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22. 남자의 선택, 소망과 현실 사이

네버엔딩 스토리. 그러니까,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아이 키우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것은 그 일에 정답도, 왕도도 없다는 이야기다.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가진 사람들이다 보니 육아나 교육 문제 이야기는 자연스럽다.

여기에 더해 육아휴직자가 하나 껴있다 보니 이 생활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진다. 그리고 적지 않은 자리에서 비슷한 질문 하나를 받는다.‘왜, 어떻게 하다가 육아휴직을 하게 됐느냐.’

어떻게 보면 좀 고약해 보이는 이 질문을 던지는 이들은 ‘아내에게 떠밀려 마지못해 휴직을 하게 됐다’는 류의 답을 기대하는 것 같다. 또 어떤 이들은 남다른 부정(父情)의 소유자일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 나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물론 아내도 희망한 아빠의 육아휴직이지만 이 아빠는 갈망했을 정도였고, 분만실에서 탯줄을 자르고 난 뒤 눈물은커녕 허탈해 했으며, 생후 3개월 정도까지의 아들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들은 자고 일어나면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찾는데, 이는 전적으로 아들과 함께한 시간의 힘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부정이 남달라 육아휴직을 했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갈매기를 보기 위해 찾은 인천 영종도-장봉도 선상에서 아들과 함께. 쌀쌀한 날씨였지만 과자로 갈매기를 불러모아 질리도록 구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아들 기억에 각인된 것은 갈매기가 아니라, 짭조름한 과자가 아니었을까. 갈매기 유인용 과자 절반은 아들이 먹어 치웠다.

육아휴직 결정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제일 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본가와 처가가 모두 멀다. 아내 복직에 맞춰 사람을 쓰거나 어린이집에 맡겨야 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을 ‘채용’하는 과정을 동료에게서 적나라하게 들은 나는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면접 날짜를 잡고 신원확인, 보증인을 세워서 오라, 가라 하며 ‘이모’를 뽑은 다음에 CCTV 설치 등에 대한 근로조건 계약서를 쓸 강단이 없었고,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어린이집 사고 소식에 말문이 트일 때 까지는 직접 키우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이 두 가지만 해도 그럴싸하지만 육아휴직을 하게 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내 자신을 위해서였다. 내가 살기 위해 나는 육아휴직이 필요했다. 아들을 봐줄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는 회사로부터 육아휴직을 받아내기 위한 논리로, 아들을 안전하게 키우기 위해 육아휴직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집안 어른들을 비롯 이 아빠의 육아휴직을 탐탁히 여기지 않는 시선에 대한 일종의 방어기제 혹은 변명이었을 뿐이었다.

아들이 세상에 나왔을 때 회사 동료 선후배, 지인들에게 대략 이런 내용의 문자메시지로 간략하게 신고했다.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제 몫은 해내는 놈으로 키우겠다.’집에서 제대로 된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해 방황하는 어린 나무들을 봤고, 더러는 주변 나무에 병을 옮기거나 숲에 해를 끼치는 경우를 허다하게 목격했다. 나는 내가 심은 나무가 숲에 불을 내면 이 아빠는 더 이상 그 숲에서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아들을 그렇게 키우겠노라는 다짐은 나의 생존욕구와도 닿아 있었던 셈이다.

한 선배는 농담조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뭣 하러 애를 낳아. 그냥 둘이서 재미있게 살지.” 뒤에 들리는 이야기를 조합하니 자신보다 훌쩍 커버린 아들이 있는데, 대화도 없고 그 아들은 아버지 말은 전혀 들질 않는다. 이런 저런 일로 연일 부모 속만 썩이는데 철천지 원수와 한 집에서 사는 기분이 그와 같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살아있는 동안은 부대끼며 살아야 할 앞날을 생각하면 괴롭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생물학적인 아들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존재라고도 했다.

장년에도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고자 한다면, 자식들과 어우러져 풍성한 노년을 보내고자 한다면 그 자식들이 어릴 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라는 게 육아 선배들의 한결같은 이야기. 이 아빠가 이러고 있는 것은 어쩌면, 지금으로선 진위여부를 확인할 길 없는, 그 이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갈매기 구경을 마치고 운 좋게 만난 을왕리해수욕장의 일몰. 아들은 지는 해를 달이라고 주장했다. “따알 따알 딸!”

비단 그 선배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오죽했으면 ‘자식의 효도는 딱 다섯살까지, 그 후는 기대하지 마라’는 말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칠까. 수명은 계속 늘어나는데,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 한 우리 세대는 어쩌면 100세까지 숨을 쉬어야 할지 모르는데 그 긴 시간을 피붙이들과 어울리는 즐거움 없이 산다? 난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이 아빠의 육아휴직은 보험이다. ‘그래도 어릴 때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 커서도 대화가 잘 된다. 아빠랑 아들이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는 말에 속아서(?) 든 생명보험 같은.

그렇지만 훗날 이 말이 거짓말로 탄로나더라도, 성장한 아들과 친밀하지 않더라도 누굴 탓하진 않을 것이다. 육아휴직 덕으로 아들과의 추억을 더 많이 쌓았을 것이므로. 그 추억이 일방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훗날 가장으로서의 힘든 시간들을 견디게 해줄 것이므로.

나는 내가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 충전을 위해 육아휴직을 선택했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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