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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고객님, 댁은 왕이 아니십니다"

입력
2015.01.0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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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에게 상한 음식을 던져준 압구정동 아파트의 할머니도 (왼쪽 아래 작은 사진), 주차요원의 무릎을 꿇린 백화점 VIP 모녀도 (오른쪽 위 작은 사진), 땅콩회항의 히로인 조현아씨도 모두 촌스러운 사람들이다.
경비원에게 상한 음식을 던져준 압구정동 아파트의 할머니도 (왼쪽 아래 작은 사진), 주차요원의 무릎을 꿇린 백화점 VIP 모녀도 (오른쪽 위 작은 사진), 땅콩회항의 히로인 조현아씨도 모두 촌스러운 사람들이다.

두 달 전 학교비정규직노조 파업 때의 일이다. 공립유치원에 다니는 큰 아이의 급식실 조리원들이 하루간 파업에 들어가니 도시락을 싸서 보내달라는 통신문이 나왔다. 유치원에서 빵과 우유를 나눠주기는 하지만 한 끼 식사로는 부족하니까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게끔 집에서 준비해달라는 것이었다. 담임선생님은 네이버에 개설된 학급 밴드를 통해 “도시락을 싸올 수 있는 친구들은 좀 넉넉히 싸와 형편이 여의치 않은 아이들과 나눠먹으면 좋겠다”면서 자신도 푸짐하게 준비해 아이들과 특별한 기분을 내보겠다고 공지했다. 한번도 김밥 재료들이 정중앙에 위치하게 말아본 적이 없는 형편없는 솜씨이건만, 나 역시 한 보따리 싸서 보내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던 것도 잠시. 나는 그 밑에 달린 댓글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파업을 하더라도 애들 밥은 줘가면서 했으면 좋겠다는 불만, 도시락업체와 김밥 체인점이 그렇게 많은데 애들 배고프게 빵과 우유가 웬 말이냐는 항의가 담임교사에게 빗발쳤다. 급식실 조리원이 밥을 하면서 파업을 하면 그게 무슨 파업이며, 하루쯤 도시락 싸는 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지만, 선생님마저 “어머님들 심정 십분 이해한다”며 어르고 달래는 어리둥절한 광경이 펼쳐졌다. 함께 아이를 키워가는 동반자적 관계 같은 것은 거기에 없었다. 그들은 다만 유치원의 고객이었고, 유치원의 서비스가 엉망이었으므로 항의는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가 고객과 고객센터 직원의 관계로 치환돼버린 현실을 목격한 나는 그저 씁쓸한 기분으로, 역시나 재료들이 한쪽으로 치우쳐버린 김밥을 찬합 가득 쌌을 뿐이다.

그간 한국사회의 제반 관계는 가족을 원형으로 하는 유사 가족체제였다. 학교 선배는 오빠고, 윗집 아이엄마는 언니며, 육아 도우미는 이모였다. 유교적 가족질서를 무한히 확장해나가는 한국 사회의 인간관계에 갑갑함을 느끼며 오빠를 선배로, 언니를 ○○엄마로, 이모를 아주머니로 부르는 대신 갑절로 깍듯하고 상냥하려 애써왔다. 그런데 이 모든 기성체제를 무력화하는 가공할 형태의 새로운 관계 원형이 세계를 석권했다. 이름하여 ‘고객주의’. 돈 내면 고객이고, 고객은 왕이다. 돈으로 매개되지 않는 관계가 거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음만 먹으면 ‘갑질’할 곳은 도처에 널렸다.

내가 지불하는 돈은 내가 제공받는 재화 및 용역과 정확한 등가가치를 이룬다. 그 가격이 적절하게 책정됐든 아니든, 나는 화폐 지불을 통해 재화와 용역이라는 상품만을 구매할 뿐, 판매자의 인격까지 사는 것은 아니다.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인간적인 거래 형식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상호간의 호의와 호혜에 기반해야 한다. 친절이라는 것은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개인과 개인이 만나 “나는 인간이라는 종을 신뢰한다” “나는 당신이 이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서로간에’ 전달하는 일이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이 거북한 것은 이 일방적이고도 기계적인 언설이 발화자의 인격과 주체성을 말살했으므로 한낱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친절은 단지 허위와 허식인 것이 아니라 위험과 악의가 잠복해 있는 이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더 넓은 안전지대를 확보하기 위해 인류가 개발해낸 유구하고도 세련된 생활양식이다. 나는 내 발을 밟고 놀란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는 여인에게서, 아이를 위해 미지근한 물로 핫초코를 탔다는 카페 직원에게서, 계단에 얼음이 얼었다며 조심하라는 경비원 아저씨에게서 세계의 온기를 느꼈다. 그들에게 화답하며 나라는 인간이 이 낯선 세계에서 호의와 선의에 둘러싸여 있다는 확신에 가까운 감정을 얻었다.

경비원에게 상한 음식을 던져준 압구정동 아파트의 할머니도, 주차요원의 무릎을 꿇린 백화점 VIP 모녀도, 땅콩회항의 히로인 조현아씨도 모두 촌스러운 사람들이다. 세계가 진심으로 자신을 환대한다고, 기꺼워한다고 느껴본 적이 아마도 없을 것이다. 촌스러운 것도 지나치면 사악한 것이 된다. 비유와 직설도 구분 못하는 이들을 위해 분명히 말하자면, 고객은 왕이 아니다. 너도, 나도, 누구도 왕이 아니다.

박선영 문화부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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