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17.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들

최근 아들이 낯설어지는 기묘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다 내가 이 녀석이랑 이렇게 엮였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해 별의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이 아이를 세상에 나게 한 게 과연 잘한 일일까’ 하는 의문까지 드는 증상이다.(이게 육아우울증?) 아들과 보내는 하루하루는 즐겁다. 손주 뛰노는 모습에 기뻐하시는 어른들을 떠올리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 비로소 장손의 기능(?)을 했다 싶다. 하지만 어린 아들의 앞날을 생각하면 몸이 뻣뻣해진다.

괜찮은 어린이집은 10년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대기자가 밀려 있다. 그나마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곳에는 제 자식 끼워 넣기 위한 치맛바람이 태풍을 이룬다는 이야기에 숨이 컥컥 막힌다. 어디 이 뿐인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취업, 결혼…. 어느 것 하나 쉬 넘길 수 없는 관문들이 아들 인생 앞으로 도열해 있다. 여기에 지구 온난화는 가속화하고 있고 해수면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분쟁도 빈번해지고 있다.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것은,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것은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군사를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로 읽힌다. 그러니까, ‘이런’ 세상에 아들을 내놓은 게 잘한 일이냐는 것이다.

'아빠 힘내세요'. 이것도 육아우울증 증상인가. 요즘 동요를 듣다가 울컥하는 나를 발견한다. 출산율이 바닥을 기는 상황에서 애를 낳는 게 희망과 미래를 만드는 일이고 애국이라고 선전하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회의가 요즘 부쩍 잦다. 아들에게 즐겨 틀어주는 동요를 들으면 이런 회의는 더욱 깊어진다.

험한 세상에 아들을 내놓았다는 죄책감 아닌 죄책감 때문인지, 요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온 몸이 착 가라앉으며 무기력해지는 증상도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도 육아우울증의 하나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들 들으라고 집이나 차에서 틀어주는 동요 가사에 울컥하는 나를 발견한다.(이 땐 나도 적잖게 당황스럽다.)

대표적인 곡이 ‘아빠 힘내세요’다. '딩동댕 소리에 얼른 문을 열었더니' 로 시작하는 이 노래에 등장하는 아빠는 정말 힘겹게 사는 사람이다. 열린 문으로 아이가 아빠를 부르며 달려나가는데 이 아빠는 반가운 얼굴이 아닌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다.(아빠라는 사람이 정말 이렇게 하긴 힘들 텐데….) 그래서 아이는 아빠에게 곧바로 안기지 못하고, 오늘 무슨 일이 생겼나요, 마음대로 안 되는 일 있었나요 하며 아빠 눈치를 본다. 대견하게도 저들이 아빠 곁에 있다며 ‘아빠 힘내세요’를 반복하며 노래를 끝맺는데, 듣는 게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 (왜 그렇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동요 하나에 만감이 교차해 가슴이 먹먹해진 아빠는 만들어진 지 30년은 됐음직한, 이 아빠가 어릴 때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불렀던 노래를 아들에게 다시 들려주면서 또다시 울컥한다. 학원 생활에 찌들어 살 아들이(피노키오), 같이 잘 놀아주지 못하는 아빠를 기다리다 꿈속에서야 아빠랑 노는 아들(아빠와 크레파스) 모습이 그려졌다. 이 아빠는 아들의 노래에 답할 노래가 없다.

msj@hk.co.kr

(피아노 치고 미술도 하고 영어도 하며 바쁜데) 살아 남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싸움을 벌여야 하는 세상에 자식을 나게 한 것이 과연 잘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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