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power)이란 무엇인가. 사회학을 공부하면 시장ㆍ문화와 함께 가장 먼저 배우는 개념이다. 막스 베버에 따르면, 권력이란 타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이다. 사회가 위계적으로 구성돼 있는 한 권력의 발생은 불가피하다. 타인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권력은 달콤하다. 또 인간 내면에 도사린 어두운 욕망의 하나다. 그래서 권력을 얻기 위한 치열한 투쟁은 어느 사회에서든 큰 관심을 모아왔다.

베버는 권력이 정당성을 갖는 권위(authority)의 형태를 세 가지로 구분한 바 있다. 전통적ㆍ카리스마적ㆍ합법적 권위가 그것이다. 전통문화든, 리더의 비범한 자질이든, 근대적 법률이든 권력은 이런 권위를 갖출 때에만 사회적으로 승인되고 지속된다. 흥미로운 것은 베버가 근대적 법률ㆍ관료제에 기반을 둔 카리스마적 지배를 현대 민주주의의 특징으로 파악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지도자가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딱딱한 이야기가 길어졌다. 독자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이미 눈치챘을 듯하다. 이렇듯 권력의 존재는 초시간적인 반면, 행사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권력의 행사에는 전통적 방식도 있고, 현대적 방식도 있다. 주목할 것은 정치적 민주화라는 말에 선거ㆍ투표 등 절차의 제도화뿐만 아니라 지도자의 권력 행사 방식의 현대화 또한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사회학 연구자로서 최근 진행돼온 이른바 ‘비선(秘線) 실세’ 논란을 보고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지난 2주 동안 우리 국민들은 국가권력의 적나라한 생얼에 관한 뉴스들을 잇달아 접했다. ‘십상시’, ‘궁중 암투’ 등 전통사회 권력투쟁을 떠올리게 하는 말들은 물론 ‘3인방’, ‘문고리 권력’, ‘그림자 권력’ 등 현대사회 권력투쟁에 늘 등장하는 말들이 갑자기 추워진 날씨만큼이나 살풍경한 권력의 민낯을 보여줬다.

검찰이 조사 중인, 현재 청와대 안에서 어떤 권력투쟁이 진행돼 왔는지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전례에 비춰볼 때 조사 결과가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 신뢰를 안겨줄 수 있을지를 판단하기 역시 어렵다. 분명한 것은 책임을 지지 않고 권한만 갖는 비선에 의한 권력 행사 의혹이 정부의 정당성을 훼손시킨다는 점이다. 논란 이후 정부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하락한 것은 이를 증거한다.

권력자 친인척과 측근의 국정 개입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 앞선 정부들에도 논란을 불렀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아들 김현철의 국정 개입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후 김대중ㆍ노무현ㆍ이명박 정부에도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이 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한 경우들이 적지 않았다. 이번 의혹 사건이 앞선 사례들과 다른 것은, 정권 출범이 2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했고 대통령이 자신이 임명한 장관ㆍ참모들과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참으로 딱한 광경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선 권력의 현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권력의 현대화란 인사권을 포함한 권력 행사가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 및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런 절차 및 과정은 베버가 주장했던 합법적 권위를 갖춘 제도에 의해 진행돼야 한다. 구체적으로 특별감찰관법, 상설특검법, 민정수석실 기능 간의 연계를 강화해 부당한 권력 행사를 제어하고 정당한 권력 행사만 가능하게 해야 한다.

더불어 권력자의 의지도 중요하다. 실제 직책이 아니라 권력자와의 거리가 권력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의 본래적 특성이다. 제도가 그럴싸하게 설계돼 있다 하더라도 권력자의 의지를 모두 통제할 수는 없다. 공적 시스템이 아닌 사적 라인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고 싶은 유혹을 과감히 거부할 수 있는, 베버가 말한 정치가의 ‘신념윤리’가 중요한 이유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일종의 필요악이다. 이 필요악을 민주적으로, 효과적으로 통제할 권력의 현대화를 이뤄내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권위주의로 회귀할 수 있다. 권력의 현대화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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