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구입한 일본어 회화책에 ‘사잔’이라는 일본 밴드의 공연을 소재로 한 내용이 소개된 것을 보고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일본어 회화책에까지 등장하나 싶어 검색했다가 엄청난 내공을 가진 밴드여서 한번 더 놀랐던 기억이 있다.

‘사잔’은 ‘서던 올 스타즈’(Southern All Stars)의 애칭으로, 영어로 남쪽을 뜻하는 서던의 일본식 발음에서 따온 것이다. 1978년 ‘마음대로 신밧드’라는 싱글 앨범으로 데뷔한 이후 4,800만장의 음반을 판매, 지금까지도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밴드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으로 따지면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과 맞먹는 위상을 가졌다고 보면 되겠다.

사잔을 언급하면서 밴드의 리더 구와다 게이스케를 빼놓을 수 없다. 올해 한국 나이로 60세가 되는 그는 사잔의 정신적 지주이자 사잔의 인기를 주도한 인물이다. 36년간 일본 대중음악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공로로 지난 해 일본 정부가 문화 예술인에게 수여하는 자수포장(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구와다가 이끄는 사잔의 음악적 색깔은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 경쾌한 리듬으로 요약할 수 있다. 수위를 넘나드는 야한 성적 농담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가사도 빼놓을 수 없다.

오키나와의 옛 지명을 사용한 ‘평화의 류큐’에서는 미군기지 문제로 피해를 입고 있는 오키나와 주민을 다뤘고, 지난 해 발표한 ‘평화와 하이라이트’는 일본의 근대사 교육을 비판했다. 구와다는 한국을 비롯한 타민족 문화에도 개방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1994년 발표한 ‘LOVE KOREA’를 통해 한국에 대한 무한애정을 보내는 가 하면, 인도네시아어로 랩을 부른 노래도 있다.

구와다의 이런 행보는 일본내 보수 우익 세력들에게 눈엣가시였다. 이들은 구와다가 오사카의 한국식당을 찾아, 자신의 히트곡 ‘LOVE KOREA’와 한국 민요 ‘아리랑’을 부르는 TV장면을 근거로, “구와다가 일본인이라면 이런 짓을 할 리가 없다”며 “한국인임을 숨기고 연예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음해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구와다가 지난 해 연말 사잔의 공연을 찾은 아베 신조 총리 앞에서 ‘집단적 자위권’ 용인을 풍자한 노래를 부르자 우익의 반발은 극에 달했고, 사사건건 구와다의 행동에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구와다가 지난 해 연말 NHK의 홍백가합전에 출전, 콧수염을 만지는 흉내를 낸 것을 두고 “아베 총리를 독재자 히틀러에 빗댔다”거나, “이날 부른 노래에 집단적 자위권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았다”며 공세에 나섰다.

급기야 최근 가진 공연에서 지난 해 받은 자수포장을 바지 뒷주머니에서 꺼내 경매에 부치는 퍼포먼스를 가진 것을 두고 우익 세력은 “천황(일왕의 일본식 표현)이 수여하는 훈장으로 불경스런 행동을 했다”며 거세게 몰아 세웠다. “공연의 재미를 위한 것일 뿐, 별 다른 의도가 없었다”는 구와다의 해명에도 불구, 우익세력들은 구와다의 소속사를 찾아 연일 항의 시위를 벌였다.

구와다가 평소 공연에서 관중들에게 물을 뿌리거나, 외설스러운 표현 등을 펼쳐온 터라 “그의 행위에 나쁜 의도는 없을 것”이라며 옹호 세력도 적지 않다. 하지만 우익측의 반발이 워낙 거세자 소속사측은 결국 15일 사과문을 발표했고, 구와다도 17일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퍼포먼스가 경솔했다며 사과했다.

이번 사건이 평소 패러디를 공연 소재로 자주 활용하는 구와다의 향후 표현활동에 제약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쿄신문은 “의연함이 사라진 일본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우려했다. NHK가 최근 만담콤비 ‘폭소문제’의 정치 소재코미디를 자체 검열한 것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반성보다는 잘못된 사실 수정에 집착하는 일본 정부의 행태도 비판을 참지 못하고 포용력이 사라지는 일본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아베 총리가 패전 70주년을 맞아 발표한 담화에 과거사 반성이 얼마나 담길 지를 두고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관심이 높다. 반성에 인색해지고 의연함이 사라진 일본의 현실이 담화에 반영되지 않아야 한다는 바람을 일본은 알아야 한다.

한창만 도쿄 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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