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임시조치 제도 악용 논란

병원이 "명예훼손 침해" 주장하며 게시 중단 요청하자 포털에서 차단

임시조치로 5년간 82만 건 삭제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수단 전락

#1 A씨는 최근 의료진이 수술실에서 음식을 먹고 생일파티를 하는 사진이 유포돼 비난을 받은 서울 강남 J성형외과 기사를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했다. 그는 며칠 후 블로그에서 이 기사가 삭제된 것을 발견했다. 기사가 있었던 곳에는 ‘명예훼손 및 기타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하는 병원으로부터 게시중단 요청이 접수돼 삭제 조치했다’는 안내문만 남아 있었다.

#2 B씨는 언론에서 보도한 통계를 인용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실패했다는 취지의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B씨의 게시물은 최근 삭제됐다. 이 전 대통령이 다니는 교회 관계자가 “우리 교회 출신에 대해 과장ㆍ왜곡하고 있는 게시물로 인해 이미지가 실추되고 명예가 훼손됐다”며 게시중단 요청을 한 결과였다.

근거 없이 타인을 비방하는 인터넷 게시물을 신속하게 차단하는 임시조치 제도가 남용돼 손쉬운 입막음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상의 명예훼손이나 비방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동시에 표현의 자유도 보장하기 위해서는 임시조치된 글에 대한 ‘복원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권리침해 신고를 받은 포털사이트 등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즉시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권리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울 때도 게시물을 임시 차단해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명백하게 잘못을 저질러 이슈가 되거나 공인이나 기업에 대한 비판 등 공익성을 가진 글조차 당사자들이 게시중단 요청만 하면 대중으로부터 손쉽게 차단되는 것이다. 하지만 게시자가 이런 ‘묻지마‘ 임시조치 요청에 대응하려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글에 위법성이 없다는 판단을 받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글 하나 때문에 방심위까지 가는 번거로움을 감내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임시조치 건수는 매년 증가 추세다. 13일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 따르면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취한 임시조치는 2008년 9만2,638건에서 2010년 14만5,112건, 2012년 23만167건으로 증가했다. 최근 5년간 게시물 82만여개가 삭제나 차단 조치를 당했다.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임시조치에 대한 이의제기권 신설, 온라인 명예훼손 분쟁조정위원회 신설 등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냈다. 하지만 게시중단 요청만 하면 임시조치를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포함되지 않았다. 인터넷 자유를 위한 사단법인 ‘오픈넷’은 임시조치 남발 관행에 제동을 걸기 위해 공익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임시조치의 취지를 살리면서 게시자의 권리도 보장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시조치를 철회하고 게시물을 복원할 수 있는 게시자의 복원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임시조치 신청자가 재차 삭제를 요구하면 법원 등 중립적인 기관의 판단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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