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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거부 그 후… "알바조차 얻기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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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거부 그 후… "알바조차 얻기 힘들어"

입력
2015.01.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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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동체에서 일하는 김씨, 식당 일·마트 행사 요원 등 경험

구직 활동하는 박씨, 가전공장 파견직 정리과정서 실직

대학 거부자들은 ‘알바 인생’을 살며 여전히 노골적인 학력 차별을 경험하고 있었다.
대학 거부자들은 ‘알바 인생’을 살며 여전히 노골적인 학력 차별을 경험하고 있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날 시험 응시 대신 ‘대학거부’를 선언했던 젊은이들이 있다. 고3이던 2008년 11월13일 교육부 앞에서 “공부하는 태엽인형이 아니라 사람답게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외친 김남미(25)씨도 그 중 하나다. 그는 “입시경쟁에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의 팔을 잠시나마 붙들고 왜 공부해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수능을 거부한 학생들은 매년 나타났다. 세상은 이들의 목소리를 주목했지만 그때뿐이었고, 한국 사회는 여전히 대학 서열화에 기반한 학벌 체제가 굳건하다.

7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김씨를 만났다. 대학 졸업장이 필요충분조건인 학력사회에서 ‘주변인’을 택한 대학 거부자들은 ‘알바 인생’을 살며 여전히 노골적인 학력 차별을 경험하고 있었다. 김씨는 “‘대학을 거부한다더니 어디 한 번 잘 사나 보자’는 세상의 시선에 멋지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나 우리 세상살이는 정해진 것처럼 팍팍했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현재 교육공동체 ‘나다’에서 청소년 강좌 기획을 맡고 있다. 이전에는 홍익대 주변 식당에서 음식을 날랐고, 마트 특판행사 요원으로도 일했다. 주 40시간 꼬박 일해도 월급은 100만원 남짓에 불과한,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선뜻 하기엔 망설여지는 그런 일자리였다. 그는 “지원자격을 대학생으로 제한해 아르바이트조차 진입장벽이 높았다. 대학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할 수 없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불확실한 일자리,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소수자로서의 고립감 등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모두가 모두를 힘들게 하는 제로섬 게임의 입시 경쟁사회와 학력(學歷)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풍토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1년 대학거부 선언에 동참했던 박지영(23ㆍ가명)씨는 현재 구직활동 중이다. 지난해 8월 근무하던 대기업 가전제품 제조공장이 파견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었다. 이전에도 박씨는 콜센터, 식당 서빙, 공장 생산직 등 ‘밑바닥 노동’을 해왔다.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학생들이 2014학년도 수능시험일인 7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입시거부선언을 발표하고 있다.이들은 '무한경쟁교육 반대' '권위적 주입식 교육 반대' '학생인권 보장' 등 투명가방끈 모임 8대 요구안과 함께 대학입시 거부를 선언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학생들이 2014학년도 수능시험일인 7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입시거부선언을 발표하고 있다.이들은 '무한경쟁교육 반대' '권위적 주입식 교육 반대' '학생인권 보장' 등 투명가방끈 모임 8대 요구안과 함께 대학입시 거부를 선언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함께 생산직으로 일했던 중년 여성 노동자가 “대학 졸업해도 취직하기 어려운데 차라리 대학 안 간 게 현명하다”고 칭찬하면서도 정작 자기 아들의 대학 입학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박씨는 “씁쓸했다”고 말했다. 업무를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데도 “사무직은 대졸자여야 한다”며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아예 배제한 중소기업의 학력차별에는 큰 상처도 받았다. 박씨는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설 곳이 점차 줄어드는 것에 대한 막막함과 두려움 역시 크다”고 말했다.

사회의 학력 차별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이들 대학 거부자들은 “그때로 되돌아가도 선택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시험을 위한 공부는 정작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가로 막았다”며 “다른 대학거부자들과 함께 주거협동조합을 만들어 경제적으로 서로 도우면서, 대학 진학에 목매는 현실에 계속 문제제기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는 본인의 경험을 담은 만화책을 내는 게 올해 목표다. 그는 “많은 이들이 겪는 고민ㆍ불안ㆍ희망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 교육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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