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서 연행 온갖 고초, 위안부 피해 할머니·시민들 만행 규탄

매달 일본 대사관 앞 화요집회 "과거사 외면하는 日 사죄하라"

일본에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외침은 유럽에서도 메아리친다. 지난달 9일 네덜란드 헤이그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민단체 '일본의 도의적 책임을 묻는 재단'이 1994년 이후 241번째 '화요집회'를 갖고 있다. 헤이그=한형직기자

“아무 일 없는 척 과거를 부정해도 아베 총리 당신이 역사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지난달 9일 낮 12시가 되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일본대사관 10여개의 창문에 일제히 두꺼운 커튼이 쳐졌다. 이윽고 대사관 맞은편 인도에 노란색 우산을 든 30여명의 노인들이 모여 들었다. 거리에는 “일본은 책임 있는 행동을 하라” “과거의 빚을 갚아라”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도 나부꼈다.

이날은 네덜란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위안부 만행을 규탄하는 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리는 날이다. 매달 둘째 주 화요일마다 집회가 이어져왔다. 7일로 1,160회를 맞은 한국의 수요집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1994년 12월 시작된 네덜란드판 ‘화요집회’는 이날로 241회를 채웠다. 네덜란드 시민단체 ‘일본의 도의적 책임을 묻는 재단(Foundation of Japanese Honorary Debts)’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비인간적 행위에 대해 일본 정부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어왔다. 재단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등 태평양전쟁 피해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1990년 설립됐다.

집회에 참석한 호헤스테인(88)씨는 노란색 우산을 흔들며 “있는 그대로의 잘못을 숨기지 말고 사죄하라”고 외쳤다. 노란색은 위안부 피해자의 연대와 희망을 상징한다. 그는 위안부 여성들을 돕기 위해 1회 때부터 빠짐없이 거리 집회에 나왔다. 호헤스테인씨는 “위안부 연행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뻔뻔함에 분노가 치민다”고 말했다.

흔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는 우리나라와 중국, 동남아 등 아시아 국가들에 국한된 문제라고 여기기 쉽지만 유럽에도 피해 여성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바로 네덜란드 출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다. 일본군은 1942년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동인도제도(현 인도네시아)를 점령하면서 현지에 있던 네덜란드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 연행했다. 특히 1992년 네덜란드 출신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의 증언으로 백인 위안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서구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그래서 네덜란드는 지금도 아시아 국가 못지않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유럽 국가다.

이날 일본대사관 앞 ‘화요집회’ 행사는 단순한 성토와 구호에 그치지 않았다. 재단의 바흐덴돈크 회장 등 집행부는 일본대사관에 들어가 30분 동안 츠지 마사루 일본대사를 면담하고 성명서를 전달했다. 위안부 영문 표기를 ‘성노예(sex slaves)’라고 써 온 사실을 사과한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지난해 11월 28일자 사과문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성노예라는 용어에는 본인 의지에 반해 강제로 위안부가 됐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는데 요미우리는 이것이 잘못된 인식에 기초한 표현이라면서 독자에게 사과를 했었다. 바흐덴돈크 회장은 “일본군이 여성들을 강제로 연행해 위안부로 삼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는 가장 악질적 전쟁 범죄”라며 “요미우리의 사과에 정치적 압력이 들어간 것이냐”고 대사에게 따져 물었다. 이들은 이어 아베 총리가 일본을 대표해 잘못된 과거에 대해 사죄하고 책임을 이행할 것도 촉구했다.

하지만 면담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페이페르 재단 사무국장은 “츠지 대사는 시종일관 나무토막 같은 뻣뻣한 태도로 일관했다”며 “요미우리의 성노예 논란에 대해 ‘자신들과 상관없는 일’이라며 무시했고 위안부 배상 관련 논의 역시 부정했다”고 전했다.

면담 내용을 전해들은 비코 라마인(81)씨는 “어떤 나라든 과거를 부정하면 미래를 건설할 수 없다”며 “이것은 1 더하기 1이 2라는 것을 알아야 2 더하기 2를 풀 수 있는 것만큼 자명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집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1분간 묵념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처럼 일본의 과거사 외면으로 인해 네덜란드의 위안부 문제도 20여년간 해결의 진척이 없다. 그러는 사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2013년에는 ‘화요집회’에 참석해 일본을 규탄해왔던 유일한 위안부 피해자 엘렌 코리 플루흐 할머니가 사망했다. 플루흐 할머니는 평소 “일본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과거의 잘못을 다루는 그들의 태도를 존경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집회에 나온 비스허르(84ㆍ여)씨는 “엘렌은 돈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는 것만이 내 과거를 보상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네덜란드의 위안부 문제 바로 잡기 운동은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어려운 형편을 겪고 있었다. 재단이 추산한 네덜란드 위안부 피해 여성은 사망자를 포함해 75명. 오랜 시간 음지에서 숨죽여 살아온 탓에 추가 피해자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한다. 실제 피해 규모는 400여명에 이를 것이라고 재단 측은 추정한다. 하지만 위안부 생존 피해자들이 해마다 숨지면서 관심도 줄어들어 집회 초기 400~500여명이 참여하던 인원은 현재 10분의 1이 채 되지 않는다. 페이페르 사무국장은 “네덜란드 교과서 어디에도 위안부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며 “네덜란드 정부가 전시에 본국이 아닌 먼 동쪽 섬에서 일어났던 위안부 문제에는 무관심하다”고 토로했다.

네덜란드 사람들도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단초는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에 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바흐덴돈크 회장은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으로 과거 잘못에 대한 청산은 끝났다고 주장하지만 도의적 책임을 먼저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은 48개 연합국이 일본의 전후 처리방안에 대해 합의한 조약으로 일본의 채무 이행 능력의 한계를 인정해 배상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페이페르 사무국장은 “일본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기를 기다리는 듯하지만 다음 세대에도, 그 다음 세대에도 위안부 만행은 영원히 기억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복 70년, 한일 수교 50년의 해 첫 수요일인 7일 서울 종로구 일본 대사관 앞은 어김없이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채워졌다. 1,160번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 참가한 초등학생들이 소녀상 옆에서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k.co.kr

우리나라가 광복 70주년과 한일수교 50주년을 위안부 문제 해결의 중요한 모멘텀으로 삼고 있는 것처럼 네덜란드 역시 올해가 종전 70년이라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양국의 국제적 연대와 공조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할더르 재단 국제문제 담당관은 “올해 8월 15일 일본이 사과와 배상 등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를 네덜란드도 기대한다”며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헤이그=한형직기자 hj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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