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녀자 ⑤·끝] 김자인

※ 스포츠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올림픽은 여성에게 참가는커녕 관전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현대의 모든 프로스포츠 역시 남성 위주로 발달해 왔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늘어나면서 스포츠계도 변하기 시작했지만 신체적 특성에서 오는 참여의 한계는 늘 존재했다. 그랬기에 그 영역에 도전하는 여성들은 늘 편견과 먼저 싸워야 했다. 하지만 세상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이겨내고 남성성 짙은 종목에서 당당하게 활약 중인 이들도 있다. 그녀들은 중독된 영역에서 고독하지만 지독하게 달려 새로운 길을 쓰려한다. 스포츠계 '독한 녀자'들의 의미 있는 도전기를 5회에 걸쳐 전한다. '강한 여자'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녀자'에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았다. -편집자주-

시리즈 다시보기☞ ①송가연 ②권봄이 ③김예지 ④지소연 ⑤김자인

지난해 9월 15일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세계선수권 여자부 결선이 열린 스페인 히혼 팔라시오 데 데포르테스 체육관. 전 세계에서 온 수천 명의 관중들의 시선이 한 사람의 리드미컬한 몸짓에 집중됐다. 그 곳에선 키 153cm의 가냘픈 체구를 지닌 동양의 클라이머가 그날 단 한 명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던 정상에 도전하고 있었다. 자신만의 길로 막힘 없이 암벽을 오른 그녀는 등반을 시작한 지 6분 44초 만에 정상을 정복했다. 가장 높은 곳에서 활짝 웃고 있던 스마일 모양의 홀드(암벽을 올라갈 때 손으로 잡거나 발로 디딜 수 있는 곳)와 마주한 그녀는 미소보다 눈물을 먼저 보인 채 땅으로 내려왔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그녀를 향해 박수와 환호를 터뜨렸다. ‘암벽 여제’ 김자인 (27·올댓스포츠)은 벅차 오르는 감격을 주체하지 못한 듯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등반을 중계하던 중계진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소리질렀다. “굉장한 강철 에너지입니다. 의심의 여지 없는 등반이었습니다!”

악바리 그녀, 마지막 남은 고지를 찍다

지난 9일 김자인의 두 오빠 김자하(31), 김자비(28)씨가 함께 운영하는 ‘더 자스’클라이밍 짐(The Jas climbing gym)에서 만난 김자인은 다짜고짜 ‘그 땐 왜 그렇게 울기만 했느냐’고 첫 질문을 꺼내자 아직도 그 때의 감흥에 다시 한 번 젖은 듯 밝게 웃었다. “클라이밍을 시작한 뒤부터 가장 꿈꿔왔던 순간이었다”며 입을 연 김자인은 “성인부에 처음 참가한 2005년에 34위에 그쳤다. 그 뒤로 끊임 없이 도전했고, 정상에 근접했지만 나에게만큼은 최고의 자리가 허락되지 않았다. 마치 미완의 숙제와도 같았다”고 말했다.

클라이밍 선수 김자인. 김주영기자 will@hk.co.kr

이렇듯 세계랭킹 1위 김자인에게 이날 우승의 의미는 더 남달랐다. 월드컵 대회를 포함해 빼곡한 우승 이력을 지닌 그녀의 이름 앞엔 늘 세계 최강자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스포츠 클라이밍에서 최고의 권위와 대회 규모를 자랑하는 IFSC 세계선수권 리드(Lead·15m 인공암벽을 8분 내 누가 더 높이 오르는지 겨룸) 종목에서는 유달리 불운이 계속됐었다. 2005년부터 여섯 차례 정상에 도전했지만, 준우승만 세 차례를 기록했다. 특히 종합우승을 차지했던 2012년 대회에서마저도 리드 종목은 오스트리아의 앙겔라 아이터(29)에게 정상을 내줬다.

이 날의 우승으로 마지막 남은 숙제를 풀어낸 김자인은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목표는 다 이뤘다고 생각한다”며 또 한 번 환하게 웃었다. 실제로 그녀가 더 이상 탐낼 1등 자리가 없다. 지난해 정상을 찍은 리드 종목 외에도 볼더링(Bouldering·5m 이내의 4∼5개 인공암벽 중 완등 숫자를 겨룸), 스피드(Speed·10m나 15m 암벽을 누가 빨리 올라가는지를 겨룸)모든 부문에서 정상을 맛봤다. 세계적으로 세 종목에 모두 능한 선수는 거의 없다.

'205mm 등반화'와 '지문 없는 손'

당시 김자인의 몸 상태는 온전치 않았다. 지난해 4월 경기 도중 무릎 전방 십자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은 뒤 이후 재활과 치료를 병행하던 시기였다. 김자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 “십자 인대가 파열된 상태였지만 주변 조직이나 근육들이 잘 감싸주고 있었기에 출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지만 그의 오빠이자 트레이너인 김자하 씨는 “대회를 앞두고 지독하게 훈련했다. 십자인대 대신 다른 부위를 활용해 암벽을 타는 노력형 악바리”라고 귀띔했다.

김자인은 약 두 달 전인 지난해 11월 오스트리아에서 십자 인대 수술을 받았다. 그대로 뒀을 경우 연골이 닳아 파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휴식을 충분히 취해야 하는 시기임에도 김자인은 다시 암벽화에 발을 욱여 넣었다.

