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24. 어린이집 입학 딜레마

“여보, 아들을 어린이집에 꼭 보내야 되겠어?”

육아휴직 남편 덕에 아들 걱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복직 5개월차의 아내가 극도의 불안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입학시즌(3월초)이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인천의 한 어린이집 폭행 동영상 장면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물론 그 전에도 어린이집 사고 소식에 관심을 표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이번엔 차원이 달랐다. ‘어린이집에 안 보내면, 뭐 다른 수라도 있냐’는 말에 아내는 ‘(아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어떻겠냐’고 했을 정도다.

사실 이 아빠도 그 TV뉴스를 보다가 ‘헙’ 소리가 튀어 나왔고, 그 아이와 부모 생각을 하니 가슴이 쓰렸다. 남의 일이 아니다 싶으니 아내 말마따나 일을 그만두고 직접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들을 맡긴 ‘죄’로 노심초사할 시간이 영원히 이어질 것도 아니고 아들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키우는 것만큼이나 우리 부부, 아내의 삶도 생각해야 했기에, 찜찜해도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희망하던 같은 아파트단지 내 어린이집은 아니었지만 그 결정을 번복할까 봐 입학금까지 일찌감치 치렀다.

요즘 들어 호불호가 분명해지면서 고집도 세진 아들. 동네 쇼핑몰에서 만난 모형기차에 꽂히자 기관실에 아예 드러누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들을 빼내 이동하기 위해서는 더 매력적인 것을 제시하거나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사실 이 아빠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에 한껏 부풀어 있던 사람이다. 문화센터 가는 날을 제외하곤 거의 아빠랑만 노는 아들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었고, 또 이 아빠 복직 전에 아들을 어린이집에 연착륙 시키자면 3월엔 입학시키는 게 맞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된 육아노동에서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이 아빠의 욕망, 한 인간으로서의 생존본능(?) 때문이기도 했다. 말귀를 알아 듣고 제법 걷는 아들이 이젠 아빠랑 밥상을 상당부분 공유해도 될 정도로 성장한 덕분에 주변에선 ‘애보기 수월해진 것 아니냐’하지만 그와 동시에 늘어난 아들의 체중과 활동량, 고집을 고려하면 육아노동의 강도는 더 늘었으면 늘었지 줄진 않았다.

지난달 말 어린이집에서 아들 순서가 됐다며 전화가 왔을 때 뛸 듯이 기뻤던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 낮잠이 한번으로 줄어든 아들을 보고선 ‘어린이집 수면 모드에 맞춰져 가는구나!’하며 감탄했고, 놀이터나 문화센터서 만난 또래들과도 이럭저럭 어울리고, 낯 가리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들과 엮여 노는 모습을 보면서 떠올린 생각도 ‘어린이집 보내도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어린이집은 이 아빠에게 필요했고, 운 좋게도 딱 맞춰 연락이 왔다. (육아선배들은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가 어린이집’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이지만, 하루 종일 말짱한 정신으로 애를 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 느낌 안다.) 상담을 빙자한 어린이집 방문에서 어린이집에 대한 아들의 ‘반응테스트’, 시설 ‘현장실사’까지 마쳤다.

그토록 바라던 아들의 어린이집 입학이지만, 막상 보내려고 하니 이 아빠의 마음은 급해진다. 어린이집 가기 전에 아들이 똥오줌 가리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부터, 낮잠도 혼자 잘 자고, 숟가락질도 더 정교하게 할 수 있도록 가르쳐서 좀 덜 흘리게 하고, 음식도 가리지 않고 먹도록 가르쳐야 할 것 같은 생각 등등등. 육아전문가들은 세 살 전까진 아무것도 가르치지 말라 하지만 그래도 ‘평균’은 하도록 해서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이 안달복달은 ‘어떻게 해서 보내면 담당 보육교사의 수고를 좀 덜어 줄 수 있을까’ 하는 데까지 이어진다.

이 얘기를 들은 한 친구는 이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치밀했으며, 또 언제부터 이렇게 소심했냐며 웃는다. 비웃어도 할 말은 없다. 비굴해 보일 정도로 전에 않던 예비행동을 하고 있는 이유는 만사 제치고 애를 한번 키워봤기 때문이고, 이렇게라도 해서 어린이집에 보내야 아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할 확률도 줄지 않겠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맘엔 안 들지만 현재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 곧 엄마아빠 품을 떠나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 그 아들이 요즘엔 스스로 걸으려고 해서 이렇게 안아줄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여러 생각들이 겹친다.

다시,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서커스이기 때문이다. 내 자식 하나 보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아들 또래 아이 다섯(만 1세반)을 혼자서 본다? 이 아빠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혼자서 애 다섯을(정원을 지키는 곳도 드물다고 한다) 먹이고, 기저귀와 옷을 갈아 입히고, 씻기고 함께 놀아주는 일은 아무리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리 마음씨가 천사 같다고 해도, 아무리 신의 한 수를 전수받은 보육교사라 해도 이것은 무리다. 아들 하나만 봐주는 ‘이모’들도 월 150만원은 달라고 하는데, 그보다 못한 월급을 받는 보육교사들이 웃으면서 아이들을 돌봐주길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이러면서 제대로 하는지 폐쇄회로(CC)TV로 감시하겠다고? 실효성, 인권문제를 떠나 이것은 차라리 코미디다.

이런 소리 하면 배부른 소리한다고 또 욕 좀 듣겠지만, ‘크게 마음 한번 먹으면’ 육아휴직 3년 쓸 수 있는 공무원들이 요즘처럼 부러운 때가 없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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