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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서 국방장관 나와야 선진국?

입력
2014.12.1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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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물리학자 출신의 국방통. 얼마 전 신임 미국 국방장관으로 낙점된 애슈턴 카터 전 국방부 부장관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학자의 길을 걷다가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제안보정책 담당 차관보로 진로를 바꾼 카터는 베트남전 참전용사였던 척 헤이글 전임 장관과는 달리 군 복무 경험이 전무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군 경험도 없는 이가 세계에서 전쟁을 가장 많이(?)하는 나라의 국방 수장에 지명되다니’ 라며 걸고 넘어지지 않습니다. 1차 북핵 위기 때 북한과의 핵 협상에 참여하고 오바마 1기 행정부 때는 무기 획득 최고 책임자를 맡는 등 무기와 예산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국방통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이나 국방장관을 역임하며 강한 인상을 남긴 도널드 럼스펠드나 딕 체니, 로버트 게이츠 등 우리에게 익숙한 미 국방장관들은 대개 정치인이나 교수, 사업가를 지낸, 군이 아닌 민간 출신입니다. 실제로 1947년 국가안보법 제정 이후 초대 국방장관인 제임스 포레스털부터 24대 척 헤이글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서 장성 출신 국방장관은 3대 조지 마셜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전역 후 10년이 지나야 국방 장관에 임명할 수 있다는 국가안보법(제202조)의 영향이 크긴 하지만 어쨌든 미국은 ‘국방 문민화’가 정착된 나라입니다.

백악관 참모들과 불화를 겪다가 2년도 채 안돼 밀려난 척 헤이글 국방장관의 후임에 애쉬튼 카터 전 국방부 부장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백악관 참모들과 불화를 겪다가 2년도 채 안돼 밀려난 척 헤이글 국방장관의 후임에 애쉬튼 카터 전 국방부 부장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미국뿐만이 아닙니다. 유럽이나 중남미 등 대부분 국가의 국방장관은 민간 출신이 도맡습니다. 독일, 스페인, 노르웨이에서는 여성 국방장관이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2007년 이웃나라 일본에서 여성인 자민당 출신 고이케 유리코 의원이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방위상에 임명돼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오히려 체코나 이스라엘처럼 군 장성 출신이 국방장관을 독점하는 우리나라가 60억 세계인의 눈에 독특해 보일 정도입니다.

우리에게도 문민 국방장관의 역사가 없는 건 아닙니다. 1949년 일등항해사 출신인 신성모(2대)를 비롯해 정치인 출신인 이기붕 등 총 5명의 민간 출신 국방장관이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선진국처럼 이들이 군 출신을 능가할 정도로 안보에 정통해서 기용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국군이 창설된 지 얼마 안된 시점이라 군 출신을 시키고 싶어도 마땅한 인물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문민정부가 출범한 데 이어 경제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 우리나라가 현 시점에도 문민 국방장관을 배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군 출신만 국방장관이 될 수 있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국방장관이 되려면 전역해 민간인으로 돌아가야 하는데도 말입니다.‘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며 병영 내 가혹행위 근절과 관련해 백가쟁명식 대안이 쏟아졌던 지난 여름에도 ‘문민 국방장관을 기용해 군을 혁신해야 한다’는 대안은 그리 힘을 얻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문민 국방장관론은 식상한 논쟁, 무의미한 논쟁으로 치부되는 분위기였지요.

조직을 장악할 정도로 군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서 무기, 안보 이슈에 정통한 민간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금 당장 문민 장관을 시켜준다 해도 마땅한 후보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인재풀이 협소한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50~60년 전에 활동했던 전임 문민 국방장관들의 성적표가 좋지 못한 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한국전쟁에서의 무책임한 모습과 군에 대한 무지함을 드러냈던 일부 문민 국방장관들 때문에 민간 출신에 대한 우려가 큰 것이지요.

거란족을 물리친 귀주대첩으로 유명한 고려시대 강감찬은 무관(武官ㆍ군인)이 아닌 문관(文官) 출신이었습니다. 84년 인생을 살면서 갑옷을 입은 기간은 3개월 남짓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무를 제대로 겸비한 상황에서 군대를 통솔해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지요.

민간에서만 국방 장관을 독점한다고 선진국일까요? 그보다는 민간과 군 출신을 경쟁시켜 적절한 인사를 번갈아 가며 기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쪽이 더 선진국에 부합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병영 내 가혹행위처럼 군 내부의 혁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에는 민간 출신을, 반대로 안보 위협이 급증하는 시기에는 군 조직과 특수성을 더 잘 이해하는 군 출신을 기용해 적절한 긴장과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려면 우선 강감찬과 같은 인물이 민간에서 많아져야 합니다. 물론‘군인만이 안보를 안다’는 우리의 후진적인 사고방식도 같이 바뀌어야 하겠지요.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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