김주영기자 will@hk.co.kr

김자하 씨는 “조금 더 재활을 하다 훈련을 했으면 좋겠지만, 쉬라고 말해도 잘 듣지 않는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자인은 스스로도 “악바리 기질이 좀 있다”며 웃었다. 특히 대회를 앞둔 시점에는 44~45kg이던 몸무게를 41kg까지 줄여가며 훈련한다. 수도 없이 반복하는 홀드 연습 탓에 열 손가락의 지문도 사라질 정도다. 그녀가 사용하는 암벽화의 사이즈는 205mm. 평소 발 사이즈는 230mm지만, 악력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작은 신발을 사용한다고 했다. 아프지 않냐고 묻자 “새 암벽화를 신을 때가 아프다”고 했다. 구부러진 발이 펴지지 않는 상황이라 그 발에 맞추는 기간 동안 적잖은 고통을 참아내곤 했다.

그녀의 무기, 머리와 가슴

그녀의 키 153cm. 이는 결코 클라이밍을 하기에 유리한 신체 조건은 아니었다. 김자인 역시 “다른 사람들은 쉽게 잡을 수 있는데 난 아무리 손을 뻗어도 안 닿으니 답답할 때가 많았다”며 한동안 작은 키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김자인은 서서히 클라이밍이 결코 육체만으로 하는 운동은 아니란 걸 깨달아 갔다. 그러면서 신체적 단점을 장점으로 극복하는 법도 깨우쳐나갔다. 유연성과 근력을 키우니 작은 몸은 좁고 복잡한 구간에서 민첩한 동작으로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최고의 무기가 됐다. 유럽 선수들이 거칠게 암벽을 오를 때의 모습과 비교하면 훨씬 조화롭고 유려한 동작이 나온다. ‘암벽 위의 발레리나’라는 별명도 그래서 붙었다.

김주영기자 will@hk.co.kr

열정 역시 그녀의 절대적인 무기였다. 사실 김자인은 날 때부터 산악인이었다. 산악 동호회에서 만나 연을 맺은 그녀의 부모님은 자일(Seil)의 ‘자’자와 북한산 인수봉의 ‘인’자를 따 막내딸 이름을 ‘자인’이라 지었다. 가족의 면면 역시 화려하다. 아버지는 고양시 산악연맹 부회장, 어머니는 클라이밍 1급 공인 심판이고, 두 오빠 역시 클라이밍 선수 출신이다. 대회 나가는 오빠들이 비행기 타는 게 부러워 12살 때부터 시작한 클라이밍도 어느새 15년 차. 이런 저런 삶의 스트레스마저도 클라이밍을 통해 풀어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정상에서 본 또 다른 산

정상에 오르면 세상을 더 넓게, 더 멀리 볼 수 있듯 수도 없이 정상에 오른 김자인은 자신의 인생도 더 넓게, 더 멀리 바라보고 설계해 가는 중이다. 김자인은 지난해 세계선수권 출전을 위해 모인 선수들의 투표를 통해 아시아 유일의 IFSC 선수위원에 선출됐다. 이를 통해 김자인은 세계대회에 대한 규정 관련 발의, 도핑 근절 캠페인 IFSC의 사회적 환경적 책임 프로그램 홍보 등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한다. 평소 스포츠 클라이밍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뜻을 꾸준히 밝혀왔던 김자인에겐 더 없이 좋은 기회다.

김주영기자 will@hk.co.kr

또 하나, 김자인은 먼 미래를 바라보며 석사 과정도 밟고 있다. 모교인 고려대 대학원에서 스포츠심리학을 배워 온 김자인은 어느새 졸업시험까지 모두 통과하고 논문이라는 마지막 관문만을 앞두고 있다. 선수생활만으로도 벅찰 수 있었을 그녀는 왜 석사과정까지 생각했을까. “처음엔 너무 힘들어 내가 이걸 왜 했을까 싶었다”며 천진하게 웃던 그녀의 얼굴엔 이내 진지함이 가득했다. 김자인은 “선수 생활이 끝난 뒤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미래에 걷게 될 길의 폭을 넓히는 과정임엔 분명하다”고 말했다. 생각해둔 논문 주제를 물었다. “구체적이진 않지만, 클라이밍을 통한 몰입과 관련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1등’만큼 소중한 ‘완등’의 가치

선수로선 이룰 수 있는 걸 다 이뤘다는 그녀에게 ‘이제 뭘 위해 암벽을 탈 거냐’고 물었다.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1등을 다 이뤘으니 완등의 기쁨만을 위해 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간 감춰왔던 속내를 털어놨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이전까지 김자인을 괴롭혔던 건 1등을 못한 데 대한 자괴감이 아닌 완전한 1등이 되길 바라는 주변의 시선이었다고. 최정상에 오르고서야 속 편히 털어놓을 수 있던 말이었다.

김주영기자 will@hk.co.kr

“세계 1등도 물론 좋다. 하지만 그 목표만 바라보며 산을 탄 건 아니었다”던 김자인은 “클라이밍은 ‘1등’보단 ‘완등’에서 오는 기쁨이 더 큰 스포츠”라며 “지난해 세계선수권을 마친 뒤 수술 전까지 매일 하던 것처럼 열심히 암벽을 올랐다”고 말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녀는“굳이 더 큰 말하자면 클라이밍의 즐거움을 더 많이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명동 한복판의 고층 빌딩을 완등한 것도, 맨손으로 농구 골대 위에 올라 덩크슛을 했던 것도 이 같은 목표 때문이었다.

인터뷰 시작 전 서너명 만이 몸을 풀던 ‘더 자스 클라이밍 짐’에는 1시간여의 인터뷰가 끝나자 10여 명의 회원이 땀 흘리고 있었다. 이 중에는 김자인의 활약에 매료돼 제주도에서 올라와 ‘완등’의 기쁨을 배우는 이도 있었다. 이처럼 김자인의 진짜 꿈은 알게 모르게, 서서히, 단풍 물 들 듯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문숙희 인턴기자 (이화여대 정치외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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