 21세기 지구사회의 우울한 풍경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중위소득의 50~150%에 속하는 중산층의 비중은 1990년 74.47%에서 2000년 70.87%로, 다시 2010년 67.33%로 지속적으로 감소돼 왔다. 주목할 것은 주관적인 중산층 귀속의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8월 국민 가운데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46.4%에 불과했다. 앞서 지적한 객관적인 통계와 비교할 때 20% 정도 차이가 난다. 그만큼 상대적 박탈감이 큰 셈이다. 더욱이 외환위기 이전인 1990년대 초ㆍ중반 중산층 귀속의식은 70~80% 대에 있었음을 돌아볼 때 우리 사회 중산층이 느끼는 위기감은 높아져온 게 현실이다.

중산층의 위기를 가져온 원인은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으로 나뉜다. 원인(遠因)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세계화의 진전과 이로 인한 양극화의 강화다.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재벌 대기업 대 중소기업, 첨단산업 대 전통산업, 고소득층 대 저소득층, 정규직 대 비정규직에 이르는 기업ㆍ산업ㆍ소득ㆍ고용의 양극화가 중산층 붕괴의 구조적 조건을 이뤘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과정 속에 투자가 감소하고 내수가 결빙되다 보니 계층 간 빈부 격차의 정도와 체감이 커져왔다.

근인(近因)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충격이 미친 영향이다. 경제위기는 특히 중산층의 한 축을 이뤄온 자영업의 몰락을 가져왔고, 점증해온 가계부채는 중산층 일부를 빈곤층으로 떨어뜨렸다. 그 결과 사회 전체가 특유의 역동성을 상실한 채 움츠러들고 황량해져 왔다. 자살률의 증가, 생계형 범죄의 확산, 상대적 박탈감의 강화가 일상화되는 과정 속에 현재의 곤궁과 미래의 불안이 시민사회와 시민문화 전반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우리 사회에도 공감을 크게 모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중산층을 구출하는 데 그들의 실질 소득을 증가시키는 것 이외의 다른 방도는 없다. 이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부자 증세, 중ㆍ저소득층 감세, 최저임금 인상, 커뮤니티칼리지 학비 면제 등은 위기에 처한 미국 중산층의 복원을 위한 정책대안으로 평가할 만하다. 빈부 격차를 줄여 중산층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오바마 정부의 발상은 최근 미국과 영국 진보주의자들이 제시한 ‘포용적 번영(inclusive prosperity)’의 정치적ㆍ정책적 버전인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중산층 경제학에 대해 미국 안에선 공화당의 반격이 만만치 않다. 당장 부자 증세를 반대해온 공화당은 계급투쟁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계급투쟁을 조장하는 것은 부자 증세가 아니라 계층갈등의 심화다. 우리 사회의 경우 중산층의 몰락을 제어하지 못하고 양극화가 더욱 증대한다면 그것은 계층갈등을 강화시키고 결국 사회통합을 고갈시킬 가능성이 높다.

새해 들어 박근혜 정부는 ‘경제 살리기’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한 경제냐’의 질문이다. 강자를 위한 경제인가, 약자를 위한 경제인가. 지구 저편에서 들려온 ‘중산층 경제’가 바로 그 해답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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