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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보는 이중섭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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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보는 이중섭展

입력
2015.01.2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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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랑 편지·은지화 등 전시회...가족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여운

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이 그려진 편지. 1954년 일본에 있던 큰아들 태현에게 띄운 것이다. 편지 내용에는 전시회가 성공해 가족과 즐겁게 상봉할 것을 확신한 기대감이 투영돼 있다. 현대화랑 제공
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이 그려진 편지. 1954년 일본에 있던 큰아들 태현에게 띄운 것이다. 편지 내용에는 전시회가 성공해 가족과 즐겁게 상봉할 것을 확신한 기대감이 투영돼 있다. 현대화랑 제공

이중섭이 태현에게 보낸 또 다른 편지. 아랫부분에 “이번에 아빠가 빨리 가서… 보트를 태워 줄게요. 아빠는 닷새간 감기에 걸려서 누워 있었지만 오늘은 아주 건강해졌으므로… 또 열심히 그림을 그려서… 어서 전람회를 열어 그림을 팔아 돈과 선물을 잔뜩 사 갈테니… 건강하게 기다리고 있어주세요”라고 적었다. 이중섭은 같은 그림을 담은 안부 편지를 작은 아들 태성에게도 보냈다. 현대화랑 제공
이중섭이 태현에게 보낸 또 다른 편지. 아랫부분에 “이번에 아빠가 빨리 가서… 보트를 태워 줄게요. 아빠는 닷새간 감기에 걸려서 누워 있었지만 오늘은 아주 건강해졌으므로… 또 열심히 그림을 그려서… 어서 전람회를 열어 그림을 팔아 돈과 선물을 잔뜩 사 갈테니… 건강하게 기다리고 있어주세요”라고 적었다. 이중섭은 같은 그림을 담은 안부 편지를 작은 아들 태성에게도 보냈다. 현대화랑 제공

“세상에 나만큼 자신의 아내를 광적으로 그리워하는 남자가 또 있겠소. 만나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또 만나고 싶어서 머리가 멍해져 버린다오. 한없이 상냥한 나의 멋진 천사여!! 서둘러 편지를 나의 거처로 보내주시오.”(1954년 11월 10일 편지 중에서)

불우한 천재화가 이중섭의 절절한 가족 사랑을 담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현대화랑 ‘이중섭의 사랑, 가족’ 전에는 이중섭 하면 떠오르는 ‘소’ 같은 웅장한 유화는 없다. 전시작 70여점 중 대부분이 담배를 포장한 은지에 새긴 자그마한 은지화, 일본 유학시절 글을 대신해 사랑을 전한 엽서화, 가족에게 보낸 편지화 등 손바닥만한 그림들이다. 종이 살 돈이 없었던 이중섭은 나무판, 맨종이, 담뱃갑, 은종이에 연필이나 못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공개 편지화 20여점과 미국 문화공보원장을 지낸 아더 맥터가트가 한국에 머물 때 사들여 1955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기증한 은지화 3점이 선보이는데 이중섭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중섭 편지 실물은 그간 삼성미술관 리움과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이 소장한 몇 점 외에는 공개된 적이 없다. 60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MoMA 소장 은지화도 담배딱지 그림으로는 드물게 채색이 되어 있다.

이중섭이 아내와 아이들의 안부를 물으며 엽서와 편지 귀퉁이에 그려 넣은 깨알 같은 그림은 역설적으로 가난 속에서 피어나 더 애틋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준다. 이중섭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다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 처가로 보냈다. 1956년 마흔 한 살의 나이에 신원미상으로 병원에서 홀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5년여의 이산(離散) 동안 그가 현해탄을 건너 가족을 만난 건 단 한번뿐이었다.

작품이 몇 점 남아 있지 않아 베일에 가려졌던 이중섭 초기 화풍은 연애시절 이중섭이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에게 보낸 엽서에서 엿볼 수 있다. 작은 엽서에 강하게 구사한 펜 선에서 훗날 유화에 그린 남성적 필치의 서예풍 선이 연상된다. 편지에는 종종 ‘발가락 군’이라는 애칭이 등장하는데, 체형에 비해 발이 유달리 크고 못생겼다 해서 그가 아내에게 붙여준 것이다. 발가락이 아스파라거스를 닮았다 해서 ‘아스파라거스 군’으로도 부르는데, 낯간지러운 밀어는 결혼 후에도 이어진다. “내 가장 사랑하는 발가락 군을 마음껏 사랑하게 해주시오” “나의 발가락 군에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정한 뽀뽀를 보내오.” 아내에게 닿지 못해 애달픈 사내의 고백이 절절하다.

가족과 헤어진 1952년 말 또는 그 이듬해의 편지는 더 안쓰럽다. 아들이 감기에 걸렸다는 소식에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아비는 다정한 안부와 함께 정성스레 복숭아를 그려 넣은 편지를 띄우고, 차오르는 그리움을 견디지 못할 때는 배를 타고 가족에게 향하는 모습을 그렸다. 똑같은 그림 편지가 두 장씩 전시되어 있기도 한데 두 아들 태현, 태성에게 똑같은 그림을 그린 각기 다른 편지로 안부를 물은 것이다.

편지에는 꼭 함께 살자, 아빠가 데리러 가겠다는 약속이 반복해서 나온다. 가족을 향한 절절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안부 편지들은 가난뱅이 가장의 애처로운 처지와 겹쳐 보는 이를 숙연하게 한다. 여운이 오래 가는 전시로 시작한 지 2주 만에 벌써 6,000여명이 다녀갔다.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제주도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 등에서 이중섭의 삶과 작품세계를 기리는 다양한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일본에서는 최근 이중섭과 아내 마사코의 사랑을 그린 다큐 영화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이 개봉했는데 현대화랑의 전시장 한 켠에서 그 축약본을 상영하고 있다. 전시는 내달 22일까지. (02)2287-3591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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