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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중국 기업이 두려운 이유

입력
2014.11.3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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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초마다 1권씩 팔리는 책이 있다. 창업 4년 만에 중국 휴대폰 시장에서 점유율 1위에 오른 샤오미(小米)의 성장 이야기를 담은 ‘참여감 : 샤오미 입소문 마케팅 내부 수첩’이다. 사실 이 책이 출판되기까진 적잖은 곡절이 있었다. 지은이가 샤오미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이자 현재 샤오미의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인사이기 때문이다. 회사 내부에선 샤오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샤오미의 경험들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에 대해 반대가 많았다. 회사 기밀들이 노출되고 다른 업체들이 샤오미를 모방하게 되면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자칫 역공을 당하게 될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레이쥔(雷軍) 샤오미 회장은 달리 생각했다. 그는 “샤오미 방식은 얼마든지 복제될 수 있고 복제돼야 한다”며 “샤오미의 비밀들이 공개되면 전체 산업이 한 단계 더 올라갈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휴대폰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샤오미의 성공 열쇠들을 내 놓겠다는 얘기였다. 중국의 ‘애국기업’ 샤오미는 이런 방식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책이 나온 뒤 실제로 각 분야의 많은 기업들이 책을 단체로 구입, 집단 학습 등을 통해 샤오미의 비밀들을 습득하고 있다. 가전회사 주양(九陽), 인터넷 주류 판매업체 주셴왕(酒仙網), 가전 유통업체 쑤닝(蘇寧) 등 샤오미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겠다고 나선 곳도 이미 20여곳이나 된다. 한 기업의 성공은 이제 다른 업종, 다른 분야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제2, 제3의 샤오미 신화가 준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이 무서운 진짜 이유다.

세계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인 마윈(馬雲) 알리바바그룹 회장에게서도 자신보다는 전체를 생각하는 기업가 정신과 철학을 찾아볼 수 있다. 알리바바는 회사의 목표에 대해서 ‘하늘 아래 어디서나 사업을 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마 회장은 “소상공인, 소비자, 택배 기사 등이 모두 성공해야 비로소 알리바바의 성공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기 혼자 세계 최고가 되겠다고 떠벌리기 보다 남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우며 함께 가겠다는 데에 방점을 찍는다. 중국 최고 부자인 그는 80%의 소득세를 징수해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데 동의하느냐는 질문에도 “그럴 필요 없다, 나 스스로 기부할 수 있다”고 답했다.

중국의 기술력이 우리 기업들을 바짝 쫓아왔다면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정말 기술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기술은 사실 우리가 아직 한 수 위다. 요즘 중국 기업들을 보면 오히려 우리가 뒤지고 있는 건 기술이 아니라 기업가 정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창조와 혁신이 부족한 것도 나보다는 우리를 더 생각하는 ‘큰 생각’과, 입장 바꿔 반대편에 서서 바라보는 ‘거꾸로 시각’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공동체 의식과 철학에서 지고 있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

사실 우리 경제에는 위대한 기업가 정신이 있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사업을 통해서 나라에 보답하겠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 정신으로 기업을 일으켰다.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세운 현대중공업 공장엔 여전히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그들은 모두 나보다 우리, 나아가 국가와 민족을 생각한 기업인이었고 이를 위해 한평생을 바친 애국자들이었다. 더 큰 것을 생각했기에 개인으로서는 불가능했던, 한 기업이 했다고는 믿겨지지 않는 신화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중국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우리와 한 판 승부가 불가피하다. 기술도 중요하겠지만 ‘우리’와 ‘애국’의 기업가 정신을 되찾는 것이 필요하다. 정신에서 지면 회복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야말로 ‘우리’나라가 아닌가.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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