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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베이징에서 본 한반도

입력
2015.02.0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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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베이징(北京)시 톈안먼(天安門) 광장의 중국국가박물관에서는 ‘실크로드’ 문물전이 열리고 있다. 중국 문화부와 국가문물국, 산시(陝西)성 간쑤(甘肅)성 등 지방 정부들이 공동으로 주관하고 있는 이 행사엔 실크로드 관련 400여개 문물 진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실로 들어서자 유라시아대륙과 아프리카까지 그려 넣은 대형 지도가 관람객을 맞았다. 지도 위엔 다양한 비단길 노선이 그려져 있었다. 시안(西安)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 실크로드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건 한반도로 이어진 노선이었다. 시안에서 동쪽으로 뻗은 비단길은 베이징(北京)을 거쳐 평양과 서울은 물론 경주까지 연결돼 있었다. 중국이 복원하고 싶어하는 실크로드의 큰 그림엔 한반도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 문물들을 살펴보던 중 불편한 지도가 눈에 띄었다. 당(唐)대 소그드인의 이동 경로를 표시한 지도인데, 한반도 북부와 호남 지방을 몽땅 당나라 영토로 표기하고 있었다. 국내 역사에서 이 지역을 동시에 통째로 중국에 내 준 적은 없다. 억지로 추정해보자면 고구려와 백제가 망하고 신라가 아직 당나라군을 완전히 몰아내진 못했던 특정 시기를 상정한 것인 듯 했다. 중국이 생각하는 당나라의 강역과 실크로드의 모습을 시사하는 지도다.

전시실 마지막 코너의 객사도(客使圖)를 봤을 때는 감정이 더 복잡해졌다. 객사도는 당 고종과 측천무후 사이에서 태어난 장회(章懷)태자의 묘에서 1971년 발견된 벽화다. 높이 2.04m, 길이 2.75m의 이 그림엔 모두 6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중 왼쪽 3명의 관원은 당나라 조복을 입은 채 엄숙한 얼굴로 무언가를 상의하는 모습이다. 반면 오른쪽 3명은 이러한 당나라 관원들을 어깨 너머 지켜보고 있는 외국 사신들을 표현하고 있다. 전시된 객사도의 설명문엔 이들이 한반도의 신라와 동로마, 말갈족에서 온 사신들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어 당 황제를 접견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신들 모습을 잘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중국국가박물관의 실크로드 문물전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일대일로(一對一路ㆍOne Belt One Road) 구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마련된 기획 전시회다. 일대일로란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경제벨트’와 동남아-인도양-아프리카까지 연결되는 ‘21세기해상실크로드’를 동시에 건설하겠다는 시 주석의 신 실크로드 구상이다. 이를 통해 이 지역의 경제를 중국과 통합시키면서 운명공동체를 건설하겠다는 게 중국의 포부다.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중국의 꿈이 이렇게 가시화하고 있다.

문물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중국의 신 실크로드 구상은 한마디로 세계 최강국이었던 당나라 시절을 재현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주변 나라들이 모두 중국의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찾아오고 줄을 서서 기다렸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 신중화를 건설하겠다는 바람이 그 기저에 깔려 있다. 최근 중국 학계에서 주변국 외교가 강조되고 있는 것도 세계의 중심은 다시 중국이란 것을 염두엔 둔 사고다. 더 이상 미국 눈치 안 보겠다는 이야기다.

대륙의 기운이 떨쳐 일어서고 중국이 강성해질 때마다 우리 역사는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당나라 시절은 우리로선 요동반도와 만주벌판을 내 줘야 했던 때다. 강대해진 신중국은 한반도에 다시 영향력을 키우려 할 것이다. 남북이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인데 우린 지금 1,400여년 전처럼 또 나뉘어져 있다. 누구보다 위기를 깨닫고 방향을 제시해야 할 남쪽의 5년 임기 전현직 지도자들은 네 탓 공방에만 빠져 있다. 베이징에서 보는 한반도가 자꾸 걱정이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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