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욱의 재즈너나들이] 바이올린 주자 조진주

구름 낀 하늘에 문득 달빛 비치듯 했다. 짧았던 만큼이나 강렬했다. 바이올린 주자 조진주(27)가 자신의 클래식 리사이틀에서 재즈적 본능을 선보인 것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필연이었을까 하는 데서 나의 문제 의식은 싹텄다. 올해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이 바이올리니스트는 영예의 명칭이 담보하는 연주력에 얹어 또 다른 지평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한국에서도 나이젤 케네디 같은 클래식 바이올린 주자, 즉 클래식으로 정점을 찍었으되 재즈라는 또 다른 가능성을 좇고 있는 바이올린 주자가 나올 수 있을까 라는 오래된 질문이 선명한 답을 얻은 순간이었다. 8일 금호아트센터에서 ‘시작’이란 제하로 펼친 신년 음악회에서, 젊은 예술가의의 패기 정도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분량의 진실을 보았다.

거쉰의 오페라 ‘포기 앤 베스’에 나오는 아리아 중 ‘Bess, You Is My Woman’등 4편을 피아노와의 듀엣 곡으로 선보인 것이다. 물론 대가들의 작품이 위주인 전형적 클래식 무대였으나 그녀는 바이올린의 대가 야샤 하이페츠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버전으로 옮겨둔 작품을 연주했다. 국내 무대에서는 감상할 기회가 좀체 없던 곡들이라 신선하기까지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2004년 최고의 국제 바이올린 경연이라는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쿨, 2006년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쿨 등 유수의 격전지에서 우승한 영광의 기록은 그녀의 정통성을 입증해 주기에 족하다. 당시 몬트리올의 신문 타임스아저스는 “부정할 수 없는 카리스마와 깊이, 깊은 서정성과 가슴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움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라는 감각적인 평으로 방점을 찍었던 터다.

미국에서 13년째 살고 있는 그녀는 1년 만에 다시 찾은 서울 무대에서 왜 ‘하드(hard)’한 클래식 작품들 속에 거쉰이라는 경계인의 작품을 넣었을까? “당대에 새 생각을 불어넣은, 여전히 재미 있는 작곡가죠. 클래식 쪽에서는 코다이, 바르톡처럼 민속 음악을 클래식 작품 속으로 갖고 온 작곡가로 평가되지만 제 입장에서는 ‘노래를 하는 작곡가’여서 각별한 것 같아요.”또 하나, 개인적으로는 특별히 재즈라는 관점에서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대선배 하이페츠가 재즈를 위해 편곡 해준 작품이라는 의미가 크다.

거쉰이라면 미국인들이 경의와 관심을 어떤 식으로든 표하려 애쓰는 토종 작곡가다. “특히 ‘Summer Time’을 할 때는 아예 난리예요.” 미국 살면서 그녀는 어디를 가나 재즈를 들어야 했던 터라 거쉰이 갖는 문화적 함의를 누구보다 잘 안다. 특히 그녀가 사는 클리블랜드는 워낙 문화 도시인데다 미대륙에서의 재즈 분포도로 봤을 때는 중간 지점인 덕에, 동부의 재즈와 서부의 재즈가 골고루 혼합돼 존재하는 곳이다.

사실 미국으로 건너가기 훨씬 전부터 재즈는 일상적 풍경이었다. “초중등 학교부터 본능적으로 재즈로 나아갔죠. 당시 재즈에 많은 배려를 한 MBC FM의 프로‘이소라의 음악 도시’의 광팬이었고….” 그러나 클래식적 기초가 탄탄했던 만큼, 재즈를 허투루 넘보지는 않았다. “사실 본격 재즈는 엄두를 못 냈어요. 그러다 작년 독일 크론버그에서 열렸던 바이올린 마스터클래스에서 토론자로 참여한 게 직접적 계기였죠.” 처음으로 즉흥 연주에 대해 진지하게 배웠고, 실제로 즉흥 연주를 해봤다. “그 이전까지는 장난처럼 (즉흥 연주를)하긴 했죠. 어렵고 복잡한 여러 재즈 스타일을 즉흥이란 관점에서 풀게 된 계기이기도 했고….” 이후 각종 페스티벌에 참가할 때면 재즈적인 연주를 쭉 시도하게 됐다. 이번 귀국 무대 또한 그 범주다.

그녀가 관심을 두고 있는 ‘즉흥’이란 분명 클래식적 테마는 아니다. 클래식의 관점으로 봤을 때 즉흥이란 어떤 것인지 그녀에게서 들어보자. “(재즈적)즉흥이란 테마 선율이라는 큰 틀을 벗어나지 않지만 (클래식적)변주란 쇤베르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변주곡’에서 보듯 무조주의적 접근 등 매우 다양한 편차를 보이죠.” 다시 말해 재즈적 즉흥은 클래식이라는 패러다임 속의 음악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진주에게 본격 재즈를 시도하겠느냐는 질문을 했을 때, “할지 말지 모르겠으나 분명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며 주저의 모습을 보인 것은 본질적으로 클래식 뮤지션인 그녀로서는 매우 논리적인 답변이었던 것이다.

“즉흥이란, 제대로 배운다는 문제라기보다는 큰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라 주법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전제되어야 해요. 앞으로 아마 10년쯤 걸려야겠죠?” 깊고 더디게 흐르는, 문화의 시간은 오래 전 내재되어 있었다..

속내를 잠시 보자. 오래 전부터 집시 재즈 바이올린 주자 로비 라카토시를 그녀는 동경해 왔다. 초등학교 때 TV에서 그의 연주와 조우한 뒤 세뱃돈을 모아 내한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다. “당시 모차르트를 붙들고 있던 내게 라카토시의 자유는 매우 충격적이었어요.”.

사실 재즈가 태어난 미국에서 바이올린의 역할은 우렁찬 금관악기보다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물론 재즈 악기로서. 그 바이올린이 재즈 악기로 대접 받은 곳은 유럽쪽이었다. 유럽의 아웃사이더였던 집시들은 재즈를 한번 접하고는 자유로운 리듬감, 눈부신 즉흥, 서구 음악 체계에서는 없던 블루노트를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등의 재즈만의 음악적 관행에 매료되어 일찍이 그들의 자산으로 편입했던 것이다.

한참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어린 조진주에게로 온 집시 음악은 어떤 변화를 주었을까? “솔직히 말해 (그런 연주를 할)엄두를 못 냈어요. 지금도 진정한 재즈는 사실 엄두가 안 나요. 막연한 동경의 대상으로 흉내만 내는 것이지…. 뭐라 콕 집어 이야기하기보다는, 그 세계가 그냥 좋았어요. 거기에도 나름의 규칙은 있겠지만 자유로워 보이는 뭔가가….”

조진주의 힘은 자신이 클래식 뮤지션임을 의식하고 그를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대전제에서 나온다. 무조건 재즈가 좋다는 식이 아니다.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과연 현실적인가 보다. 그런 그녀가 말하는 자유란 무엇일까? “흔한 감정은 아니에요. 예고 없이 찾아드는, 몰입의 순간 느끼는….” 분방하다고 자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풀려나는 듯한 느낌이랄까요?”여기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오해하기 십상이므로. “놀라울 정도의 몰입이죠.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의 3악장을 연주할 때와 같은, 감성적으로 깊이 흡인되는 데서 유발되는 정신 상태라고나 할까요?”

이제 그녀는 자신의 서사를 찾아 나섰다. 바로 그 작업에서 재즈의 역할은 결정적이다.“‘비운의 여인들’ 같은 주제로 하우스콘서트 형식의 공연을 갖고 싶어요, 미국의 지방 콘서트에서는 종종 했는데, 테마로 엮는 것 말이에요. 스토리텔링이 되니까. 금호의 연주회에 집중하고 싶은 것도 크게 보면 그 이유죠."

하나의 필연이, 정점을 향해 그렇게 완성돼 가고 있다.

(인터뷰 후 조진주는 기자의 카톡으로 유튜브 링크를 하나 걸어주었다. 즉흥 피아니스트 박창수의 유명한 하콘(하우스콘서트)331회에 출연 무대였다. 2014년 ‘비운의 여인들’이라는 제하로 펼쳐졌던 그 자리에서 조진주는 마치 옛날부터 재즈 바이올린 주자였던 것처럼 능란한 솜씨로 ‘ I’m A Fool To Want You ’ 등 빌리 할러데이의 명곡을 들려주었다. 세계적 클래식 콘서트의 우승자가 그에 걸맞는 현란한 테크닉으로 클래식의 또 다른 세계를 펼치고 있었다. 최고의 테크닉과 감성으로 재즈를 연주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는 기분으로 링크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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